싱가포르 이야기 - 각기 각색의 주요 타운 2
나이가 들어감에 따라 겸손한 사람들이 참 멋있다. 본인보다 나이가 어리고, 아랫사람이지만 존중해 주는 모습에서 인생의 내공이 느껴지고 그 사람의 품위가 있어 보인다. 간혹 무턱대고 혹은 한두 번 만났다고 반말을 하는 사람들이 있다. 제 딴에는 편안함, 친근감의 표시라 할 수도 있겠지만, 예의 없어 보여 별로 가까이 지내고 싶지 않다.
영어에는 반말이 없다고 하지만 ‘Please, Could you’ 등과 같은 공손함의 표현도 있다. 처음에는 존댓말로 천천히 다가가며 나중에 친해지게 되면 그때 서로의 동의하에 말을 놓으면 안 되는 것일까? 물론 반말, 존댓말이 뭐가 중요하냐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말이 참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말의 표현, 속도 등을 통해 다른 사람을 배려하고 자신을 나타낼 수 있으니까.
싱가포르에 살면서 외국 사람들뿐 아니라 다양한 한국 사람들도 만났다. 친하게 지내던 언니 한 명은 동생들을 부를 때 ‘여사’라는 호칭을 썼다. 예를 들면, 내 이름이 윤XX이니 윤 여사인 셈인데 이 호칭이 참으로 마음에 들었다.
대부분 여기서 만난 한국 사람들은 아이의 같은 학교 친구 엄마들인데, 보통 각자 호칭을 부를 때 아이의 이름을 앞에 붙여 ‘~엄마’(예를 들면 ‘도연 엄마’)라 부르곤 했다. 그런데 윤 여사라는 호칭으로 불리니 특별하게 존중받는 느낌이었다. 여사의 사전적 의미가 ‘결혼한 여자를 높여 이르는 말’ 혹은 ‘사회적으로 이름 있는 여자를 높여 이르는 말’이기 때문일 수도 있다. <출처 : 네이버 국어사전>
아무튼 서로를 ‘~여사’라 부르는 언니, 동생들 4명 이 종종 가던 곳이 홀랜드 빌리지였다. 홀랜드 빌리지의 느낌은 싱가포르 안의 유럽이다. 그렇기에 서양인들이 즐겨 찾는 곳이기도 하고, 맛집과 예쁜 카페도 많아 만남의 장소이기도 하다.
멕시코 음식을 좋아하기에 홀랜드에 있는 차차차 멕시칸(Cha Cha Cha Mexican)에 종종 갔다. 싱가포르 물가는 어마어마했지만 이티고(eatigo)라는 할인 앱(app)을 활용하여 적게는 10%에서 많게는 50%까지 할인받으며 식당을 이용할 수 있었다. 싱가포르에서 많이 사용하는 추천 앱으로 촙(chope)도 있으니 참고하길 바란다.
※ 각 앱에서 제공하는 할인은 그때그때 다르니 앱 이용 시, 현재 기준 가능한 식당을 확인 후 사용하길.
아이스크림을 좋아하는 편은 아니지만, 아이들과 홀랜드 빌리지에서 가끔 가던 아이스크림 가게가 있다. 선데이 폭스(Sunday Folks)라는 디저트 전문 레스토랑인데 대기 줄이 길어 1시간까지 기다리는 경우가 허다하지만 그럴만한 가치가 있다. 특히, ‘얼그레이 라벤더 아이스크림’은 아이스크림의 달콤함과 얼그레이의 씁쓰름한 맛이 적절히 조화를 이루었고, 곁들어 준 바삭한 구운 아몬드 스낵과 함께 먹으면 입안이 정말 행복해진다. 우리나라에 가져오고 싶을 정도로 가끔 한국에서도 이 맛이 생각난다.
홀랜드 빌리지에서 기억나는 또 다른 한 사람이 있다. 영국문화원에서 만난 인도네시아 친구 ‘루시’이다. 영국문화원은 싱가포르에 있는 동안 2021년 4월부터 한국에 돌아오기 전까지 다녔는데 영어도 배우고 여러 나라에서 온 다양한 외국인 친구들을 사귈 수 있어 좋았다.
인도네시아 루시는 인도 계열이지만 굉장히 강해 보이는(?) 인도인들과는 달리 푸근하고 친근한 미소를 짓고 있어 첫인상부터 호감이었다. 루시와 가까워지려나 할 때쯤 중간고사를 봤는데, 그 이후로 출석하질 않아 속으로 ‘연락처라도 물어볼걸’ 하며 안타까워했었다.
비가 주룩주룩 내리는 어느 날, 혼자 산책이 하고 싶어 홀랜드 빌리지를 걷고 있었다. 갑자기 낯익은 얼굴이 날 보며 반가이 아는 척을 하길래 자세히 봤더니 바로 루시였다. 안타까운 마음이 텔레파시로 전달된 것인지, 아니면 만남의 광장인 홀랜드 빌리지여서 그런 건지 모르겠지만(난 전자라고 굳게 믿고 있다) 둘은 그 자리에서 바로 연락처를 교환하고 만날 약속을 잡았다.
알고 보니 루시는 한국 드라마를 굉장히 좋아해 송중기 씨를 비롯한 다양한 한국 배우들을 알고 있었고 우리나라에 많은 호감이 있었다. (싱가포르에도 한류가 불고 있어 K-Drama의 인기가 높다) 만나서 간단한 한국말을 알려주기도 했는데 나는 루시를 ‘루시 언니’라, 루시는 나를 ‘윤 동생’이라 부르기로 했다. 덴마크 남편과 결혼하여 큰아들은 덴마크로 작은아들은 호주로 유학을 보내고 본인은 남편과 싱가포르에 사는 루시 언니는 정이 많고 따뜻한 사람이었다.
싱가포르를 좋아하는 이유는 미세먼지 없는 맑은 하늘과 푸르른 숲, 다양한 문화가 공존해 있는 매력적인 도시이기도 하지만, 그보다 더 기억에 남는 것은 이처럼 좋은 사람들과 함께할 수 있었던 행복한 추억 가득한 장소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