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핀휠 Feb 28. 2023

우리 회사 인턴이 매일 암살을 시도한다

~겨울방학을 알차게 보내고 떠나는 우리의 인턴 알파하 님을 떠나보내며~


핀휠의 인턴 채용기와 인턴 후기가 궁금하다면?

▷ P사 첫 인턴 채용기

▷ 취업은 멘탈싸움

▷ 먹는 걸로 사람 꼬시는 회사 면접 봤습니다

인턴 첫날 뇌물을 받았습니다


이번 글은 대드리, 김선비, 알바트로 준, 호구박의 이야기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대드리: 회사의 성과를 위해서라면 나는 참지않긔


알파하가 우리와 함께 일한 지도 벌써 두 달. 어느새 그녀를 떠나보내야 할 날이 오고 말았다.

시간이 어떻게 갔는지 모를 정도로 많은 일들이 있었다. 급발진이 주특기인 나 대드리는 참 많은 일들에 즐겁고 화났었지만, 그래도 소중한 인턴 알파하 덕분에 대표님께 화도 한 번 밖에 안 내고 나름대로 평화로운 2023년의 첫 두 달을 보냈다.


혼자가 아니야


12월 전까지는 나의 업무가 모호해서 이것저것 맡아서 하는 경우가 많았는데, 12월에 전체 팀원들의 업무와 직무를 재편성하면서 나의 업무는 마케팅으로 딱 정해지게 되었다. 마케터가 나의 역할이라고 정해지고 나니 여기저기 기웃거리지 않고 온전히 나의 업무에 집중할 수 있게 되었다. 하지만 집중과는 별개로, 혼자 일하다보니 외롭기도 하고 어디 물어볼 사람도 없어 인터넷을 사수이자 동료 삼아 일하곤 했다.


12월부터 핀휠 SNS 채널들도 다시 정식으로 관리하기 시작하고 홈페이지 리뉴얼 등 바쁜 시간을 보내고 나니, 어느덧 1월이 되었고 알파하 님과의 시간이 기다리고 있었다. 알파하 님의 자소서를 봤을 때부터 글 쓰는 솜씨가 대단하다고 느꼈기 때문에 블로그 컨텐츠뿐만 아니라 브런치 컨텐츠 제작도 함께 하는 데에 전혀 무리가 없겠다고 짐작하고 있었다. 그래서 첫 두 주는 함께 블로그와 브런치 컨텐츠 기획과 제작을 함께 하며 회사에 적응하는 시간을 가졌다.


그렇게 하나 둘 같이 업무를 하다 보니, 알파하 님은 더 위대한 무언가를 갈망하는 것 같았다.

그래서 숨겨왔던 프로젝트 중 하나를 꺼내 들었다. 바로 “기자단”.  브런치를 꾸준히 보셨던 독자님들이라면 아시겠지만, 우리는 BFN 기자단을 운영하고 있다. 1기까지는 선비님께서 담당하셨지만, 다양한 요소로 활용하고 싶은 욕심에 2기부터는 내가 담당하겠다고 말했고 1월에는 2기 기획부터 모집 준비까지 끝내놓기로 계획하고 있었다. 평소에 대외활동도 많이 참여해 봤다는 알파하 님은 듣자마자, 눈빛이 초롱초롱해지며 너무 재밌겠다고 하였고 우리는 회의 날짜를 잡았다. 그리고 회의 당일, 알파하 님은 아이패드를 꺼내며 캘린더에 적어둔 일정표부터 OT 때 하면 좋을 것들까지 모두 생각해 왔다며 설명을 멋들어지게 해 주셨다. (역시 멋을 아는 알파카)


너무 크게 감동해 버린 나는, 알파하가 우리 팀원이 되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알파하, 졸업 언제 하나요) 덕분에 기획안을 짜는 데에 정말 많은 도움을 받았고, 나 혼자였다면 생각하지 못했을 아이디어들이 정말 많이 나왔다. 그리고 보통 기획할 때 바쁜 대표님을 붙잡고 아이디어 회의를 하는 편이라 괜히 죄송스럽기도 하고 이래도 되나 싶기도 했다. 그런데 이렇게 알파하 님과 함께 회의하고 일할 수 있다니! 대표님을 방해하지 않아도 되고, 아이디어도 뿜뿜 나오고! 이렇게 좋을 수가 없었다.


정신줄 지키미


그러다가 갑자기 기자단 1기에 대한 마무리도 내가 담당하게 되면서 2월은 급 헬구간이 되었지만. 아무튼 여기저기 쏟아지는 일들에 파묻혀 정신을 못 차리고 있을 때 알파하 님은


“대드리님, 정신 똑.바.로. 차리세요!! 세상이 그렇게 호.락.호.락.하지 않다구요!”


