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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emon LA Sep 06. 2024

친구는 사전연명의료의향서를 추천했습니다.

암투병 일기


항암을 3 번째까지 하고 나니 다 포기하고 싶어 졌습니다. 신음하는 하루하루가 이어지면서 고통의 연속이었습니다. 자리에서 일어나지 못하니 가벼운 운동도 힘이 들었습니다. 5분 정도의 산보도 힘들어 거실을 뱅글뱅글 돌다 다시 눕기를 반복하는 날이 늘어났습니다. 


지금까지 유방암을 잘 견디고 살아난 사람들보다 잘 견디지 못하고 죽은 친구와 주변 사람들이 하나둘씩 떠올랐습니다. '죽을 만 해. 이렇게 고통스러워서 어떻게 살겠어.'


사실 항암 치료를 시작하기 전에 남편 친구가 사전연명의료의향서를 미리 작성하는 것이 좋다는 조언을 했습니다. 남편이 조심스럽게 그 이야기를 꺼냈지만 차일피일 미루었습니다. 


사전연명의료의향서를 권하는 친구에겐 사연이 있었습니다. 2년 전쯤 새벽에 화장실에 간 아내가 갑자기 쓰러졌는데 아침까지 몰랐던 것입니다. 아침에 눈을 떠 아내를 발견하자마자 응급실로 갔지만 이미 의식이 없는 상태였습니다. 그 후로 2년이란 시간이 지났지만 아직도 깨어나지 못하고 있습니다. 식물인간 상태로 누워서 매일 야위어 가는 아내를 봐야 하는 것은 그 가족에게 아픈 일상이 되고 말았습니다. 겨우 숨 쉬며 연명하는 아내를 편하게 보내주고 싶어도 법적으로 그럴 수 없다고 했습니다. 이런 일이 일어나기 전에 사전연명의료의향서를 써두지 않아 결국 아무런 대처도 할 수 없게 되었다면서 저희 부부에게 권했습니다. 


고통이 심해지면서 이 이야기가 떠올랐습니다. 치료의 끝을 알 수 없으니 만약을 위해 남편과 아들을 위해 사전 연명 서류를 써 두어야겠다는 결심이 섰습니다. 


4차 항암을 앞두고 주치의를 만나는 시간보다 한 시간 앞당겨 병원으로 향했습니다. 어차피 4차 항암을 지속할 몸 상태도 아니어서 주치의만 만나고 항암 스케줄을 미룰 계획이었습니다. 안내데스크에 사전연명의료의향서를 어디서 작성할 수 있는지 안내받은 후 남편과 저는 상담을 받았습니다. 상담을 받기 전에는 조금 두려웠는데 막상 만나서 궁금했던 것들을 물어보니 이해가 갔습니다. 


"만약 쓰러져 의식이 없으면 심폐소생술을 단 한 번도 하지 않나요?"

"아뇨 그렇지 않아요. 심폐소생술도 시도를 하지만 의학적으로 회생의 가능성이 없고, 치료에도 불구하고 회복되지 않거나 증상이 악화되어 사망에 임박하게 되었을 때 환자의 의사를 존중해 연명의료를 중단하는 것입니다."


상담원의 설명은 계속되었습니다.

"사전연명의료의향서는 19세 이상의 성인이 향후 임종을 앞둔 시기를 대비하여 의학적으로 무의미한 의학적 시술 및 호스피스 이용에 대한 의향을 직접 문서로 밝혀 두는 것입니다."


지금까지는 막연하게 아직 살만한테 아무 시도도 하지 않는 건 아닌지 궁금했는데 전혀 그렇지 않았습니다. 모든 치료를 시도해  보고도 가망이 없으면 의사 두 명이 최종적으로 임종기 판단을 내려야 하고 그 후에 사전연명의료의향서를 확인한 후 연명의료를 유보할 것인지 중단할 것인지 결정하게 된다고 하더군요. 


남편과 궁금한 것들을 더 물어보고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만약 치료를 해도 친구 부인처럼 의식이 돌아오지 않는다면 나는 살고 싶은지. 아닙니다. 산다는 것은 건강을 유지하면서 걸을 수 있고, 먹을 수 있고, 스스로 화장실은 갈 수 있어야 사는 것이지 의식이 없는 육체로만 남아있는 건 남편에게도 아이에게도 고통스러운 짐만 지울 뿐입니다. 저는 친정 엄마가 오랜 시간 아파 돌보면서 이것이 얼마나 자식에게 고통스러운 일인지 알기에 대물림하고 싶지 않았습니다. 


그건 단순한 짐 정도가 아니었습니다. 정신적으로도 육체적으로 쉴 날 없이 그저 고통의 연속이었고 남몰래 수없이 울어야 했습니다. 이 날 남편과 저는 나란히 사전연명의료서에 사인을 하고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며칠 지나 집으로 우편물이 도착했습니다. 사전연명의료의향서 등록증이었습니다. 카드 뒷면에 "인생의 마지막 순간, 당신의 선택을 존중합니다."라고 적힌 문장이 눈에 들어옵니다. 잠시 생각해 보니 나의 선택과 결정이 가장 필요한 순간은 의식이 없는 마지막 바로 그 순간일 수 있겠다고 생각하니 안심이 되었습니다.


지금은 이 카드를 항상 가지고 다닙니다. 암환자이다 보니 언제 어떤 위험에 처할지 모른다는 생각에 지갑 안에 잘 보이도록 넣어 두었습니다. 암투병을 이겨내고 회복한다면 건강하게 살아서 좋고, 위기를 맞는다면 이번 생을 잘 마무리할 수 있어 그저 감사할 뿐입니다.  


저에게 있어 사전연명의료의향서의 새로운 정의는 이렇습니다.

전생에서 현생으로 왔듯이, 현생에서 내생(죽은 뒤의 생애)으로 고통 없이 가는 환승티켓입니다. 천국으로 가든 극락을 가든 한 번 죽기는 죽으니까요. 




 


사전연명의료의향서를 등록할 수 있는 곳은 보건복지부에서 지정받은 등록기관에서만 신청 가능합니다.

국립연명의료관리기관에서 확인 가능합니다.

www.lst.g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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