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스 한 대를 또 보냈다. 언제 오려나. 버스를 기다린 지도 벌써 한 시간이 다 되어간다.
평소였다면 지루함을 견디다 못해 짜증이 스멀스멀 밀려왔었겠지만 오늘은 자꾸만 미소가 새어 나왔다.
정류장 의자에 앉아 주위를 찬찬히 둘러보다 또 구름을 올려다보며 설렘과 걱정스러움, 이런저런 감정에 집중하다 보니 시간 가는 줄 몰랐다.
잠시 후, 버스 오는 소리가 또다시 들려왔다. 내가 탈 버스인가? 고개를 들어 버스 번호를 확인하곤 서둘러 짐을 챙겼다. 정류장 의자에 잠시 맡겼던 큰 배낭을 어깨에 다시 둘러메고, 의자 옆에 놔뒀던 여행 가방 손잡이를 잡아끌면서 한 발자국 앞으로 나왔다. 버스를 처음 타보는 것도 아닌데 하루에 몇 대 없는 귀한 버스여서 일까, 서서히 정류장에 가까워지자 심장이 콩닥콩닥 뛰기 시작했다.
정류장 앞에 멈춰 선 버스 문이 열리자, 여행 가방을 들고 올라선 후 힘차게 인사를 건넸다.
"안녕하세요!"
"네, 안녕하세요!"
버스기사의 유쾌한 인사 소리가 텅 비어있던 버스 안을 가득 메웠다. 즐거운 기분을 실은 여행 가방을 끌면서 걸어가 2인석 창가 쪽 자리에 앉았다. 30분 정도를 더 타고 들어가야 해서 배낭은 옆 좌석에 내려놓고, 여행 가방은 굴러다니지 않도록 배낭 앞 통로 안쪽으로 들여놓았다.
곧이어 버스가 출발하고 난 창문을 조금 열어 봄에서 여름으로 바뀌어 가고 있는 어중간하기에 특별한, 이때만 느낄 수 있는 바람을 눈을 스르르 감은 채 얼굴에 맞아본다. 코를 간지럽히는 5월의 시골 내음은 마음마저 간질간질하게 만들다 몸속까지 상쾌하게 했다. 달리는 풍경을 눈에 담으며 사그락사그락 자연이 내는 소리를 귀에 담다 보니, 목적지인 마을에 어느새 도착했다.
"감사합니다!"
기사에게 인사를 건네며 버스에서 내렸다. 여행 가방 손잡이를 위로 쭉 당겨올린 후 그 위에 배낭을 안정적으로 얹어두었다. 약하게 두근거리는 떨림을 가라앉히기 위해 심호흡을 크게 한 번 하곤 짐을 덜덜 끌면서 발밤발밤 걸어 들어가기 시작했다.
마을에는 사람 하나 보이지 않았고 낯선 사람이 왔다고 조잘거리는지, 새들만이 환영해 주었다. 경계가 아닌 환영..., 맞겠지? 맞겠지. 그런 새들을 향해 반갑다는 답례의 눈 인사를 보냈다. 실은 새똥만은 안된다는 공손한 부탁의 눈 인사이기도 했지만.
금세 한 건물 앞에 다다랐고 발걸음을 멈춰 고개를 들곤, 세월에 바래고 지워진 간판을 올려다보면서 다시 한번 숨을 깊게 들이마셨다가 내쉬었다. 그리곤 나지막이 마음속으로 속삭였다.
드디어 도착했다, 앞으로 반짝이는 하루하루가 펼쳐질 나의 새 보금자리. 설레어 빛나는 눈빛으로 힘차게 문을 열었다. 내 삶의 새로운 문도 함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