와 같은 말들을 해주며 나의 정신줄을 잡게 해 주셨다. (ㅋㅋㅋ) 그 모습이 너무 귀엽고 웃겨서 글을 쓰는 지금도 웃음이 나온다. 그렇게 혼자였다면 우울할 뻔한 1, 2월은 알파하와 함께라 외롭지 않았다.




김선비: 보수적인 복지계에서 5년간 글월만 읊다가 개화기를 맞지 못한 사회복지선비님. (스타트업 와서 강제 개화 중) 


우리 회사 인턴이 매일 암살을 시도한다


조나단 "나 보면 근묵자흑이 떠오르지 않아?"

우리의 인턴 알파하. 알바트로 준 님은 면접 때부터 "선비 님이 딱 좋아하시는 인재시네요"라고 할 정도로 나와 통하는 면이 많다고 느꼈다. 싹싹하고, 리액션도 훌륭한 준비된 인재, 그게 바로 알파하였다. (내적미소) 그렇게 알파하가 대드리 님과 다양한 업무를 수행하는 모습을 보며 우리가 사람 참 잘 뽑았다고 생각했다. 처음 면접을 보기 위해 만났을 때부터, 최종합격 연락을 했을 때도 좋아하던 모습이 아직 눈에 선한데… 모든 것들이 처음이라며 즐겁게 일하는 알파하를 보니 괜히 내가 다 뿌듯했다.


사실, 청각장애인과 함께 일을 해본 경험은 없는지라 내심 의식이 많이 되었다. 물론 알파하는 타인과 소통할 때 크게 어려움이 없는 편이라 과거 복지사로 근무했을 때 만났던 장애인 당사자분들과는 또 다른 느낌이었지만, 사소한 부분에서 혹여 실수를 하거나 불편함을 느끼진 않을지 신경이 쓰인 건 사실이다. 또, 사회복지인으로서 그 누구보다도 장애인 당사자와 편하게 지내는 것에 빠질 수 없지! 우리는 당신에게 진심이라는 것을 보여주겠어, 알파하.


한 달이 지나자, 한 1년은 같이 일한 사람처럼 친해진 알파하. 우리의 진심을 너무 많이 보여준 탓일까? 처음 만났던 싹싹하며 리액션이 좋던 알파하는 온데간데없고, 이제는 적당한 타이밍에 드립 칠 생각과 자신의 장애를 역으로 이용하여 장난을 칠 생각만 하고 있는 것 같았다.


한 번은 대표님께서 재밌을 것 같다는 모바일 게임을 근무시간 중에 다 같이 하고 있을 때였다. 4인이 한 팀이 되어 진행되는 게임으로, 알파하와 나, 대표님, 대드리 4명이 게임을 하고 있었다. 게임에 푹 빠져들어 매우 진지하게 사무실에서 실시간 소통을 하며 전략을 짜던 우리. 모두 게임에 진심이다.


‘게임’-’광고시청’-’접속’-’게임’의 순서로 2~3판째 진행하던 중, 자꾸 알파하가 접속을 늦게 해 게임의 흐름이 끊기는 일이 발생되었다. 핀휠에서 신속함을 담당하고 있는 나는, 알파하에게 빠르게 게임에 들어와 준비버튼을 누를 수 있도록 잔소리를 하기 시작했으며, 내내 참다가 장난각을 본 알파하.


"아니, 안 들리는데 어떻게 들어가요. 얘기를 해주시던가.
청각장애인에 대한 배려가 부.족.하시네요."


아니, 여태 잘 듣다가 갑자기 왜 안 들린다고 뭐라고 하는지 따지고 자시고를 떠나서, 내가 무언가 엄청난 잘못을 한 것만 같았다. 사회복지사로서 큰 죄를 지은 느낌…


알파하가 장애를 가지고 장난을 치며 암살을 시도한 그날 이후, 우리는 무슨 말만 하다 꼬투리가 잡히면 이제 서로가 서로를 잡아먹기 위해 장난을 친다. 물론, 알파하를 포함해서 말이다. 말을 하지 않아도 서로 암살하려고 기를 쓰고 있으니… 알파하가 참 많은 것을 바꿔 놨다.


