아침부터 전쟁입니다. 등교 시간은 정해져 있는데 아이는 어제 접다만 색종이를 접고 있습니다. 잔소리 몇 번 날려주니 움직이지도 않으면서 아이의 입이 댓 발 나옵니다. 다급하고 답답한 마음으로 가방에 알림장과 필통을 넣어줍니다. 자기주도생활은 밥 먹기 등 기본 생활부터 운동, 학습 등 일과 모두를 포함합니다. 그런데 정리가 싫은 아이, 단순 연산이 지루한 아이, 운동 종류는 딱 질색인 아이, 그냥 공부가 다 싫은 아이가 있기 마련이죠. 이때 큰 스트레스를 받으며 묵묵히 해내는 아이들도 더러 있지만 대부분은 여러 가지 부정적 반응을 보입니다. 투덜투덜 불평을 발사하거나 “못하겠어요”하면서 눈물을 보이기도 합니다. 때로 짜증이 폭발하거나 화를 내는 경우도 다반사죠. 툴툴댄다고 모든 일을 쿨하게 “그럼 하지 마.”라고 수용해 줄 수는 없습니다. 그래서 매번 아이와 씨름하고 나면 진이 빠집니다. 부글부글 마음이 끓다가 훈육이 강해지고, 싫어하는 ‘그 일’을 지시하기 전 ‘오늘은 또 어떻게 시키지?’ 하며 부모가 먼저 마음 졸입니다. 하기 싫은 일을 하게 하는 최고의 방법이 있습니다. 바로 ‘루틴’입니다. 루틴의 다른 말은 ‘습관’이죠. 하기 싫은 일도 습관이 되면 크게 힘들이지 않게 할 수 있습니다.(물론 그 과정이 쉽지만은 않죠) 변신 로봇 만화를 보면 매 화마다 최후에 악당을 물리치는 것은 로봇이 가진 핵심 무기인 레이저 액션 빔입니다. 자기주도생활, 자기주도학습의 핵심 도구, 레이저 액션 빔은 '루틴'입니다.
세상에 공짜는 없습니다. 아홉 살 아이에게 치밀하게 짜인 생활 계획표를 척 내밀며 "오늘부터는 이렇게 살거라" 하면 절로 실현될 거라 생각하는 이는 없을 겁니다. 싫은 일이 절로 되기까지 루틴도 연습해야 합니다. 이 시기 자기주도생활 루틴 만들기의 과정은 '목표 공유- 계획 대화- 실천-반성과 피드백- 수정 대화'입니다. 중요한 점은 잘 짜인 루틴표를 제공하는 것이 아니라 아이에게 선택권을 주며 함께 만들어가야 합니다. 먼저 '가방 정리하기, 과제하기' 등 매일 해야 할 일들의 목표들을 함께 정합니다. 정한 목표들을 부모와 아이의 대화로 우선순위, 환경, 시간 등을 고려해 하루 루틴을 계획합니다. 계획에 따라 생활해 보고 주기적으로 더 효율적으로 생활할 수 있는 방법은 없는지, 기대만큼 수행했는지 함께 반성하고 해낸 부분에 대해 긍정적 피드백을 줍니다. 그리고 반성한 내용을 반영해서 목표나 계획을 수정하는 대화를 나눕니다. 이 과정이 복잡해 보이지만 언젠가 스스로 척척 계획 세워 실천하는 성숙한 아이의 모습을 상상하며 지금은 부모가 함께 해주어야 합니다. 처음에는 루틴에 확신도 부족합니다. 또 루틴은 늘 잘 지켜지지 않는 것처럼 느껴집니다. 더 나아가 계획대로 실행하지 못하는 아이와 입씨름을 하게 되면 '자기주도생활이고 뭐고 다 관두고 싶다' 합니다. 그러나 믿어야 합니다. 이 과정에서 아이는 크게 성장하고 있습니다. 다음의 내용을 기대하며 지속해 보는 것은 어떨까요.
'루틴'이라는 레이저 액션 빔의 효과는 다음과 같습니다. 먼저 루틴을 만들어가는 과정은 메타인지를 길러줍니다. 메타인지는 '생각에 대한 생각'으로 교육에 관심 있는 사람이라면 그 중요성을 알고 있을 것입니다. 목표는 무엇인지, 현재 나의 수준은 어떤지, 달성하기 위해 필요한 것은 무엇인지, 계획한 대로 잘하고 있는지 등을 점검하는 사고라고 볼 수 있죠. 따라서 메타인지는 자신이 하고자 하는 일을 효과적으로 수행할 수 있도록 돕는 매니저 역할을 해 줍니다. 그런데 이것이 루틴 만들기 과정과 일치하지 않나요? 루틴을 만들어가는 동안 아이는 '어? 나는 30분 걸릴 것 같았는데 10분밖에 안 걸렸네!' '타이머를 사용하면 더 빨리 끝낼 수 있구나' '나는 이런 것들을 쉽게 하고 이런 건 어렵구나' 하고 깨닫습니다. 이게 바로 메타인지의 연습입니다. 지금은 이 과정을 부모와 함께 하지만 고학년이 되면 길러온 메타인지를 활용해 스스로 과제를 선택하고 루틴을 만들죠. 이것이 꿈에 그리던 자기주도학습의 시작입니다.
