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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별하구름 Oct 27. 2024

2. 보리차 냉라면

소설


난 어릴 때부터 시골을 좋아했다. 실은 시골을 잘 가보지 못한 아이라 텔레비전 속 시골의 모습을 좋아했다는 말이 맞겠지만.


방송에 나오는 시골을 보고 있으면 괜스레 포근한 느낌이 들어 참 좋아 보였다. 강아지들과 함께 자유롭게 뛰어놀고 싶었고 여름 납량특집 방송에서 정자에 앉아 시원한 수박을 먹으며 무서운 이야기하는 걸 보면 나도 그래보고 싶었다.


그래서 명절 때마다 시골로 가는 아이들을 부러워하며 나도 시골로 명절을 보내러 가고 싶다고 진상 어린이처럼 투덜거린, 이제 와서 가끔씩 떠올려 보면 웃음이 나는 기억이 있다.

그러다 언젠가부터 꿈에 그리던 시골을 매년 갈 수 있게 되었다. 나는 우리 할머니를 따라 차를 타고 멀리 있는 시골집에 고춧가루를 사러 갔다. 어떻게 알게 된 곳인지는 모르지만 직접 농사지어 고춧가루를 파는 집이라 했다. 그곳에 처음으로 가보게 되었을 때, 아쉽게도 귀여운 강아지는 없었지만 텔레비전에서만 보던 푸근한 시골집과 아담한 마당이 마음에 쏙 들었다.

우리가 멀리서 온 걸 아는 고춧가루 할머니는 점심으로 라면이라도 먹고 천천히 쉬다 가라며, 혹여나 불편할까 고춧가루만 사고 바로 가려는 우리를 한사코 말렸다. 고춧가루 할머니가 라면을 끓이는 동안 난 마당에 있는 돌을 구경하며 기다리다가 얼른 와서 먹으라는 소리에 상 앞에 가서 앉았다.

그런데 라면이 좀 이상했다. 하늘빛 도자기 그릇에 라면이 덜어져 있었는데 면 주위로는 빨간 국물 대신 누런 물이 담겨있었다. 어, 이게 뭐지? 하고 순간 당황했다. 난 의아한 표정으로 우리 할머니 눈을 바라보았다. 그러자 할머니가 뱅긋 웃더니 말했다.

"아, 풀잎이가 아가라 매운 거 못 먹는 줄 알고 할머니가 보리차 물 부어주셨나 보다."

할머니들 눈에는 아기일지 몰라도 난 매운 거를 어느 정도 잘 먹는 늠름한 어린이였다. 친척 집에 갔을 때에도 매운 걸 잘 먹는다는 칭찬을 듣고선, 왜 그랬는지 모르지만 눈물 콧물 다 흘리는데도 안 매운 척하면서 청양고추를 꿋꿋이 막 퍼먹던 나였다. 오히려 나이를 먹으면서 매운 음식을 잘 먹지 못하게 되었다. 좋아하지 않는 쪽에 가깝달까. 아무튼 우리 할머니가 나에게 설명해 주는 소리를 듣고 고춧가루 할머니는 당황한 듯 말했다.

"아구, 우리 손주 생각하고 당연히 못 먹는 줄 알고... 어쩌지? 다시 국물에 담궈줄까, 아가?"


"아니에요, 괜찮아요! 맛있어 보여서 이렇게도 먹어보고 싶어요!"

아이였지만 고춧가루 할머니의 마음을 어렴풋이 느꼈던 것 같다. 어린아이를 생각해 준 그런 보드라운 마음. 면들을 가지런히 도자기 그릇에 담고선 혹여나 매울까 걱정되어 애써 고이 끓여 냉장고에 넣어두었던 보리차 물을 부어준, 정성이 가득 담겨있는 귀한 라면이었다. 그래서 당황했던 할머니의 마음을 어루만지고 싶어 그냥 먹기로 한 것이다.

쑥스럽게 웃으며 대답을 하고는 라면을 먹기 시작했다. 솔직히 말하면 이게 무슨 맛이지? 하고 되뇌게 되는, 이 맛도 저 맛도 아닌 밍밍한 라면이었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그 후로 라면을 먹을 때면 계속 생각이 났다. 추억이 곁들여진 보리차 냉라면의 맛이.