어쩌면, 알파하가 자신의 장애를 가지고 먼저 얘기를 하거나 장난을 치지 않았다면, 아마도 우리는 서로 2개월 동안 알파하와 대화를 나누거나 회의를 할 때, 앞서 처음 우리가 의식했던 것처럼 항상 신경을 쓰며 일하고 있지 않았을까 싶다. 혹시나 말실수를 할까 봐 걱정하는 분위기가 아니라, 마음껏 서로를 놀리기도 하며 웃고 친해질 수 있게 발판을 먼저 만들어준 알파하에게 참 고맙다.


핀휠의 이번 장애 인턴 채용 과정을 통해 우리는 또 하나를 배우게 되었다. 알파하. 고생 많았다.

p.s 그리고 나 그날 게임 할 때 내가 구박을 한 게 아니고, 혹시 너가 잘 안 들릴까봐 내가 큰 소리로 얘기를 해준 건데 말이야. 그게 혹시나 내가 너의 기분을 나쁘게 했다면 그게 참 죄송합니다.




알바트로 준: 사회복지가 싫어서 개발자로 전향했는데 어쩌다 보니 꼰선비와 같이 일하고 있는 서퍼 지망생


"나"를 잘 아는 사람


처음 내가 알파하 님을 만난 건 취업 컨설팅 때였다.


장애인 분들의 성공적인 취업을 위해 우리 회사에서는 취업 컨설팅과 취업 연계를 해드리고 있는데, 아직 대학생인 알파하 님은 졸업 후에 취업하게 될 때를 대비하여 취업 컨설팅만 받아보고 싶다며 신청을 해주셨었다.


대면 인터뷰를 하기 전, 카카오톡으로 대화를 나누면서 “이 사람은 자신에 대해서 잘 알고 있는 사람이고 그것을 드러낼 수 있는 사람이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만나는 장소에 대해서도 어떤 점들이 고려됐으면 좋겠고, 선호하는 시간대 등등을 명확하게 알고 있었으며 자신의 의사를 제대로 표현하여 전달할 수 있는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핀휠에서 취업 컨설턴트로서 적지 않은 장애인 분들을 만나보면서 알게 된 점은 자신이 정확히 어떻게 불편한지, 어떤 점이 불편하고 어떤 곳들은 피해주셔야 하는지 명확하게 이야기하지 못하는 분들이 많다. 대부분 “다 괜찮아요”, “너무 시끄럽지만 않으면 괜찮아요”, “1층에 위치한 곳이면 괜찮아요"처럼 두루뭉술하게 이야기하시는 경우가 있는데, 사실 그렇게 되면 막상 만나 뵀을 때 예상치 못한 문제가 발생하거나 난관에 부딪히는 경우가 생기곤 했다.


하지만, 알파하 님은 “듣는 것에는 큰 문제가 없지만 사람이 많은 곳에선 다른 사람 말소리도 같이 들리기 때문에 정확하게 못 들을 수 있어요”라던가 “음악소리가 큰 곳에서는 다른 기계음이나 잡음도 같이 들리기 때문에 조용하게 이야기할 수 있는 공간이면 좋아요”라는 식으로 명확하게 알려주어서 사전에 컨설팅 장소를 찾는 데에도 많은 도움이 되었고, 컨설팅을 진행할 때에도 미리 필요한 것들을 준비할 수 있었다. 그렇게 컨설팅을 성공적(?!)으로 끝내고, 본격적으로 취업을 준비하게 되면 또 연락하자고 얘기드리며 헤어졌던 알파하 님.


퇴근길 메이트


시간이 흘러 겨울방학 인턴을 뽑게 되었고, 그렇게 알파하 님과 함께 일하게 되었다. 알파하 님과 업무적으로는 닿아 있는 부분이 없어 자랑할 만한 에피소드가 없지만 퇴근길 하나만큼은 자신 있다. 우리는 칼퇴를 지향하지만, 지향하는 것과 현실은 다르니... 알파하 님이 처음 왔을 땐 각자 일이 밀려있어 칼퇴가 힘든 때였다. 얼른 퇴근하라고 다들 말은 하지만 이제 막 들어온 인턴 입장에서는 다 일하고 있는데 혼자 가겠다고 말하기 힘들어 보였다. 당시엔 나도 일이 밀려있어서 퇴근을 조금 늦게 하고 있었는데, 말 못 하고 있는 모습이 보여 같이 퇴근을 자주 했었다. (사실 적응이 빨라 금방 알아서 잘 가시더라, 하지만 요즘엔 대드리 님이 일을 많이 주시는지 내가 먼저 퇴근한다. ㅎㅎ)


