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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반짝그녀 Aug 07. 2024

청소를 왜 그렇게 해?

몰라서 못하는 거예요

"지.. 지금 뭐 하는 거니?"

바야흐로 15년 전, 신규 교사 시절이었습니다. 초등학교 5학년, 초등 생활을 알만큼 알고 6학년의 반항은 없는 고학년이죠. 당시 지금은 없어진 '청소 시간'이 학교 일과 중에 따로 있었습니다. 일부 학생들은 교실을, 나머지 학생들은 복도, 계단, 화장실, 방송실 등 반마다 지정된 특별구역을 청소했습니다. 3월 초, 처음 청소 시간을 지도하며 당황했습니다. 빗자루질을 너무나도 못했기 때문입니다. 5학년쯤 되면 알아서 척척 할 줄 알았는데(초등학생 구력이 4년 이상이니까요) 전혀 아니었습니다. 빗자루 솔이 진자운동 마냥 공중에서 시작해 바닥에 1초쯤 닿았다가 다시 부웅 공중을 날랐습니다. 바닥의 먼지를 쓸어 담는 것이 아니라 공중으로 띄우고 있었습니다. 빗자루와 쓰레받기를 들고 교실 이곳저곳을 서성이는 아이들도 있었습니다. 어디를 쓸어야 할지 시작도 못하는 겁니다. 이미 쓸어서 먼지 한 톨 없는 곳을 계속해서 쓸거나, 빗자루로 책상다리를 계속 쓸어내리는 아이도 있었습니다. 그때 알았습니다. '5학년도 아직 청소를 할 줄 모르는구나.' 빗자루질을 한 단계씩 자세히 설명하고 연습시켰던 기억이 새록하네요. 우리는 아이들이 어느 정도 성장하면 기대하는 행동(방 청소, 가방 정리 그리고 학습 등)을 저절로 하게 될 것이라 예상합니다. 하지만 어설프고 결과가 좋지 않을 때가 많습니다. 부모님들은 아이가 하는 것이 만족스럽지 않고  오래 걸릴 때 불쑥 이런 생각이 듭니다. '아휴, 내가 하고 말지'






중학교 선생님과 3월 초 학급 운영에 관해 대화를 나눈 적이 있습니다. 첫 주는 일주일 내내 교과서로 수업하지 않고 새로운 학년에 적응하는 과정을 거친다고 했더니 깜짝 놀라며 구체적으로 묻더군요. 3월 첫 주에 하는 친구 소개 활동, 규칙 만들기 활동 등 각 종 학급 적응 수업을 설명했습니다. "아니! 그런 것도 수업을 한다고?" 하며 깜짝 놀라던 지점은 사물함과 책상 서랍의 사용에 관한 수업이었습니다. 그렇습니다. 매년 신학기에는 정돈된 사물함과 책상 서랍 사진을 보여주며 각각의 용도와 정리하는 방법을 배웁니다. 저학년 학생들도 자세히 설명해 주고 실전으로 연습해 보면 대부분 어려움 없이 해냅니다. 아홉 살 아이에게 자기주도생활을 위해 스스로 해보게 하면, 예상보다 어설프고 실수가 있거나 매우 느립니다. 시키는 것도 일인지라 바쁜 일상에서 빠릿빠릿하게 해치우지 못하는 아이의 뒷모습은 인내심을 자극하죠. 많은 부모님들이 아이의 일상 과업을 대신해주거나 밀착해서 돕는 것도 '시켜봤는데 아이가 잘 못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아이들은 자세히 알려주면 생각보다 '잘' 합니다. 오랜만에 만나는 친척들이 자녀를 보고 "못 본 사이에 많이 컸네!"하고 감탄합니다. 부모가 보기에는 큰 차이를 못 느꼈는데 말이죠. 매일 보는 사이에서는 성장의 변화를 느끼기 어렵습니다. 아이가 신체적 성장만 하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기능적 성장도 하고 있습니다. 부모의 현명한 안내로 아이는 자기주도생활의 반경을 넓혀갈 수 있습니다. 부모는 자기주도생활의 '안내자'입니다. 







