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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외계인총각 Oct 19. 2022

tree_11. 아들의 믿음

생애 첫새벽 예배

아들은 태어나 얼마 되지 않아 내가 다니는 교회에서 세례를 받았다. 세례를 받은 지 한 달쯤 지났을까. 아내가 아들을 데리고 동네 산책을 하는데 처음 뵙는 할머니가 아들을 보더니 "ㅇㅇ교회에서 유아세례를 받은 아기가 아니냐"라고 인사를 건넸다. 건강한 임신과 출산으로 한층 경건해진 아내는 깜짝 놀랐다.


사실 우리가 다니는 교회는 지역에서 큰 교회이기 때문에 동네에서 교인을 만나는 것은 특별한 일이 아니다. 성도 수가 많아 같은 교회를 다니는지 서로 모를 뿐이다. 유아세례는 한 달에 한 번, 주일 예배 시간에 10분 정도 진행하는데 한 번에 세례 받는 아기들이 30명이 넘는다. 예배를 촬영하는 카메라 앵글이 한 아기를 잡아주는 시간은 5초 남짓. 자기 아기가 아니면, 자기 손주가 아니면 얼굴을 기억하기란 사실상 불가능하다. 그 할머니가 어떤 분인지 궁금했다. 우리는 여전히 같은 동네에 살고 있지만 그 할머니를 다시 뵐 수는 없었다.

태국 치앙마이 '더 치앙마이 크리스천 스쿨'

"일요일에도 갈 건데 오늘 꼭 가야 해?"

아들은 9살 때 생애 처음으로 새벽 예배를 드렸다. 우연히 찾아간 집 앞 교회는 매월 첫째 토요일에 아이들도 참석할 수 있는 '온 가족 새벽 예배'를 드린다. 예배 시간은 오전 6시 30분. 늦잠을 자는 아이들을 배려해 평소 새벽 예배 시간보다 1시간 늦게 시작한다. 대단하고 기발한 발상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두 달 전 나 홀로 온 가족 새벽 예배에 참석했고, 다음에는 아들과 함께 오겠노라 다짐했다.


나는 새벽 예배를 통해 하나님의 은혜를 많이 받는다. 조용한 새벽, 온전히 기도에 집중할 수 있고 그런 기도들이 모여 하늘 문이 열리고 지금의 나를 만들었다. 캐나다로 5개월 연수 갔을 때는 새벽 예배가 사무치게 그리웠다. 삶이 힘들거나 변화가 필요할 때는 늘 작정하고 새벽 예배를 드렸다. 그렇게 하나님은 새벽에 역사하셨고 그 경험을 아들과 나누고 싶었다.

출처: 앙투앙 드 생텍쥐페리 소설 '어린 왕자' 

작은 믿음이지만 예전부터 '결혼하면 꼭 기독교 가정을 세워야겠다'라고 다짐했다. 신실한 믿음의 외모를 가진 아내는 뜻밖에 종교가 없었지만, 연애 때부터 아무 말 없이 나를 따라 교회를 다녔다. 설교에 감동을 받을 때면 말씀을 공유하기도 했다. 아내의 믿음이 어느 정도인지 알 수 없지만, 여전히 교회를 다니고 하나님을 찬양하며 예배드리고 기도드린다.


아들도 본인 의지와 상관없이 세례 교인이 됐지만 거부감 없이 하나님을 믿고 교회를 다니고 있다. 기회가 될 때마다 '아빠가 왜 하나님을 믿게 됐는지' 간증했고, '우리가 왜 하나님을 믿어야 하는지' 알려줬다. '어린아이 같은 믿음'을 강조했는데 아들은 자신도 기도 응답을 받았다며 간증(?)하기도 했다.


자라면서 신앙에 궁금증도 늘어났다. 원론적인 질문이 어렵다. 아들이 "하나님이 진짜 있느냐"라고 물었다. 쉬우면서도 보편타당한 설명이 필요했다. 아들에게 잠잘 때 읽어준 생텍쥐페리의 '어린 왕자'를 인용했다. "중요한 것은 눈에 보이지 않는다." 아들이 조금 이해하고 있는 문장이다. "사랑도, 공기도, 바람도, 마음도, 믿음도 눈에 보이지 않는다."라고 덧붙였다. 사랑하는 외할아버지가 갑자기 하늘나라로 갔을 때는 '왜 하나님은 내 기도를 들어주지 않았냐'며 슬퍼했다. 혼란스러웠다. 그저 "하나님은 다 계획이 있기 때문에 지금 할아버지를 데리고 가셨다"라고 말했다.

아들은 새벽 예배 내내 엎드렸다가 일어나기를 반복했다. 새벽 예배에 큰 은혜를 받는 나도 단잠을 이기고 나오는 것은 여간 쉬운 일이 아니다. 아들은 설교 말씀이 끝날 때쯤 조금씩 정신을 차렸다. 짧게 마무리 기도를 드리고, 교회에서 마련한 조식을 먹으러 자리를 옮겼다. 조식은 온 가족 새벽 예배 때만 제공된다. 아들은 못 이기는 척 따뜻한 식빵에 딸기잼을 발라 먹고 과일을 먹었다. 아들의 천진난만한 얼굴이 돌아왔다. 


성도들 앞에서 자연스럽게 인사할 기회가 있었다. 새로운 사람이 오면 모든 성도가 알 수 있는 작은 교회였다. "저희 아들이 오늘 태어나서 처음으로 새벽 예배를 드렸습니다." 우리는 다른 교회 성도인데도 모두들 제 일처럼 손뼉 치며 축하해줬다. 한 권사님은 "앞으로 아들의 삶에 하나님의 은혜가 넘칠 것이다"라고 축복해주셨다. 아들은 환한 웃음과 함께 온 몸으로 축하와 축복을 받았다.


아들의 삶에도 힘들고 어려운 시기가 올 것이다. 신은 감당할 수 있는 만큼의 고통을 준다고 했다. 그 고통은 대부분 사람에게서 온다. 따라서 신을 모르면 그 고통을 견뎌내지 못한다. 사람이 아닌 믿는 구석이 필요하다. 새벽 예배가 아니더라도 아들이 자신만의 하나님을 만나는 방법을 하루빨리 알았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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