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로서의 나, 그저 나답게
나는 무남독녀 외동딸로 자랐다. 양가의 사랑을 온전히 받으며 자라왔기에 언제나 든든한 울타리 안에 있는 듯한 안정감을 느끼며 살아왔다. 하지만 외동딸이라서 받는 사랑이 많은 만큼, 그 사랑의 무게를 느껴야 하는 순간들도 있었다. 부모님이 주신 이 많은 사랑을 받으며 나는 자연스레 내가 해야 할 책임감과 부모님에 대한 기대를 마음속 깊이 품어야만 했다. 그래서 나이가 들어가면서 가끔은 ‘왜 엄마가 동생을 하나 더 낳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물론 세상 모든 일이 우리가 원하는 대로만 되는 건 아니지만, 그런 생각은 자꾸 머릿속을 맴돌았다.
어릴 적 나의 친정엄마는 굉장히 엄격한 분이셨다. 외동딸인 나를 그저 애지중지 키우는 것이 아니라, 단단한 책임감과 자립심을 심어주려 애쓰셨던 것이다. 그도 그럴 것이, 엄마는 가족의 경제를 거의 책임지며 하루하루 바쁘게 일을 하셨다. 매일 고단한 하루를 보내셨지만, 그 덕분에 나는 경제적으로도, 정서적으로도 부족함 없는 환경에서 자랄 수 있었다. 엄마의 굳은 생활력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하지만 그렇게 보호 속에 자란 나는 늘 부모님의 울타리 안에서만 생활했다. 도전을 두려워하고, 무모한 독립을 경계하며 조심스러운 선택을 하는 습관이 생겨버렸다. 부모님 역시 내게 독립을 강요하지 않으셨다. 그래서 어릴 때 못해본 경험들을 남편을 만나면서 하게 되니 부모님에게는 나름 충격이었을 수도 있을 것이다. 말 잘 듣던 딸이 막무가내인 딸로 바뀌어버렸으니 말이다. 무조건 독립을 하는 것이 정답은 아니었겠지만, 가끔 드는 생각은 나 역시도 독립심을 배워가는 경험이 있었다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이다. 아마 결혼을 조금 더 신중히 생각했을지도 모르고, 혹은 세상에 대해 더 많은 것을 배우며 성장할 기회를 가졌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해본다.
이제 나는 세 아이의 엄마로, 우리 엄마가 그랬듯 아이들을 품 안에 두고 보호하려는 내 모습을 종종 발견한다. 아이들이 마주할 세상이 혹여 위험하고 혼란스럽지 않을까 걱정하며, 본능적으로 내 울타리 안에 두고 싶어 하는 것이다. 어린 나를 끌어안아 주던 부모님의 마음이 오늘의 나에게로 이어진 것만 같다. 닮기 싫다고 했던 부분들이 슬며시 내 안에 스며들어 있었다. 하지만 나는 아이들이 자신만의 길을 찾아 더 넓은 세상으로 나아가도록 도와주고 싶다는 생각이 더 강하다. 내가 자라면서 받은 소중한 사랑과 안정감을 전하면서도, 그 안에 더 큰 자유와 도전의 기회를 함께 담아 주고 싶은 것이다. 아이들이 우물 안 개구리가 아닌 저 넓은 바다를 헤엄쳐 다니는 고래처럼 성장하기를 바라고 있다.
아이들에게 정서적인 안정감, 그리고 무엇이든 할 수 있다는 자존감을 준다면 세상에 대한 호기심과 도전하는 용기도 더 크게 자라날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늘 마음속에 다짐한다. 아이들이 언젠가 성인이 되어 내 곁을 떠나갈 때가 오더라도 그걸 슬퍼하지 않고 진심으로 응원해 주자고. 세상 어딘가에서 행복하게 살아가고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내게는 기쁨이 될 것이니까.
어떤 길을 선택해 가든 아이들이 주체적인 삶을 살아갈 수 있도록, 나는 그저 뒤에서 묵묵히 지켜보려 한다. 그리고 언제나 돌아와 쉴 수 있는 든든한 쉼터가 되어주고 싶다. 아이들이 힘들고 지칠 때면 언제든 안길 수 있는 엄마의 품이 기다리고 있다는 사실을, 아이들이 마음 깊이 기억했으면 좋겠다. 그게 나의 엄마로서의 목표다. 내가 걸어온 사랑을 이제는 아이들에게도 나누어주며, 그들이 세상을 더 힘차게, 더 행복하게 살아갈 수 있도록 한결같은 응원이 되어 주고 싶다.
모든 여성들이 엄마라는 타이틀을 갖게 될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 그리고 엄마라는 역할은 결코 하나의 정해진 틀이 아니며, 각자만의 고유한 스타일과 색깔을 지닌다. 내가 추구하는, 그리고 아이들에게 보여주고 싶은 엄마의 모습은 무조건 완벽하고 강한 존재가 아니라, 때로는 실수하고 함께 배워가는 친구 같은 엄마다.
아이들 앞에서 모든 것을 아는 척하기보다, 모르는 건 모른다고 솔직하게 말하고, 실패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는 엄마. 세상에는 다양한 답이 있다는 걸 몸소 보여주며, 스스로 생각하고 선택할 수 있는 아이들로 자라길 바라는 것이다. 또한 내가 그려가는 엄마의 모습은 무엇보다도 언제든 아이들에게 따뜻한 쉼터가 되어주는 사람이다. 내가 곁에 있을 때 아이들이 자신을 안전하고 사랑받는 존재로 느낄 수 있도록, 아이들의 마음을 이해하고 공감하며 항상 따뜻하게 안아줄 수 있는 엄마가 되고 싶다.
이제 나만의 방식으로, 때로는 부족함이 있더라도 아이들에게 그 모습을 보여주며 천천히, 우리만의 엄마와 아이로서의 관계를 만들어가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