자녀가 자기주도생활을 위해 일상의 과업을 스스로 해내는 과정에서 이 세 가지를 안내한다면 아이는 어렵지 않게 성공할 수 있습니다. 이를 초등 저학년 시기에 도전해야 하는 '가방 정리'를 예로 살펴보겠습니다.(고학년 자녀의 가방을 살포시 열어보세요. 많은 아이들의 가방에서 한가득인 쓰레기와 눈을 마주칠 수도 있습니다) 첫 번째 안내는 '이 과업을  스스로 해야 하는가?'에 관한 것입니다. 그동안 혼자 하지 않았던 것을 스스로 해내는 것은 어렵거나 혹은 귀찮은 일입니다. 그럼에도 왜 스스로 해야 하는지 그 이유와 효과를 알면 자기주도생활을 지속하는 힘이 됩니다. 아이에게 동기로 작용하죠. 이때 훈육하듯 엄격한 분위기가 아닌 아이의 감정을 잘 받아주는 것이 필요합니다. 아이 입장에서는 부모님의 도움을 받던 이전 상황이 익숙하고 편하니까요. 귀찮다거나, 싫다거나, 도전하고 싶지 않다고 이야기해도 감정은 수용하되 해야 한다는 것은 분명히 해야 합니다. "그래. 새로 혼자 해야 하는 것이 쉽진 않겠지. 그래도 네가 컸기 때문에 가방 정리는 혼자 해야 한단다."처럼 말이죠. 잔소리꾼이 아닌 안내자 모드를 유지해야 한다는 것을 잊으면 안 됩니다.

 "이제 가방 정리는 네 힘으로 해야 한단다. 그런데 왜 가방 정리를 혼자 해야 하는 걸까? 맞아. 사실 이 가방은 네가 학교 다닐 때 필요한 것을 가지고 다니는 너의 것이지. 뭐가 필요한지, 무얼 가지고 다녀야 하는지 엄마는 잘 모른단다. 네가 학교 생활을 하는 것이니 네가 챙겨야겠지. 그리고 지금 잘 챙겨야 나중에 고학년 언니 오빠가 되어도 할 수 있단다. 그리고 자랄수록 네가 챙겨야 할 것이 많아져. 지금부터 연습 시작인 셈이지" 







두 번째 안내는 '이 과업을 어떻게 해야 하는가?'입니다. 어릴수록 과업을 안내할 때는 단계적으로, 최대한 자세히 설명하는 것이 좋습니다. 다음을 대화를 통해 설명합니다. 1. 어떤 상황에서(혹은 언제) 해야 할까? 2. 어떤 단계로 해야 할까? 3. 각 단계에서 주의해야 할 점은 무엇일까? 4. 무엇이(어떤 도구가) 필요할까? 아홉 살 이하 어린아이들도 이렇듯 과정을 자세히 알려주면 어렵지 않게 일상 과업을 해냅니다. 단계별 자세한 설명만 해주어도 자기 주도적으로 해낼 수 있는 일이 많아집니다. 새로운 일에 도전하는 것에 호기심과 탐구심을 갖는 아이들도 많습니다. 도전하는 아이에 대한 자랑스러움을 대화 중에 함께 표현해 준다면 아이는 더욱 안내에 집중할 것입니다. 아이들은 단계별 안내를 받고 도전하는 과정에서 자기 효능감이 높아집니다. 처음에 어려워 보였던 일이 자세히 들여다보니 해볼 만했고, 그것을 실제 성공할 수 있었기 때문이죠. 못할 것 같던 일을 해내는 과정에서 자기 능력에 자신감을 갖습니다. 가방 정리를 적용해 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1. 가방 정리를 언제 해야 할까? 그래. 하교 후 집에 와서 해두면 좋겠네.(언제)
2. 가방 정리 할 때 가장 먼저 해야 하는 것은 무엇일까? 가방 정리는 빼야 할 것은 빼고 넣어야 할 것은 넣으면 된단다. 쓰레기는 버리고, 내일 가져가지 않아도 되는 것은 가방에서 빼서 제자리에 두는 거야. 다음은 알림장과 필통에 연필은 준비되어 있는지 확인해야 해. 마지막으로 다음 날 필요한 것이 있다면 챙겨야지. (단계)
3. 가방에 넣을 때는 큰 것이 등 쪽으로 갈 수 있도록 크기 순서로 넣어야 물건이 잘 보여서 편리하단다.(주의)
4. 엄마, 아빠의 도움이 필요하면 이야기하렴. 알림장이나 부모님께 확인받아야 할 때가 있을 거야.(지원)







