싱가포르 이야기 - 나만 알고 싶은 보물 장소 2
맥리치 리저브(MacRitchie Reservoir)는 싱가포르 중심부에 있으며 커다란 저수지를 끼고 있어 호수를 바라보며 숲을 사랑하는 사람들이 산책하러 오기에 알맞은 장소이다.
이곳을 중국인 친구 제인과 오고는 했었는데, 그녀와의 나들이는 차분하게 산책에 집중할 수 있게 해 주었다.
외국인 친구의 가장 큰 장점은 문화 차이가 다른 걸 인지하고 만나니 좋고 싫음도 크게 없고 ‘그냥 다르구나’라고 생각할 수 있다는 것이다.
굳이 말을 많이 안 해도 되니 오롯이 산책을 즐길 수도 있고, 말실수할 일도 혹은 말 때문에 실망할 일도 없다. 물론 서로 영어가 길지 않기에 마음속 깊은 이야기를 할 순 없지만 웃음, 표정, 손짓만으로도 대화는 충분히 가능하다.
제인을 알게 된 계기는 마스크를 착용하고 걷는 모습이 원래 알고 지내던 친구로 착각하여 한참을 이야기하였는데 자세히 보니 전혀 모르는 사람이었다. 다행히 비슷한 또래 아이가 있으며 같은 콘도에 살기도 하여 금방 가까워질 수 있었고, 지금은 싱가포르에서 가장 친한 친구가 되었다.
이렇듯 인연은 있는 것 같다. 그러니 인연을 찾기 위해 애써 모든 노력을 기울이지 않아도 된다고 믿는다. 어차피 인연이라면 굳이 노력하지 않아도 언젠간 알아보고 만나게 될 터이니.
한 번은 맥리치 트리탑 워크 트레일 헤드(Macritchie Treetop walk trailhead) 방면으로 산책하였는데, 이곳은 맥리치에서 가장 높은 지점인 부킷 피어스와 부킷 칼랑 봉우리를 연결한 곳으로 땅 지면으로부터 25m 이상 상공에 놓인 다리이다. 그렇기에 이곳에서의 산책은 하늘에서 숲 아래를 내려보며 걷는 기분을 느낄 수 있다.
하지만 이 길은 ‘ONE-WAY ONLY’이기에 한번 발을 들이면, 앞으로만 갈 수 있지 뒤로는 나올 수 없다.
우리의 인생이 그런 것처럼.
덕분에 멋진 경치는 충분히 감상할 수 있지만 많이 걷게 되니 마음을 단단히 먹고 와야 한다.
나 또한 처음 이곳을 제인과 방문했을 땐 예상치 못한 경로에 한참을 걷다 지쳐 아무 생각 없이 정면만 응시한 채 걸었던 적이 있다. 그때 갑자기 제인이 하는 말
“안녕하세요. 언니”
지난번 알려준 ‘안녕하세요’와 ‘언니’가 생각났다며 웃음을 주는데 참으로 사랑스러웠다.
싱가포르에 오기 전 중국인에 대해 그다지 호감은 아니었기에 중국인 친구와 이렇게 가까워질 거라고 생각조차 하지 못하였다. 지난 싱가포르에서의 1년은 정형화된 많은 생각들을 바꾸어 주었다. 마음속의 편견, 선입견 등을 과감히 깨 주었고 다양한 국가와 인종의 친구들을 사귀면서 가치관도 변하고 세계관도 확장됨을 느꼈다.
오랜 기간 직장생활을 하면서 많은 사람을 만나봤다고 자부했기에 직감과 첫인상을 중요시했던 난 그간 ‘저런 사람일 거야’라고 마음속으로 정형화시켜놓고 섣부른 판단을 하기도 하였다. 그래서 한쪽 면만 보고 기대하고 다른 쪽 면을 보고는 실망하는 때도 있었고, 드러나지 않은 옥석을 놓치는 일도 있었다.
변화된 가치관과 세계관으로 다시 살 수 있도록 도와준 지난 1년과 싱가포르, 거기서 만난 다양한 사람들 이 모든 것에 감사하다.
"나를 죽이지 않는 모든 경험들은 나를 키우는 스승이 된다." <괴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