다음으로 루틴을 생활화하면 아이와 부모의 스트레스가 감소합니다. 습관이 된다는 것은 자동화 시스템 안으로 들어왔다는 의미입니다. 습관이 된 행동은 그전보다 편안하게 수행할 수 있습니다. 아이들이 하기 어려워하는 일이었어도 반복의 과정을 거쳐 조금은 편안해집니다. 더 나아가 습관이 된다면 자동적으로 하게 되지요. 아홉 살 아들이 입학 후 아침에 옷을 입고, 세수 후 로션과 선크림을 바르며, 필통과 읽을 책을 챙겨 가방 정리를 하고, 방과후가 있는 날이면 그날에 맞는 준비물을 챙겨 지각하지 않게 시간 맞춰 등교하는 것이 1년 하고도 3개월은 걸린듯합니다. 루틴을 연습하지 않았다면 지금도 아침부터 속 타는 샤우팅을 했을 겁니다. 아이가 편안해지면 부모의 스트레스 지수도 낮아지죠. "이제 뭐 해야 해요?"라고 묻거나 지시하지 않으면 행동하지 않는 아이를 보면 속이 타며 비비탄 탄알 대신 잔소리를 장전하게 됩니다. 빨간 맛 잔소리를 줄여주는 것이 곧 루틴입니다.
마지막으로 루틴을 만들어가는 과정에서 아이는 자기 생활에 주인의식을 갖습니다. 꽉 짜인 생활표 안에서 아이는 그것이 자신의 것이라고 느끼지 못합니다. 루틴을 만드는 과정에서 방법과 시간, 과제를 선택하고 실천하며 수정하며 진짜 내 생활이라고 느낍니다. 지금은 어설프고 때로는 비효율적인 방법을 택하지만 그 과정에서 시행착오를 겪고 성취감을 갖습니다. 아이가 스스로 선택한 것을 루틴에 넣어 실천해 보았을 때 '내가 해야 하는 일'로 여깁니다. 1점이 아쉬운 고등학교 내신이 아니라, 하루쯤 실패해도 인생에 티끌만 한 오점도 되지 않는 지금 시기는 어설픈 루틴을 만들어보기에 딱 알맞은 시점입니다. 식당에 문제가 생기면 직원은 곤란해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식당 주인은 어떻게 이 문제를 타개해 나갈지 머리를 싸매죠. 아이가 앞으로의 삶에서 자기 생활과 학습에 '주인'이 된다면 문제가 발생했을 때 어떤 태도일까요? 저는 상상만으로 행복해집니다.
자기주도생활의 루틴 만들기 과정에서 반드시 지켜야 할 것이 있습니다. 앞서 언급한 주인의식을 가지려면 아이의 선택권을 점차 늘려주어야 합니다. 이 시기의 아이들이 무엇을 얼마나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알기 어렵습니다. 생활의 틀은 부모가 갖고 있어야 합니다. 하지만 일방적인 제시가 아닌 청유형으로 결론은 아이의 선택일 수 있게 해야 합니다. "하교 후 집에 와서는 이런 순서로 해보면 어떨까?", "저녁 시간에 해야 할 일이 이렇게 있는데 어떤 순서로 하고 싶니?"처럼 말이죠. 또 "~ 하면 이렇게 되지 않을까?" 하며 예상되는 부정적 결과를 조언하기도 하고, "이런 방법이 좋을 것 같은데 네 생각은 어떠니?"처럼 제안해주어야 합니다. 루틴에 최소분량의 할 일을 넣는 것도 중요합니다. 얼마 전 이은경 선생님 인터뷰에서 "아이가 스스로 해내려면 그 양이 정말 적어야 합니다"라는 내용이 있었습니다. 아이는 부모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적은 양으로 시작해야 스스로 해낼 수 있습니다. 아이에게는 해야 할 일이라는 인식을 하는 것부터 에너지가 쓰입니다. 할 일을 집중해서 해내고 마무리 정리까지 하는 일련의 과정은 일의 양이 적어도 어려운 일입니다. 지속적인 성취를 얻어가며 자기주도적으로 생활을 끌어가는 것이 최종의 목표라는 것을 잊지 않아야겠습니다. 마지막으로 루틴은 미완성이어야 한다는 점을 기억해야 합니다. 아이가 정한 대로 실천하지 못하면 "왜 약속한 대로 안 하니?" 하며 다그치기 쉽습니다. 루틴 만들기에서 가장 중요한 단계는 '반성과 수정'입니다. 맞춤 정장처럼 자신에게 꼭 맞는 루틴으로 계속해서 다듬어가는 과정에서 자신에 대한 이해가 높아집니다. 루틴은 언제든 수정할 수 있고, 아이가 완벽하게 실천하지 못해도 충분히 가치 있습니다.
루틴은 자기주도생활의 레이저 액션 빔이라는 말씀드렸습니다. 초강력 레이저 액션 빔도 조준을 잘못하거나 엉뚱한 방향으로 쏜다면 원하는 결과를 얻을 수 없습니다. 자기주도생활을 이끄는 루틴 만들기도 아이와의 충분한 대화와 선택의 존중, 실패를 여유 있게 바라보는 태도 등 그 과정에 힘쓰는 것이 중요합니다. 정성껏 루틴을 만들어가는 것은 미래를 위한 '시드머니'를 모으는 과정입니다. 이 과정을 잘 해내면 고학년이 되었을 때 스스로 자기 할 일을 운영해 가는 아이로 성장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