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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령욱 May 17. 2024

자괴감 自愧感

문학소년 - 04

자괴감 自愧感


<제4장>


"완벽을 추구한다면 결코 행복하지 않을 것입니다."


독자 여러분들 중.

스스로를 부끄러워하는 마음을 지녀본 이들이라면,

또는 한 번쯤 성찰을 깊게 하는, 그런 사람들이라면

아마 위 첫 문장에 많은 공감을 지닐 것으로 예상합니다.


저는 스스로가 너무나 부끄러워 남에게 보여주기조차 껄끄러웠던 시절이 있었는데.

그게 다 알고 보니, 남들은 전혀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던 시기이기도 했다는 것을 꽤나 늦게 알아챘던 경험이 있습니다.


그래서 더욱이, 저도 그랬던 것처럼.

스스로를 성찰하는 습관이 잘못되어 있는 어른들도 많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그렇기에,

나 스스로를 성찰하는 태도는 좋은 것이지만,

그에 심도를 조절하지 못하고 빠졌을 때,

비판적 성찰의 태도를 지나쳐, 스스로를 비난하고 있음을 발견하고서.


조금 더 나은 자신을 만들기 위한 여러분의 멋진 노력이,

올곧은 방향으로 나아갔으면 좋겠다는 바램을 이 글들을 통해 전하고 싶습니다.





" 비관의 성찰이 비판이 될 때,

다시끔 앞으로 나아갈 준비를 합니다."





<1> 자괴감 - 인간관계에 완벽함이란 없습니다.


자괴감 自愧感


나를 위한다,

남을 위한다.


나의 마음을 채운다.

남의 마음을 채운다.


나를 위한다.

너를 위한다.


나의 마음을 비운다.

너의 마음을 채운다.


그러다,

끝끝내 놓쳐버렸다.


역시, 이번에도 난.

모두를 잡지 못한 것인가.


그저 그뿐이었다.

그리 생각하려 분투한다.


그러자


빠져드는 마그마 속에

뜨겁게 젖어드는 머리가,


겨울바람에 온몸 감추듯.

차갑게 식어간다.



<2> 성찰. 그 적당의 온도.


나는.

나만의 성찰법이 있다.


그저, 아무것도 하기 싫다. 또는 못하겠다며.

그렇게 발버둥 쳐야 할 때.

그때, 애써 괜찮다며 안식을 주는 나만의 회복 방법이 있다.


잠시동안이나마 그 괴로움에 고뇌하고, 용기 내어 맞서 싸워보고.

온전히 감정으로 느껴 내 마음을 빼앗겨 슬프게 울어보기도,

그와 동시에 이 감정을 인정하고 받아들이며 순응과 적응을 해 나아가,

비로소 자각하고서 인정한 것들을 직면하여


비관의 성찰이, 비판으로 구분이 될 때.


다시끔,

내가 나아가고 있던 방향을 되짚는 이정표를 수정한다.

힘듦에 가려졌던 나의 목표를 다시끔 바라보고,

나 자신을 비판으로, 객관으로 내세워 나를 다시끔 훑고, 뱉어보고, 토해내어.

더 이상 스스로에게 총을 겨누기보단, 잘못하고 실수했던 것들을 바로잡기 위해 부단히 노력한다.


또한,

매 순간 따스하기 그지없던 손길들을 추억한다거나

내게 주신 그 소중한 마음들을 떠올리며 감사하다는 생각으로써.


마치, 모두가 그러듯.

결론적으론 내가 이루어 있는 멋진 사람임이 변치 않다고.


그렇게, 나 자신에게 위로한다.


그렇게. 난 또 단단해지고 있다고.



<3> 내가 못난 짓을 저질러, 나 스스로의 부끄러움을 알며 살아갑니다.



죽어버리고 싶단 말을 뱉기조차

내겐 사치 그 자체라는 생각이 들어,


그저 입 다물고 나 스스로에게 총을 겨누고서

방아쇠에 손가락을 걸고서 매일을 그렇게.


닿을 듯 안 닿을 듯 아슬아슬하게.


그렇게 나를 부끄러워하고.

그렇게 속죄하고.


그 사람이


내게 구원을 줄 수 있다 믿는 그 동앗줄 하나에

나의 목숨을 걸어가며


맹목적으로


그저 걸쇠에 손가락을.


탕.


하며 놓아버리고서


잠들고 일어난다면


다시끔.


그 반복을.


난 오늘도 나를 부끄러워합니다.