그래서 시원한 보리차 물을 부어놓은 앞접시에 라면을 조금씩 덜어 담가 먹기 시작한 것이다. 샤부샤부 채소를 간장 소스에 담가먹듯이, 메밀을 국물에 담가 먹듯이.


다만 그때처럼 처음부터 라면 전체를 보리차에 담가놓으면 배어있던 양념이 다 씻겨 라면의 맛이 아예 흐려질 수 있어, 반 정도는 원래대로 먹고 난 다음 서서히 불기 시작한 반을 보리차 물에 살짝씩 담가 먹는다. 불은 라면을 싫어해서 이렇게 먹으면 라면 한 그릇을 매력적인 두 가지의 맛으로 아주 맛있게 즐길 수 있다.

고춧가루 시골집에 처음 방문했던 날 얘기를 다시 이어하자면, 생애 처음이었던 보리차 냉라면을 맛보고 난 후 할머니들이 담소를 나누고 있는 사이 난 심심해서 집안 이곳저곳을 구경하며 돌아다녔다. 은행에서 준 똑같은 달력인데도 시골집의 달력은 무언가 특별해 보였다.


그런 내가 심심해 보였는지 고춧가루 할아버지는 나의 손에 파리채를 비장하게 쥐여 주면서 파리를 잡으라는 임무를 맡겼다. 파리 한 마리 당 10원. 동기 부여를 해 주니 집중해서 파리만 잡으러 다녔다. 파리가 정말 많아서 잡아도 잡아도 끊이질 않았다. 정신없이 잡은 파리는 한곳에 모아두었다.

어느덧 집에 갈 시간이 되었고, 난 임무에 대한 대가 2-300원을 기대하지 않는 척하며 기다렸다. 하지만 애석하게도 내 손에 쥐어지는 동전은 없었다. 할아버지가 까먹은 건 아닐까, 왜 주지 않는 걸까 하며 당황했던 걸 생각하면 아직도 조금은 억울하다. 파리들 사이에선 날 블랙리스트나 사이코패스 어린이 명단에 올렸을 지도 모를 일인데.


그 후로도 몇 년 간 그 집을 갈 때마다 할아버지는 어김없이 항상 파리 잡는 임무를 해내면 한 건 당 10원을 준다는 같은 말을 했지만 나는 더 이상 믿지 않았다. 그래도 파리는 계속 잡았다. 혹시 모른다는 기대는 아니고 당시에 게임처럼 생각했던 것 같다. 가끔씩 괜스레 미안한 마음이 들어 어린이 풀잎을 대신해 파리들에게 사과의 마음을 멋쩍게 전하곤 한다.

그렇게 매해 가던 시골집도 어느 순간부터 근처에서 고춧가루를 사게 되면서 자연스레 더 이상 가지 않게 되었다. 너무 아쉬웠지만 어른이 된 아직도 굉장히 아름답고 소중한, 햇살 같은 추억으로 떠올라 뿌듯하다. 고춧가루 시골집 할머니, 할아버지의 얼굴은 안타깝게도 전혀 기억나지 않아 안개가 낀 듯 뿌옇지만, 사랑스럽고 좋은 어르신들이었다는 건 확실하다. 몇 년이 지나고 그곳의 자리에는 아파트가 들어서며 마을도 사라졌다고 들었다.

그리고 또 몇 년이 흐른 후 그곳 근처의 아담한 이 마을에 나의 첫 작업실이자 새 보금자리를 얻은 것이다. 이곳은 와 본적도 없었고 시골집이 있던 마을도 아니었지만, 근처라는 이유만으로도 추억이 담겨있고 또 새록새록 느낄 수 있어 좋았다. 그때와 같이 아름답게 반짝이는 기억을 쌓을 수 있을 것 같기도 했다. 한편으로는 수수께끼로 가득한 새로운 곳이라는 사실에 마음이 설레어서 그 나름대로도 좋았다.


이 마을이라면 다시 힘차게, 인생의 또 다른 새 출발을 할 수 있을 거라는 왠지 모를 확신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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