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빨리빨리 양치해야지!"
"얼른 자야지 뭐 해!"
밤 10시에 울리는 날카로운 목소리. 입이 삐죽하고 울먹한 표정의 아이가 잠자리에 들고 나면 '아, 편안한 마음으로 재웠어야 했는데' 합니다. 고요한 후회가 밀려듭니다. 분명 아침에는 생글생글 밝은 목소리로 "잘 잤니?" 하며 시작했습니다. 퇴근 후 저녁 밥상을 차리고, 아이가 밥그릇을 비울 때까지 골고루 양껏 먹도록 잔소리합니다. 받아쓰기 시험을 본다니 연습시키고, 책도 읽어주고, 학원 숙제를 하도록 돕습니다. 정말이지 에너지를 바닥까지 박박 긁어 쓰게 됩니다. 그 순간 찰랑찰랑 물이 가득 찬 컵에 한 방울이 떨어지면 후루룩 넘치듯 아이가 무얼 하나 얹게 되면 짜증 섞인 포효를 뱉게 됩니다. 분명 아이를 위해 달려온 하루인데, 그 끝맛이 씁쓸합니다. 이런 상황이 자주 벌어진다면, 한 번쯤 되짚어봐야 합니다. '아이에게 과한 에너지를 쏟고 있나? 아이가 스스로 할 수 있는 일은 뭘까?'
최근 독립하지 못하는 성인 자녀 문제로 세계적 우려가 큽니다. 성인이 되어서도 부모 품을 떠나지 못하고 경제적 지원을 받는 2~30대 청년들을 '캥거루족'이라 합니다. 일본에서는 주거비와 식비를 모두 부모에게 의지하며 자신의 월급은 취미 생활에 사용하거나, 부모로부터 여전히 용돈을 받는 자녀를 '파라사이트 싱글'이라고 합니다. 어른들이 건담을 맞추는 등 아이들의 문화를 즐기는 것을 '키덜트(Kid+Adult)'라고 합니다. 하지만 미국에서는 이 말이 부모로부터 독립하지 못한 성인을 지칭하기도 합니다. 유사한 말로 캐나다의 '부메랑 키즈', 영국의 '키퍼스(keepers, 퇴직금을 축낸다)', 이탈리아의 '밤 보치오니(bamboccioni, 큰 아기)', 독일의 네스트호커(Nesthocker, 집에 눌러앉은 사람)가 있습니다. 이뿐 아니라 결혼 후 육아 등으로 다시 부모에게 의존하게 되는 '리터루족(Return+kangaroo)'까지 더해져 부모의 케어는 장기화되고 있습니다. 물론 취업이 어렵고 경제적 독립이 힘든 사회적 환경이 큰 원인입니다. 하지만 노후 준비에 큰 걸림돌이 될 정도로 자녀가 부모 의존적인 삶을 살아가는 것은 최대한 예방해야 하지 않을까요? 성인이 된 자녀가 어떤 상황을 마주하더라도 극복하고 개척해 나갈 수 있는 힘은 태어나서 젖을 빠는 시기부터 길러줘야 합니다. 아홉 살까지 자기주도생활이 자리 잡아야 하는 이유도 같은 맥락입니다.
최근 주변에는 아이에게 죄책감과 미안함을 느끼며 살아가는 부모가 많습니다. 경제적인 이유로 영어 유치원에 보내지 못했거나, 가르치고 싶은 예체능을 교육하지 못했을 때 미안해집니다. 맞벌이를 하기에 아이 친구 엄마들과 커뮤니티를 형성하지 못하고 학원으로 돌리는 것이 마음에 걸립니다. 이러한 미안함과 죄책감은 종종 부모의 과한 개입과 희생이라는 부작용을 낳습니다. 무엇이든 있는 힘껏 적극적으로 나서는 거죠. 물론 신생아~5세 이전의 아이에게는 최대한 요청에 반응해 주어 부모에 대한 신뢰를 단단한 매듭으로 만들어야 합니다. 하지만 초등 입학 시기에 가까워질수록 아이는 스스로 하는 것이 늘어나고, 부모는 점점 편해지는 부분이 많아져야 합니다. 초등학교에 아들을 입학시킨 한 지인은 "아이의 요구에 맞춰 손수 하나하나 챙겼을 때 내 존재감을 느끼는 것 같아. 힘들기는 한데 엄마로서 역할을 제대로 하고 있다는 느낌에 뿌듯하거든"이라며 피로한 얼굴로 근황을 전했습니다. 물질적, 시간적 희생이 과할 때 부모는 지치며 자녀는 부모의존적 아이로 성장하게 됩니다.
부모는 '분별 있는 희생'으로 자녀를 양육해야 합니다. 부모의 분별 있는 희생에는 기준이 있어야 합니다. 첫째, 기본적 욕구(식욕, 수면욕 등)를 채울 수 있도록 도와야 합니다. 둘째, 정서적 안정을 위해 힘써야 합니다. 셋째, 부모의 삶을 고려해야 합니다. 넷째, 아이의 자기 주도성을 해치는 것을 경계해야 합니다. 다섯째, 부모의 지원이 필요한 자녀의 요청에 호응해야 합니다.(사소한 요청이 아닌 진정 도움이 필요한 요청을 의미합니다) 부모의 분별 있는 희생은 아이에게 가족 내 유대감을 바탕으로 안정적인 정서를 갖게 합니다. 또한 부모의 희생을 소중하게 여기고, 받은 만큼 아이 스스로 타인을 배려하고 공감하게 됩니다. 더불어 부모의 도움을 바탕으로 스스로 문제를 해결해 보며 부모에 대한 신뢰와 자기 효능감을 키워갑니다. 부모가 세상 최고의 것을 주지 못했더라도, 아이는 최선을 다한 부모의 마음을 알고 빈 공간은 스스로의 힘으로 채웁니다.
