싱가포르 이야기 - 나만 알고 싶은 보물 장소 3
대학교 시절, 인생의 소중한 친구를 두 명 사귀었다. 한 명은 가끔 만나도 편안히 수다를 떨 수 있고 마음이 잘 통하는 절친한 여자 친구이며, 또 한 명은 지금 나와 같이 사는 20년 지기 절친 남편이다. 남편의 첫인상은 순수한 그 자체였다. 작은 눈으로 환하게 미소 짓는 모습이 아름다워 보였고, 우린 학교 가톨릭 청년 성서 모임을 통해 같이 성서를 공부하며 가까워져 7년을 사귀고, 13년째 같이 살고 있다.
2020년 말 남편은 회사에서 지원해 주는 해외 연수 프로그램에 덜컥 합격하였고, 우리 가족은 그렇게 1년을 싱가포르에서 생활하게 되었다. 싱가포르에서 남편은 학교에 다니며, 교수님 밑에서 일도 했는데 시간 여유가 있는 날은 나와 함께 여행을 가기도 했다.
포트캐닝 파크(Fort Canning Park)는 남편과 여행 다녔던 장소 중 가장 기억에 남는 곳이다. 산책하며 사진 찍기를 좋아했던 우리에게 (싱가포르 오기 전에는 둘 다 사진의 ‘사’자도 몰랐으나, 대충 찍어도 작품 사진이 되는 이곳의 풍경에 매료되어 핸드폰으로 사진 찍기가 우리의 취미가 되었다.)
그중 가장 인상 깊었던 장소를 꼽으라면 바로 이곳이다.
이곳은 산책하기에도 좋고 사진 촬영 명소도 많이 있다. 특히 포트캐닝 파크 트리 터널(Fort Canning Park Tree Tunnel)에 들러 지하통로와 연결된 나선형 계단에서 꼭 인생 사진에 도전해 보길 바란다. 서로의 사진을 찍어주며 현실은 중년 부부이지만, 잠시나마 신혼부부로 돌아간 듯한 느낌이 들었다.
포트캐닝 파크의 또 다른 하이라이트는 상닐라 우타마 가든(Sang Nila Utama Garden)이다. 벽돌로 된 아치형 통로를 통해 걷다 보면 마치 발리에 온 듯한 착각에 빠져든다. 가끔 작은 도마뱀들이(싱가포르에는 작고 귀여운 게코 도마뱀들을 많이 볼 수 있다) 이 통로에 멈추어 쉬기도 하니 주위를 살피며 자세히 관찰해보는 것도 좋을 것이다.
남편을 따라 싱가포르에 오기로 하고, 갑작스러운 휴직을 결정하면서 한참을 달려갈 시기에 과연 이게 옳은 길인가 가끔 의구심을 갖곤 했다. 그런데 산책을 통해, 삶의 쉼표를 통해 무엇을 좋아하고, 무엇을 원하는지 숨 한번 돌리며 생각할 수 있는 여유를 얻었다.
바쁘게 사는 걸 좋아하기도 하지만, 지난 15년간은 출산휴가 외엔 쉬지 않고 일하며(대다수 직장인이 그러겠지만) 나 자신이 점점 소모되고 있음을 느꼈다. 아침 6시가 조금 넘어 집을 나선 후 저녁 늦게 들어와 아이들에게 인사만 하고 소파에 누워 지친 몸을 이끌고 다시 내일을 준비해야 하는 일상은 숨이 턱턱 막히고 권태로웠다.
input 없이 output만 내야 하고 엄마로서, 회사원으로서, 며느리, 딸로서 어느 하나 만족할만한 역할은 제대로 하지 못한 채 시간은 흘러갔고 그렇게 나는 사라져 갔다.
지난 1년 삶의 쉼표를 통해 이런저런 역할에서 벗어나 고요히 나로서 있을 수 있는 시간을 가졌다. output만 내야 하던 삶에 좋아하는 것들로 채워 넣고, 인생의 쉼표를 통해 얻은 여유를 바탕으로 사라져 가던 나를 찾아보고 다시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힘이 생겼다.
내성적이고 말수는 적지만 새로운 사람 만나고, 새로운 곳에 가보는 것을 좋아하는 나
호기심으로 관찰하고, 다양한 경험과 시도해보는 것도 좋아하는 나
해보고 싶은 것도 많고, 처음 해보는 것도 많은 나.
이런 나를 더욱 사랑하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