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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별하구름 Oct 27. 2024

4. 인턴(1)

소설


대학을 졸업하기 전, 휴학 후 인턴의 신분으로 첫 직장을 만났다. 더 좋은 직장에 취업하려면 스펙을 쌓아야 했고, 신입사원이 되려면 경력이 있는 사람이어야 했다. 문제는 금보다 귀하다는 '금턴'이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인턴 자리도 얻기 어려운 척박한 현실이었다.

그럼에도 대학 생활을 고통스러울 정도로 치열하고 바쁘게 해낸 노력을 알아주기라도 한 걸까, 운이 좋게도 꿈이었던 회사에서 일할 수 있게 되었다. 인턴으로 들어가기도 힘든 곳이었고 꼭 일해보고 싶었던 곳이라 합격 소식에 세상을 다 가진 듯 기뻐서 방방 뛰어다녔다. 그래서 인턴 생활을 열심히 해내고 나중에 졸업 후 꼭 정직원으로 입사해야지 하는, 꿈과 희망으로 부풀어 있는 아주아주 큰 풍선을 타고 들어가 첫 회사 생활을 하기 시작했다.

본래 내성적인 성격임에도 최대한 노력하며 보다 밝고 의욕적인 모습으로 내내 임했다. 그러다 보니 초반에는 집에만 오면 저녁도 먹지 못한 채 그대로 쓰러져 자 아침에 깨기 일쑤였다. 그래도 좋았다. 나에게 있는 엄청나게 큰 풍선 덕분에 아침이 되면 다시 또 힘을 낼 수 있었다.

인턴들은 각 부서로 배치되어 일을 하게 되었다. 사수와 부서 내 팀원들은 친절하고 다정한 사람들이었다. 인턴은 나까지 여자 세 명, 남자 한 명으로 동기들과는 점심시간마다 모여 이야기를 나누며 서로 북돋아 주었다. 모든 게 완벽해서 무슨 복인지 모를 회사 생활을 보냈다. 일을 배우며 바쁘게 지내다 보니 회사에 들어온 지도 벌써 5개월이라는 시간이 흘렀다.

몇 주 후면 인턴 중간 평가로 프로젝트 발표를 해야 했다. 부서에서 배운 일을 토대로 각자 주제를 정해 발표하는 것이었는데 대학 과제와는 비교도 되지 않을 정도로 어려워 난감했다. 날짜가 다가올수록 동기들과 난 침울한 분위기 속 저마다 부담감을 토로하곤 했다. 부담이 된 나머지 악몽까지 꿀 정도였다. 하지만 목표했던 회사의 인턴으로 들어와 실력을 확인받을 수 있는 첫 번째 기회였기에 정말 잘 해내고 싶었다. 그래서 후회가 남지 않을 만큼 최선을 다해 준비했다.
 
기대하지 않았고 고대하지 않았던 그날이 되었다. 이윽고 프로젝트 제안 시간에 이르렀고 동기들은 하나 둘 앞으로 나가 발표를 진행했다. 각 부서 팀장, 팀원들이 모두 모인 자리라 중압감이 상당했다. 하필이면 내가 마지막 순서라 심장이 몸밖으로 튀어나올 것만 같았다. 청심환이라도 먹는 건데 하고, 내내 후회했다.


한 명 한 명 발표가 끝날 때마다 분위기는 살벌해져만 갔다. 곧바로 팀장들의 신랄한 평가가 이어졌기 때문이다. 비난이 아닌 오로지 객관적인 비판이어서 더 비수가 되어 꽂히는 듯 했다.

냉엄한 평가가 끝남과 동시에, 제출했던 기획안에 관해 팀장들이 수정할 사항이나 의견 등을 쓴 평가서를 동기들에게 바로바로 주었는데 종이는 온통 각기 다른 필체로 빼곡했다. 발표를 끝낸 동기들의 얼굴은 흙빛으로 바뀌어갔으며 실망한 표정이 역력해 금방이라도 울음을 터뜨릴 것만 같았다. 분위기가 점차 침울해져가 심장이 고동치다 못해 이러다 쓰러지는 건 아닐까 생각하는 사이 기어이 안타깝게도 마지막 순서인 내 차례가 되었다.

대학교 때 수없이 하던 발표였는데도 앞으로 걸어나가는 데 다리가 다 후들거렸다. 떨리는 목소리로 인사말을 건넸다. 막상 발표를 시작하자 요동치던 심장은 점차 차분해졌다. 실전에 강한 타입이긴 했다. 마지막 감사 인사와 함께 스스로는 만족스러운, 직장에서의 첫 발표를 마쳤다.


이제 살벌한 평가만이 남아 있었다. 긴장돼서 심장 박동은 다시 빠르게 뛰었고 사시나무 떨 듯 온몸을 와들와들 떨고 있을 뿐이었다. 눈을 질끈 감고 있고 싶었지만 그럴 수는 없으니 차가워진 양 손을 피가 통하지 않을 정도로 꼭 맞잡고 있었다.

팀장들의 입이 움직이기 시작하고, 나를 향해 날아올 줄 알았던 날카롭게 뾰족한 말 대신 달달한 평가가 들려왔다. 얼떨떨한 표정으로 서 있다 평가서를 받아들곤 자리로 돌아가 털썩 앉았다. 평가서에도 수정 사항은 거의 없었고 의견이 적혀 있었는데 그마저도 칭찬이 담긴 글이었다. 놀라워서 어안이 벙벙했고 양볼은 너무 뜨거워 불타오르는 듯했다. 당황스럽게 행복했고, 정말이지 구름을 타고 두둥실 떠다니는 느낌이 들었다.

퇴근은 늘 즐겁지만 그 어느 때보다도 기쁘게 퇴근을 했다. 내일은 또 주말이라 그동안 준비하느라 아꼈던 잠을 몰아서 푹 잘 수 있었다. 앞으로 남은 인턴 생활도 더 열심히 해보자고 다짐하며 마냥 해맑게 주말을 보냈다.


그렇게 첫 직장에서의 행복은 이 주말로 끝이 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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