자녀는 자기주도생활을, 부모는 '자기 돌봄'을 해야 합니다. 부모의 자기 돌봄이란 부모 스스로 자신의 신체적, 정신적, 감정적 건강을 돌보는 것입니다. 충분히 휴식하고 수면을 관리하며 스트레스를 해소할 방법을 찾아야 합니다. 부모도 자기만의 취미생활이나 운동이 필요합니다. 오카자키 다이스케의 <끝까지 해내는 아이의 50가지 습관>에서는 '샴페인 타워의 법칙'을 소개합니다. 샴페인 타워는 결혼 피로연 등에서 샴페인 잔을 피라미드 모양으로 쌓아 올린 다음 맨 위의 잔부터 샴페인을 따르는 것입니다. 가장 위에 있는 것이 내 잔, 그 밑의 잔이 가족, 그보다 아래의 잔을 친구나 주변 사람의 것이라고 볼 때 맨 위의 내 잔이 가득 차서 넘쳐흘러야 주변 사람들을 충족시킬 수 있습니다. 작가는 "내 기분을 돌보는 것보다 중요한 일은 없다"를 강조하며 아이도, 그리고 부모 자신도 스스로 자기 기분을 좋을 수 있게 만들어야 한다고 말합니다. 부모가 자기를 돌보고 긍정적 에너지가 가득 찰 때 자녀에게도 좋은 기운이 전달됩니다. 아홉 살, 한창 손이 많이 갈 나이라고 합니다. 하지만 자녀의 자기주도생활이 일상화된다면 부모의 에너지를 아낄 수 있습니다. 아이가 스스로 하는 분야가 넓어지면 부모가 스스로를 돌볼 시간이 늘어납니다. '아! 이 시간이면 우리 아이에게 이런 것은 해줄 수 있는데'라는 망설임을 뒤로하고 아이가 혼자 힘으로 여백을 채워간다는 믿음을 가지세요. '어떤 것이 부모인 내가 진정 원하는 것일까, 내가 해주던 것 중 아이에게 스스로 할 수 있도록 이양해야 하는 것은 무엇일까?'를 고민하세요.
부모가 자기 돌봄을 해야 하는 이유가 있습니다. 먼저 관계의 선순환입니다. 부모가 신체적, 정서적 여유가 있을 때 자녀와 질 높은 소통을 하게 됩니다. 자기 돌봄으로 스트레스가 관리되면 일상의 잔소리가 줄고 아이의 실수도 눈감아줄 수 있게 됩니다. 아이 또한 부모에게 받는 긍정적인 에너지를 딛고 힘 있는 하루를 지냅니다. 또한 부모는 자녀의 롤모델이기에 자기 돌봄이 필요합니다. 결혼이 선택적인 문제가 되고 출산율이 극도로 감소하고 있습니다. 가정생활이 힘들다는 분위기가 만연합니다. 가정생활이 고된 과정이긴 하지만 자녀가 주는 기쁨과 삶의 가치는 그 어떤 것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큽니다. 부모가 자기를 돌보며 가정생활을 알차게 꾸려가는 모습과 스트레스를 관리하는 과정을 자녀가 배웁니다. 자녀가 훗날 자신의 자녀를 챙기느라 자기를 돌볼 새 없이 지내는 모습은 안타깝게 느껴질 것입니다. 부모는 자녀에게 질 높은 삶을 살아가는 모습을 보여줘야 합니다. 마지막으로 부모가 자기를 돌볼 때 자녀가 자연스럽게 자기 삶을 독립적으로 느낍니다. 부모의 자기 돌봄으로 자녀는 부모의 시간과 에너지를 존중하게 됩니다. 이로써 부모와 자녀의 삶의 건강한 경계선이 형성됩니다.
최근 부부 갈등을 주제로 하는 한 프로그램에서 빚을 질 정도로 전집과 학습지를 구매한 가정이 소개되었습니다. 부부 갈등에도 불구하고 자녀교육으로 무리하게 지출하는 모습이 곡식을 지키기 위해 뜨거운 볕을 그대로 맞고 있는 허수아비 같아 짠했습니다. 인생의 마라톤은 아이만 달리는 것이 아닙니다. 부모도 자기 인생을 달리고 있습니다. 세계적인 가족 심리학자 버지니아 사티어의 <아이는 무엇으로 자라는가>에서 부부는 하나가 아니라 '나, 너, 우리'라는 세 부분으로 이뤄지며 사람은 둘이지만 '나, 너, 우리' 각각은 나머지를 더욱 힘 있게 만들어준다고 했습니다. 자녀와도 같습니다. 부모 자신의 존재가 바로 설 때 자녀도, 부모와 자녀의 관계도 강해집니다. 부모는 자기 돌봄으로, 자녀는 자기주도생활로 서로를 탄탄하게 지탱해 주는 사이가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