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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emon LA Aug 23. 2024

1차 항암이 드디어 시작되었다

암투병일기

죽고 싶지 않다. 지금은!

죽고 싶었던 적도 많았는데, 아이러니하게도 지금은 그렇습니다.


"머리가 많이 빠지니까 미리 준비를 하세요."

무심하게 이렇게 한마디 툭 던지는 의사가 좀 야속했습니다. 여자한테 머리가 얼마나 중요한 데 감기환자 다루듯 별거 아니라는 식으로 그렇게 간단하게 말하고 3분의 외래는 끝났습니다.


머리가 빠질 거라는 이야기를 들었지만 미용실에 가서 차마 머리를 밀지는 못했습니다. 설마 하는 마음도 있었고, 머리를 밀 용기도 생기지 않았습니다. 드디어 1차 세포독성항암이 정맥주사로 7시간가량 투여되었습니다. 정상적인 병원이라면, 독이 몸에 들어갔을 때 빼주어야 하는데, 거꾸로 무려 7시간이나 독을 몸 안으로 흘려보내고 있었습니다. 암병동은 하루종일 이런 비상식적인 일들을 상식적인 것처럼 해내고 있습니다. 


그걸 용납한 건 나 자신이니 더욱 아이러니합니다.  혈관으로 들어가는 독성이 가득한 항암제를 보면서 '죽고 싶지 않다, 지금은', '하나님 살려 주세요.' 마음 속으로 외치고 있었습니다. 생각해 보니 죽고 싶었던 적도 많았는데 아무튼 지금은 살고 싶습니다. (인간은 참 변덕스럽네요.)


1차 세포독성 항암제가 투여된 이틀 후까지는 몸 컨디션이 그렇게 나쁘지 않았습니다. 3일 정도 지나자 배탈이 나기 시작하더니 울렁증에 뼈마디가 쑤시기 시작했습니다. 가장 큰 변화는 머리카락이 뭉텅이로 빠지는 것이었습니다.


샤워를 하고 방에서 젖은 머리를 말리려고 드라이를 하는데 한 주먹씩 머리가 툭툭 바닥으로 떨어졌습니다. 방바닥은 어느새 머리카락 투성이. 


"꺄악, 이게 뭐야? 뭐 하는 거야?"

방문을 갑자기 열고 들어온 언니는 내 모습을 보고 그 자리에 주저앉았습니다. 제가 스스로 머리카락을 마구 잘라냈다고 생각했나 봅니다. (아파서 미쳤나 한 거죠.)


"머리가 뭉텅이로 빠지네. 항암제 때문인가 봐."

큰언니는 눈물이 나는지 고개를 돌리며 애써 태연한 척하며 당장 미용실에 같이 가자고 재촉했습니다. 그렇게 결국 머리를 태어나서 처음으로 삭발하게 되었습니다.


말로만 듣던 항암 부작용이 점점 더 다채롭게 나타나기 시작했습니다. 설사 10일 연속, 메스꺼움, 혀는 감각 상실, 맛을 못 느낌, 어지럼증, 울렁증... 2주 정도 폭격을 당하듯 고통스러운 시간이 지나고 나니 3주 차에는 조금씩 회복세로 돌아섰습니다. 


거울에 비친 내 모습은 참으로 처량했습니다. 스님처럼 머리는 없고, 배탈로 몸은 수척해 가고, 피부는 항암제의 영향으로 검은 빛깔로 변해가고 있었습니다. 그냥 또르르 눈물이 흘러내렸습니다. 울려고 한 것도 아닌데.


'이걸 6번이나 해야 한다고. 살 수 있을까?' 

말로만 듣던 암투병의 고통을 처음 경험해 보면서 돌아가신 엄마 생각이 가장 많이 났습니다. '엄마 있을까? 엄마 보고 싶다.'


배탈로 심한 탈수증세가 오면서 결국 내과를 방문해 수액을 맞았습니다. 평소 알고 지내던 원장님은 유방암이어서 얼마나 다행이냐며 위로를 했습니다. 


"유방암은 감사해야 돼. 약도 많고 잘 들어서 생존율이 높잖아. 다른 암들은 약도 없고, 생존율도 낮아 죽어 가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데."

오랜 의사생활에 죽어가는 환자들을 워낙 많이 접하다 보니 상대적으로 저는 희망적인 부류에 들어가나 봅니다. 아무리 그래도 유방암도 암인데 왜 감사해야 하는지 모르겠다는 표정을 읽으신 듯 또다시 얘기합니다.

"자고로 병마와 싸운다 생각하고 매사에 긍정적으로, 그리고 꼭 살겠다는 강한 의지가 필요해. 의지는 다른 사람들이 줄 수 있는 게 아니잖아. 그러니 단단히 마음먹어."뒤에 기다리는 환자도 있는데 꽤 오랜 시간 어떻게든 용기를 주려고 애쓰셨습니다. 

"그럴게요. 잘 이겨내 볼게요."라는 말을 힘없이 남기고 진찰실을 나왔습니다. 


수액을 맞고 나니 한결 컨디션이 좋아졌습니다. 앞으로 1주일 뒤에 다시 2차 항암을 하러 가야 된다니. 그날을 향해 모래시계가 이미 엎어진 듯 시간이 흘러가는 것이 그냥 무섭게 느껴졌습니다. 


'이 또한 지나가리라. 난 꼭 완치될 거야.' 

다짐하고 다짐하며 기도를 드립니다. 




HER2양성 유방암에 투여된 세포독성항암제:도세탁셀(Docetaxel), 카보플라틴(Carboplatin)

HER2양성 유방암에 투여된 표적항암제:퍼투주맙(Pertuzumab), 트라스투주맙(Trastuzumab)


배탈에 도움이 되는 음식: 미역국, 야채죽, 야채수프, 소고기 뭇국


야채수프 만드는 법: 감자, 당근, 호박, 셀러리, 양파를 깍두기 모양으로 썰어 한꺼번에 끓인다. 감자 으깨는 도구로 전체적으로 야채를 으깬다. 마지막에 로즈메리, 파아슬리를 조금 넣는다. 간은 소금으로 충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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