마지막 안내는 '과업을  해내고 있는가?'입니다. 저학년 시기의 아이에게는 스스로 자기 평가를 내리는 것이 어렵습니다. 도전하는 과업을 잘 해내고 있는지, 더 효과적으로 수행할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인지, 도움이 필요한 부분은 무엇인지, 어떤 점이 쉽고 어려웠는지 생각해 볼 기회를 부모님이 가이드해야 합니다. 일전에 자기주도생활을 잘 해내는 아이들은 학습의 영역에서도 자기주도학습이 가능하다는 말씀을 드렸습니다. 이러한 자기주도학습에도 반드시 포함되는 단계가 '반성 및 성찰'입니다. 계획한 대로 학습이 실천되었는지, 부족한 점은 무엇이었는지, 잘 한 점은 무엇이었는지 생각해 보고 다음 계획에 반영하는 것이죠. 지금은 생활 영역에서 이러한 성찰 과정을 부모님이 함께 연습해 주는 것입니다. 더불어 아이들의 도전에는 반드시 긍정적인 피드백이 필요합니다. 아이들은 생각보다 부모님의 평가에 민감합니다. 힘들더라도 부모님의 인정과 칭찬이 있으면 해 봄직한 일이 됩니다. 하기 싫은 순간에도 부모의 긍정적 피드백은 자기주도생활을 이어가는 힘이 됩니다. 한 연수에서 학부모 상담 시 아이에 대한 장점과 단점을 9:1 비율로 말씀드려야 한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9가지의 좋은 점이 스펀지가 되어 한 가지 부족한 점을 흡수한다는 뜻이죠. 아이들도 긍정의 스펀지를 두둑이 쌓아 부족한 점을 채워가면 좋겠습니다.

요즘 가방 정리를 혼자 하려고 도전하는 모습이 정말 자랑스러워. 알림장도 스스로 보여주고 필통을 챙기는 것도 꽤 잘하던걸. 네 일을 스스로 잘 해내고 있구나. 그런데 엄마가 이야기하기 전에 집에 오자마자 가방 정리 하는 것에도 도전해 보았으면 좋겠어. 지금까지 하는 것을 보니 분명할 수 있을 거야. 




2학년 아이들과 함께 그림책으로 배우고 인포그래픽으로 실천한 책상, 가방 정리




자기주도생활을 안내할 때 사용하면 좋은 도구 두 가지를 함께 소개합니다. 그림책과 인포그래픽입니다. 자기주도생활의 각 도전 과제들과 직접적으로 관련된 그림책이 많습니다. 그림책은 그 어떤 설명보다 마음을 움직이기 쉽습니다. 주인공이 도전하는 과정을 공감하고 이해하면서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갖게 됩니다. 부모도 말로 하는 것보다 그림책 내용을 통해 설명하는 것이 훨씬 수월합니다. 책상과 가방 정리를 다룬 <책상정리 대작전>, 배변 처리를 다룬 <혼자서도 똥 잘 닦아요>, 혼자 잠들기와 관련된 <오늘은 진짜진짜 혼자 잘 거야> 등 다양한 자기주도생활 관련 그림책이 있습니다. 두 번째 도구인 인포그래픽이란 정보를 시각화한 것을 의미합니다. 자세히 안내한 내용을 정리해 눈에 잘 띄는 곳에 붙여 놓고 보면서 수행하면 수월하게 해낼 수 있습니다. 한 번의 대화로 해야 하는 과정을 모두 기억하는 것이 쉽지 않습니다. 가방 정리의 경우 주로 가방 정리를 하는 곳과 가까운 벽에 붙여놓으면 좋겠죠. 글씨를 읽는 것이 어려운 아이들에게는 간단한 그림을 그려주어도 효과적입니다. 잘 정리된 가방의 모습을 그려두고 뺄 것과 넣을 것을 옆에 그려줍니다. 아이만 효과적인 방법을 찾아가는 것이 아니라 부모인 우리도 아이를 자기주도생활로 안내하는 좋은 도구들을 활용해 보는 것이 어떨까요?







<금쪽같은 내 새끼>에서 5~6학년이 되어서도 샤워를 할 줄 모르는 여학생이 나온 적이 있습니다. 개구리가 되어버린 어른들은 올챙이 시절 샤워하는 방법도, 가방 정리하는 방법도, 혼자 잠드는 방법도 어느 순간 뿅! 하고 있었다고 느낍니다. 아이들에게 자기주도생활은 하나하나가 새로운 도전이고 경험입니다. 그 과정에서 부모는 자잘한 일을 대신해주는 '매니저'가 아닌 성공의 길로 이끄는 '안내자' 모드를 가동해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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