<4> 무기력과 자괴감, 그 사이의 무언가. 하지만, 못해도 괜찮기에, 이전보다 나아집시다.


재판 裁判


난 그냥 음. 뭐랄까


내가 힘들면 말야

일단 돌아보는 게 먼저라 생각해서


내가 잘못한 게 있을까?

라고 생각에 빠지곤 해.


그러다 어느 정도 내 선에서 화도 내보고

억울하다 토론해 보고

그러다가.


결국

나를 재판하기 시작해.


나를 변호하는 변호인도,

아주 싼값에,

그치만 효율성이 높은 사람들로만.


그렇게 일단 변호부터 해봐.


그리곤 변호인들의 말대로.

그렇게 조금 이긴듯한?


그런 느낌으로 좀 살다가.


갑자기 마음의 검사들이 의견을 하나둘씩 낸다?


그치, 그때는 변호사들을 이기진 못해.

서로 약간 비등비등?

그치 그런 느낌이지.


그러다 말야,


막상,

내 마음들의 검사들이 몇 번의 끊임없는,

정말 분석적인 항소 끝에


변호인들의 의견을 뒤집고서 강하게 나아가잖아?


그럼.

그게 참 부끄럽다?

그래서 막 검사 의견이 맞나 하고


또 그렇게 살아본다?


근데 그게 옳다는 건 나도 머리로는 아는데

생각보다 올곧은 게 너무 어려운지


결국, 양측에서 합의를 하는 쪽으로 판결이 나.


그래서.

결국 조금 부끄럽지만,


이전보단 조금은 나은 나로

그 재판장을 나오는 거야.


그냥 그래.


그런 거 같아.


난, 내가 힘들면.

내가 힘들면..


그런 거 같아.



<5> 누구든 나 스스로를 부끄러워할 수 있습니다, 거기서부터 자애의 시작입니다.


위화감 違和感


나는,

이제서야 나를 알아가기만 하고 있을 뿐인데.


그게,

이렇게나 아플 줄 몰랐습니다.


당연하게 여겼던 것들이

돌아보면 당연하지 않다는 걸 이제야 아는 것도 많고,


내가 무언갈 사랑하려면

그만큼의 무언갈 또 내려놓아야 한단 것도 이제서야 알게 돼서.


참. 부끄럽습니다.


그렇지만,

그 부끄러운 순간을 이겨내고서


나를 되짚고

아파보고.


그렇게 하나씩 진솔히.

나를 채워가고서


그렇게.

조금씩 위화감을 지워나갑니다.


그렇게,

나 다움을 찾아갑니다.



<6> 자괴감이 이 모든 생각의 시작이었습니다.


자존심 自尊心


아집이 있었던 터라,

자존심을 굽히지 못해 벌어진 일들이 많습니다.


싸움이 일어난다면,

명분을 가지고 싸웠고.

명분이 없으면 책임지지 않았습니다.


쓸데없는 걸 아는 자존심을 내세워서

옳고 그름을 낱낱이 따져야만

어떤 싸움에서든 그렇게 해야만.

저의 아집이 충족되었습니다.


허나,

나이를 차차 머금고 난 뒤.


좋은 사람이 무엇인지,

가치 있는 행동이 무엇인지 배워가니

쓸데없는 자존심만큼 보기 흉한 게 없더군요.


나와 다르다 해서 인정을 하되, 

그 인정까지만 하고 포옹을 하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이젠 좋은 사람으로,

나의 이상을 실현시키기 위해.


어렵겠지만,  

관점을 바꾸려 합니다.


자존심이 아닌, 

나의 판단으로, 이성적이게 살겠습니다.


조금, 내려놓고서.

자유로운 이기주의자가 되어보려 합니다.


누군가 말을 하고,

그 말이 내게 이득이라면.


그럴 땐, 

자존심을 굽히고서 듣고 수용하고

바꿀 수 있는 태도를 가지겠습니다.


혀라는 게 나의 인생의 향로의

방향키와 같다고 그랬습니다.


내게 좋은 것들을

잘 판단해서,

잘 뽑아서.


그렇게

자유로이 좋은 사람으로 거듭나려 합니다.


그 과정에선

아무도 나의 자존심으로서 상처받지 않길 노력하겠습니다.



나를 사랑하기 위해. 올바른 자괴감을, 성찰을 그렇게 늘려갑시다.






첫 문장.


레오 톨스토이 - 안나 카레니나 中

    "완벽을 추구한다면 결코 행복하지 않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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