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브랜드로, 나를 브랜딩
질문의 먹구름 떼가 머릿속을 천천히 지나간다.
당신은 누구죠? 뭐 하는 사람이죠? 프로인가요? 어떤 스토리를 가지고 있죠? 얼마나 벌죠?
시작도 하기 전에 질문으로 세례를 받으니 구원을 이루어도 몇 백번 이루었으련만 여전히 이런 질문들에 침을 삼키며 긴장하게 된다. 사람들이 나를 어떻게 생각하는지가 브랜드의 시작일까. 아니다. 세상에 멋진 브랜드는 자신의 이야기를 가지고 출발한다.
처음엔 작은 호기심 하나가 생기고, 그 호기심을 쫓아 따라가고, 가던 길을 계속 가면서 그 길에서 얻은 소중한 것들을 사람들에게 나눌 때 비로소 브랜드가 되는 것이다.
예티(YETI)라는 미국 브랜드가 있다. 아이스박스계의 샤넬이라는 칭호를 들을 정도로 낚시, 사냥, 캠핑족, 산악인들에게 인기가 높다. 예티의 창업자인 라이언 세이더스와 그의 동생 로이는 어릴 때부터 아버지를 따라 낚시, 사냥, 캠핑 아웃도어 활동을 즐겼다. 두 형제는 아웃도어 활동을 하면서 보냉성이 떨어지고 쉽게 깨지는 아이스박스에 늘 불편함을 느낀다. 게다가 그들이 사는 텍사스는 미국에서도 매우 더운 지역으로 맥주나 음료수를 넣어두면 금방 미지근해져 버려 실생활에서도 아이스박스에 대한 불편함이 쌓여 갔다. 그러면서 두 형제는 이 불편함을 이용해 사업 아이템을 잡는다. 쉽게 깨지지 않고 보냉성과 내구성이 뛰어나 해마다 아이스박스를 사는 번거로움을 해소해 줄 아이스박스를 개발한다.
절대 깨지지 않는 아이스박스, 자그마치 일주일 동안이나 얼음이 녹지 않는 아이스박스 예티는 이렇게 탄생한다. 예티라는 단어는 원래 네팔어로 히말라야 산맥에 사는 얼음 괴물, 설인을 뜻한다. 두 형제는 브랜드명을 예티라고 지어 자신들이 만든 아이스박스가 어떤 것을 추구하는 지도 걸맞게 보여주고 있다.
예티의 상품은 아이스박스에 그치지 않는다. 예티 브랜드가 창립된 것은 2006년이고 시그니처 아이스박스 '툰드라'가 출시된 것은 2008년이며 한국에서 사랑받고 있는 텀블러는 2014년에 출시된 것이다.
2014년 그해에 미국에 살고 있었다. 워낙 아이스박스가 유명하다 보니 텀블러도 화제가 되었다. 300불이 넘는 아이스박스를 살 수 있는 사람들은 한정적이지만 텀블러가 필요한 사람들은 너무나 많았기 때문에 예티의 얼음괴물 같은 위력을 느껴보고 싶어 하는 사람들에게 불티나게 팔렸다. 나도 그중 한 사람이다.
우리 가족은 텀블러를 하나 사서 얼음을 가득 넣었다.
"엄마 내일까지 이 얼음이 녹지 않을까?"
"글쎄, 그러면 정말 대박인데."
다음날 아침 제일 먼저 일어나 기대하는 마음으로 텀블러를 열어 보았다. 거기에는 아직 덜 녹은 얼음조각들이 남아 있었다.
"아직 얼음이 남아 있어." 잠결에 궁금해할 남편과 아이를 위해 이층을 향해 외쳤다. 그 얼음을 보고 있자니 흐뭇했다.
괜찮은 브랜드는 뭘까 잠시 생각하게 된다. 흐뭇함? 맞다. 괜찮은 브랜드는 흐뭇함을 소비자에게 선사한다. 어떻게 시작했을까, 어떻게 만들어졌을까, 어떤 험난한 과정이 있었을까가 궁금해진다. 그러면서 그 스토리를 따라 호기심이 생기고 예찬하게 된다.
요즘은 어떻게 성공하는지, 얼마나 많이 버는지, 지름길은 뭔지를 가르쳐 주는 책도 유튜브도 많다. 보고 있으면 따라 해봐야겠다는 생각보다 마음이 더욱 불안해지고 무언가에 쫓기듯이 강박관념이 생긴다.
성공은 결론에서 출발할 수 없다. 어른으로 태어나 아이가 될 수 없듯이 아이로 태어나 서두른다고 성인이 될 수 없는 것이다. 성공은 성장하는 과정이 반드시 필요하다.
내가 가지고 있는 작은 호기심, 그것을 지속하는 근면함, 거기에 사랑을 쏟고 끊임없이 관심을 가지고 웃고 울며 함께 뒹굴 때 스토리도 생기고 다른 사람들과 조금씩 연결될 때 언젠가 흐뭇한 브랜드가 되는 것이라 믿는다.
퍼스널 브랜딩. 라이언과 로이 형제가 예티가 되었듯이 호기심으로 일상 속의 불편함을 해결할 때 시간이 스토리가 되어 훗날 흐뭇한 브랜드로 우리에게 새겨진다는 것을 가르친다.
브랜드는 시간이 걸린다. 거기엔 스토리가 생성되는 과정이 묻혀 있기 때문이다.
오늘도 브랜드 중 '브'정도에 과정을 밟고 있다. 스토리를 더해가기 위해 노력하면서.
"레몬엘에이님 새로운 제안이 있습니다." 이런 제안을 하나씩 쌓아 간다. 짓고 싶은 집의 설계도면을 따라 벽돌 한 장씩 얻으면서. 포기하지 않으면 멋진 집이 지어질 거라 믿으며 오늘을 임한다.
I am 레몬엘에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