그렇게 같이 퇴근을 자주 했었는데, 퇴근길엔 항상 여러 가지 이야기를 나누었다. 업무시간엔 서로 (헛소리나 헛소리, 그리고 헛소리 말고는) 크게 대화를 나누지 않아 같이 퇴근하는 그 시간에 회사를 다니면서 힘든 점이나 오늘 업무는 어땠는지, 학교생활은 어떤지 이야기를 나누곤 했다. 서로 친해지는 시간이기도 했지만 나에겐 장애인 당사자의 시선을 엿볼 수 있는 시간이기도 했다. 내가 계속 고민해 왔던 장애 대학생들을 취업 컨설팅할 때 겪는 어려움이나 피드백을 많이 들을 수 있었고, 서비스 개선에 참고할 만한 이야기들을 많이 해준 덕분에 알파하와 함께 했던 두 달은 나에게 서비스 Version을 Ver 1.4에서 Ver 2.1로 업데이트하는 시간이었다.


알파하는 이제 학교로 돌아간다.


또 보자 알파하




호구박 대표: 장애인들을 취업시키면서 돈도 벌어볼까 라는 생각으로 창업한 호구박사


나의 이야기를 주저 없이 할 수 있는 사람


아마도 모든 스타트업이 그렇겠지만, 우리는 특히 더 본인이 온전히 본인의 목소리를 낼 수 있는 사람을 바랐다. 어떻게 보면 너무나 높은 채용 기준이었고, 어떻게 보면 너무 두루뭉술한 채용 기준일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우리 회사는 구성원 모두가 개성이 넘치고, 우리의 일도 개성이 넘치며, 우리가 가는 방향도 개성이 넘치니 그럴 수밖에 없었다. [본인의 이야기를 주저 없이 할 수 있는 사람] 그런 사람을 바랐고, 정말 감사하게도 알파하님은 우리가 생각하는 인턴의 모습에 딱 어울렸다. 이런 인턴이 우리에게 언제 다시 올지 모르겠고, 이런 기회는 흔치 않기 때문에 우리는 알파하님을 붙잡을 수밖에 없었다.


위에 적은 내용을 생각하며 세세하게 생각해 보니 알파하님은 


본인의 장애에 대해서 명확하게 말할 수 있는 사람. 

본인의 장애에 대해 웃으면서 농담할 수 있는 사람. 

좋아하는 것과 싫어하는 것에 대해서 확실하게 표현할 수 있는 사람. 

우리가 해줘야 할 것과 하면 안 되는 것에 대해서 이야기해 줄 수 있는 사람. 

본인이 원하고 그리는 미래를 우리에게 전달해 줄 수 있는 사람. 

마지막으로 개그 욕심이 있으며 음식에 진심인 사람이었다.


어찌 이 사람을 안 뽑을 수가 있을까?


그리고 실제 만나고 함께 일했던 알파하님은 우리가 바랐던 것보다 더 많은 것들을 우리에게 알려주었다. 청각 장애인으로서 본인 삶에서 경험했던 이야기들과 알파하님의 나이와 상황에 맞게 요즘 대학생들의 이야기를 생생하게 전해주는 인턴이었다. 그리고 장애 비장애인이 함께 할 수 있는 공간이 없고 그만큼 우리 회사가 소중하다는 이야기를 해주었던 것도 너무나 고마웠다. 알파하님은 그렇게 우리가 몰랐던 이야기부터 우리에게 힘이 되는 이야기까지 정말 많은 이야기들과 넘치는 에너지를 우리에게 쉴 새 없이 전달해 주는 사람이었다. 아! 그리고 알파하님은 우리가 생각하고 살짝 엿봤던 처음 모습보다 훨씬 더 개그 욕심이 넘쳐 났고, 장난기가 가득했으며, 우리와 함께 하고 함께 웃고 함께 있는 시간 자체를 너무나 즐거워해주는 사람이었다.


(편집자가 더 감동받은) 감동 포인트


대드리 님께 간만에 모두가 함께 글을 쓰자는 요청을 듣고 이 글을 적고 있는 일자는 2월 24일, 알파하님께 마지막 급여를 제공하는 날이다. 함께 했던 시간들이 우리에게 너무나 소중했던 시간이었던 것처럼 알파하님도 우리와 함께 했던 시간이 소중했고, 즐거웠으며, 맛있고, 재미있는 시간이었기를. 그리고 또 만나겠지만 다시 만나서 함께 일할 수 있는 시간까지 얼마 걸리지 않기를, 마지막으로 그때까지 우리가 잘 살아남아서 진심으로 알파하님을 반겨줄 수 있기를 조심스럽게 바라본다.


함께 만날 수 있어서 너무 즐거웠고, 함께 하는 시간 동안 진심으로 고마웠어요. 알파하님.

호구박이.

매거진의 이전글 인턴 첫날 뇌물을 받았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