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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외계인총각 Apr 22. 2022

봄_1. 생애 첫 OPIc

육아휴직 두 번째 목표

Oral Proficiency Interview-computer.

생애 첫 OPIc 시험을 봤다. 컴퓨터로 진행하는 영어 말하기 시험이다. 육아휴직 후 두 번째 자기 계발 과제다.

한 달 조금 더 영어공부를 했다. 육아휴직 후 벌여놓은 일이 많아 집중적으로 공부하지 못했다.

게으르지 않기 위해 새벽예배를 드리고, 책을 읽고, OPIc을 준비하고, 독서논술 강의를 들었다.

막상 시험 볼 날이 다가오자 자신이 없어 시험 날짜를 한 번 미루기도 했다.


OPIc 역삼교육센터(1502호).

후기에 시설이 좋다고 했다. 토익(Toeic) 이후 17년 만에 본 영어시험이다.

다른 시험장은 안 가봐서 비교할 수 없지만 적어도 나쁘진 않았다. 1시간 무료 주차가 가능하지만, 지하주차장을 내려가는 길이 좁아 다들 추천하지 않았다. 감독관이 오리엔테이션을 너무 빨리 진행해 조금 당황했다.


응시료 7만 8100원.

첫 시험이어서 시스템에 적응하느라 두 배 더 긴장한 것 같다. 예상한 문제가 나왔을 때는 마음만 앞서 입이 따라가지 못했다. 모르는 문제가 나왔을 때는 머릿속에 흩어져 있는 생각을 정리하지 못한 채 횡설수설했다.

어려운 문제는 스킵해도 되는 시험인데 괜한 자존심에 스킵하지도 않았다. 어리석었다.

예상한 문제만 제대로 말했어도 좋은 성적을 기대할 수 있었을 텐데. 아직 성적은 나오지 않았지만 노력한 만큼 실력을 발휘하지 못했다.

이래저래 아쉬움이 남는 시험이다.


시험.

두 번째 수학능력시험을 마치고 고등학교 정문을 나오자마자 눈물이 났다. 눈물이 그냥 흘러내렸다. 1년 더 고생한 나 자신을 위로하는 눈물이었을까. 그렇게 몇 정류장을 걷다가 시장으로 가는 버스를 탔다. 아버지와 어머니가 보고 싶었고 일을 거들어드리고 싶었다. 

재수를 결심한 이유는 오로지 형 때문이다.

첫 수능시험을 망친 뒤 지방에 있는 대학교에 가려고 했다. 대학을 졸업하고 입사 시험만 잘 보면 또 기회가 생길 것이라고 믿었다. 공부가 싫었고 재수는 생각하지도 않았다. 두 곳에서 합격 통보를 받았다.

형이 만류했다. 재수를 권했다. 거창하게 미래에 대한 얘기는 하지 않았다. 형은 조심스러운 성격이고 생각이 깊었다.

친구들이 많은 고향을 떠나 서울에서 재수를 시작했다. 외로웠지만 나름대로 이 외로움을 즐겼던 것 같다.

제일 못했던 수학과 물리를 작정하고 파고들었다.

국어를 제외하고 모든 과목에서 성적이 올랐다. 수학은 백분율 기준 상위권에 있었고 물리는 12문제 중 1개를 틀렸다. 서울 소재 대학에 갈 수 있는 성적이 나왔다. 다시 '꿈'이 생각났다.


슬라이딩 도어즈.

가끔 생각한다. 형의 권유가 없었다면 지금 나는 어떤 모습으로 살아가고 있었을까.

사는 곳이 달랐을 것이고 지인들도 달랐을 것이고 아내도, 자식도 다 달랐을 것이다. 어떤 인생이 펼쳐졌을지 그저 궁금하다.

영화 '슬라이딩 도어즈'.  

지하철 문이 닫히는 순간 여주인공이 아슬아슬하게 탔을 때의 인생과 타지 못했을 때의 인생.

인생은 슬라이딩 도어즈다. 매번 선택의 순간에 놓인다. 지하철을 타지 못했을 때의 인생을 알 수 없기 때문에 어떤 선택이 더 나은지는 평가할 수 없지만 우리는 늘, 그 순간 최선의 선택을 한다.

아빠 육아휴직은 아직 한국 사회에서 큰 선택 중 하나다. 충성된 직장인의 삶을 거부하자 부서장과의 관계가 틀어졌다. 잘못한 게 없는데 죄인 된 기분이었다. 전형적인 충성된 직장인이었다. 

지난 15년간 내 젊음과 영혼을 월급과 맞바꿨다. 지금은 가정과 영혼이 회복되는 시기다. 11개월 후 나는 어떻게 살고 있을까. 새로운 삶에 대한 기대도 있지만, 지금과 같을까 봐 두렵기도 하다. 

초등학교 2학년이 된 아들에게 1학년 때와 다른 변화된 모습을 보여주면 '변화 포인트'를 주고 있다. 포인트가 쌓이면 선물을 주는데, 변화를 넘어 진화된 모습을 보였을 때는 포인트를 2배 쌓아준다.

내 삶의 변화를 위한, 진화를 위한 최선의 선택은 무엇일까. 지금도 슬라이딩 도어즈가 반복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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