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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J Apr 26. 2022

한 사람

 생각 하나. 황당한 아줌마 vs. 당황한 저승사자


 아내는 겉으로는 씩씩하고 나에게 일부러 말도 거칠게 하는 편인데, 귀신이나 도깨비 이야기를 무서워하는 소녀 같은 여자이고, 가위에도 자주 눌리는 여린 여자입니다. 어느 날 아내가 잠결에 가위에 눌린 이야기를 해주었습니다. 화장실에서 저승사자와 같은 검은 기운이 나오더라는 것입니다. 아내는 무서움에 떨면서도 벌떡 일어나 그쪽으로 다가가서 남편 등짝 때리듯이 마구 때렸다고 합니다. 그 무렵 아내가 나에게 재미있는 동영상을 보여주었는데, 신혼 초의 아내는 프라이팬을 고를 때 부침개 뒤집는 시늉을 몇 번 하고 나서 고르고, 중년의 아내는 위에서 아래로 내리치는 시늉을 몇 번 하고 나서 고르는 영상이었습니다. 그 영상의 영향이었는지 어쨌든 아내는 그와 유사하게 그 저승사자를 마구 때렸다고 합니다. 그랬더니 이 저승사자인지 가위인지 하는 것이 매우 황당한 표정을 지으면서 “아줌마 왜 그래? 이 아줌마가 미쳤나….” 그러더라는 것입니다. 아내가 아랑곳하지 않고 계속 때리니까 “이 아줌마가 진짜 미쳤나? 아유 그냥….” 그러더니 다시 화장실로 들어가 버리더라는 것입니다. 처음에 화장실에서 저승사자 운운할 때까지만 해도 약간 으슬으슬했는데, 저승사자의 코멘트를 듣고서 공포물이 갑자기 코믹물이 되어버렸습니다. 그 꿈 이후로는 가위에 눌리는 일이 없어졌다고 합니다.


 가끔 먼 훗날 백발의 노부부가 된 아내와 나의 모습을 생각해 보곤 합니다. 아내가 나보다 나이가 어리니 나중에 더 오래 살 가능성이 많은데, 혼자 밤에 가위에라도 눌리면 저세상에 가 있는 남편이 참 안타까울 것입니다. 그리고 말로는 나 없이도 잘 살 수 있으니 적당히 살다가 가도 된다고 말은 하지만 홀로 된 아내의 모습을 생각하면 좀 애잔합니다. 어쨌든 그 ‘황당한 아줌마’ 사건 이후로는 가위에 눌리는 일이 없다니 다행입니다.


 추신 : 그런데 아내의 꿈에 나온 그 저승사자가 아무래도 저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새벽에 화장실에 갔다 왔을 것이고, 부스럭거리는 바람에 그것이 아내의 꿈속에서 화장실에서 나온 괴물체로 보였을 것 같습니다. 





생각 둘. 그대의 한 사람


영화 <주유소 습격사건>을 보면, 주유소 습격범들인 무대포(유오성 분) 패와 중국집 배달원들인 철가방 (김수로 분) 패가 패싸움을 하는데, 무대포가 철가방만을 쫓아다니는 장면이 나옵니다. 당황한 철가방이 왜 자기만 쫓아다니냐고 따져 물으니까, 무대포가 “나는 원래 한 놈만 패”라고 대답하고 계속 쫓아다닙니다. 철가방은 “그게 저예요?”라고 하면서, 뭐 이런 게 다 있냐는 황당한 표정으로 이리저리 도망을 다닙니다. 무대포는 패싸움의 원리를 알고 있습니다.


 테레사 수녀는 “자신은 대중을 구원하려고 하지 않고, 다만 한 개인을 바라볼 뿐”이라고 말했습니다. “한 번에 단지 한 사람만을 사랑할 수 있고, 한 번에 단지 한 사람만을 껴안을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내 곁을 스쳐 간, 아니 닿지도 못했지만 나를 설레게 했던 모든 여인을 사랑하고 싶어도 그 마음을 실천할 수는 없을 것이고, 또 실천해서도 안 될 것입니다. ‘모두 다 사랑하리’라는 제목의 노래를 좋아하지만, 언제부터인가 노래 가사 중에 내게도 사랑이 있었다면 그것은 오로지 당신뿐이라는 대목을 좋아하게 되었습니다. 가슴 속의 사랑을 실천할 수 있는 한 사람이 그대에게 있다면, 그대는 다행스러운 사람입니다.


 때로는 오직 한 사람이 중요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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