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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J Apr 26. 2022

그대 생각

생각 하나. 때 아닌 그대

 

그대 생각은

겨울에 피어버린 꽃처럼

겨울들꽃처럼

차가운 바람 다시 불어오는데

 

그대 생각은

봄에 내리는 눈처럼

봄눈송이처럼

따뜻한 바람 다시 불어오는데





생각 둘. 추억이라는 것


기차를 타고 싶습니다.

경춘선 옛 기차를 따라 흐르는

빛나는 강변을 바라보고 싶습니다.

기차를 타고 싶습니다.

경춘선 옛 기차를 따라 흐르는

활기찬 숲길을 지나가고 싶습니다.


돌아오는 기차 창밖 너머에 

강변과 숲길이 어둠 속에 아직도 함께 흐릅니다.





생각 셋. 눈


그곳도 하얀가요

내맘속 그대가 있는 가상현실에

눈이 내려요





생각 넷. 건너편


두 사람이

다른 곳을 바라보고 있습니다.
기억을 앓고 있는 눈길 너머로
  
멀리 뿜어내는 기차의 기적과 함께
세월을 거슬러 여행을 떠나게 되고
멀리 되돌아온 어느 작은 역에서
지평선같이 아득한
뒤안길을 바라보게 됩니다.
  
다시 세월을 거슬러 지나치게 될
하나하나의 기차역마다
눈물과 미소가 흐릿한 차창 밖의 이정표처럼 새겨집니다
  
종착역 무렵에서
조금씩 기억이 멈추어가면
처음 떠나왔던 그곳에서는
두 사람이 여전히
다른 곳을 바라보고 있습니다.
서로의 저 먼 뒤편만을…


 그리운 사람과 이별하기까지 사실은 많은 세월을 함께 보냈습니다. 하지만, 언제나 그 기억들은 설레는 아침기차를 타고 어디론가 내려가서, 그날 밤에 올라오는 하루의 기차 여행처럼 짧은 단면으로만 다가옵니다.

 

 추억을 떠올릴 때면, 마치 흐릿한 무성영화가 상영되는 듯합니다. 가슴이 부풀어 오르는 설렘은 언제나 짧은시간을 머물다가 이내 오래된 영화의 빛바랜 장면으로 차곡차곡 쌓여갑니다. 설렘은 짧지만, 그것이 남기는 잔영은 너무나 깁니다. 때로는 세월을 이기지 못하고 영화의 필름이 훼손되기도 하지만, 어떤 이야기는 먼지만 수북이 쌓인 채 하나도 변한 것 없이 그대로 재생됩니다. 내 마음속에 울려 퍼지지만, 그 누구도 들을 수 없는 무성영화처럼….





생각 다섯. 새벽 산책


낯익은 새벽 속을 거닙니다 
어느 기억이 함께 따라옵니다
닿을 수 없을 만큼 멀리 지나가 버린 

기차의 옆모습을 그려봅니다
차창의 얼룩 같은 지난날을 바라보는
이슬 내린 눈길을 바라봅니다.
  
풀벌레 소리마저 조심스러운 새벽을 거닙니다.
어느 기억이 함께 따라옵니다.
저기 플랫폼에 가로등 하나가 켜져 있고 
빈 벤치 위에 이야기가 흘러다닙니다.
  
달빛도 아직 제 이야기를 풀어내지 않은
비밀스러운 새벽을 거닙니다.
어느 기억이 함께 따라옵니다.
푸른 잎사귀에 한껏 영글었던 이야기는 어느새 
낙엽이 부석거리는 소리가 되어버렸습니다.
  
오래전에 내려놓았던 기억이 
불현듯 되돌아와 
다시는 나를 놓아주지 않을 것처럼 
여기로 저기로 발걸음을 끌고 다닙니다.
  
다시는 돌아갈 수 없을 듯이
아주 멀리 남겨두고
아무런 의심도 없이 낯선 새벽이라 내디뎠지만
늘 한걸음 뒤에 있었던 그 새벽을 만납니다.



 추억이 깃들어 있는 곳을 우연히 가본 적이 있습니다. 추억으로 들어서는 길의 어귀를 돌 무렵 덤덤하던 마음에 한풀 바람이 일어납니다. 오랜 세월이 흘렀지만, 어제 일처럼 생생하게 그 시절의 일들이 되살아납니다. 그날의 모습이 바로 눈앞에서 펼쳐집니다. 그 날의 목소리가 바로 귓가에서 들려옵니다. 이미 하얗게 잊어버린 줄 알았던 그 날들이 그곳에 그대로 간직되어 있습니다. 우리의 가슴에서 빠져나온 추억들은 언제가 될지언정 다시 찾아올 우리를 기다리며 그곳에 고스란히 남아 있었고, 시간에 마르지 않은 채 그대로 흐르고 있었습니다.




나무 아래 반쯤 해진 오래된 잎새들, 

낙엽은 나무를 안고 있었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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