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리랜서로 살 용기
'이것이 정말 나의 길일까' 다시 그 고민 앞에 와 있다면 한 번쯤 다시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진로는 미로가 아니기 때문이다.
제주도로 가족 여행을 간 적이 있다. 김녕미로공원이 관광명소로 알려져 있어 찾아가 보았다. 들어가기 전에 남편과 아이와 누가 먼저 나오는지 신나서 내기를 했다. 그렇게 출발! 미로공원은 사계절 푸르른 랠란디 나무와 제주 송이로 만들어져 있었다. 미로는 2미터를 훌쩍 넘는 높이로 사람들이 미로 속을 돌아다니지만 서로 전혀 보이지 않게 설치되어 있다.
처음엔 즐거울 거 같아 들어갔는데 시간이 지나면서 이길로 가보아도 그 길이 아니고, 저 길로 가보아도 입구가 보이지 않아 불안하고 막막해지기 시작했다. 20분 정도 시간이 경과하자 재미는커녕 탈출하고 싶은 마음만 커져갔다. 매번 양갈래의 선택길이 나올 때마다 출구를 향한 길을 고르지 못했다. 그러면서 시간이 길어졌고 결국 꼴찌로 미로를 겨우 빠져나오게 되었다. "휴~ 드디어 빠져나왔어."
살다 보면 미로 같은 곳에 놓일 때가 종종 찾아온다. 진로 문제가 특히 그렇다. 십 대 청소년도 고민을 하고 대학을 다니는 20대 청년들도 고민을 한다. 어느 정도 연차가 쌓여가는 직장 생활을 하는 3, 40대에게도 마찬가지다. 은퇴를 앞둔 5,60대도 노후 준비를 위한 새로운 진로를 고민하는 시대가 왔다. 먹고사는 수고는 천지창조 이후 선악과를 따 먹은 아담과 이브의 죄로 인류가 이렇게 고달프게 된 거라고 친구는 종종 웃으게 소리로 이야기한다.
"이게 다 이브 때문이야. 그때 죄만 안 지었어도 낙원에서 태어나 고생 없이 사는 건데 말이야." 그럼 나는 항상 이렇게 반문한다. "그다음 후손 중 누군가는 똑같은 죄를 짓지 않았을까? 결국 똑같은 결론에 이르렀을 거야."
아이도 고등학교 1학년이 되어서는 진로 문제를 심각하게 고민하기 시작했다. 대학 입시를 앞두고 미래 직업을 위해 전공을 선택해서 이과 과목을 더 들어야 할지, 문과 과목을 더 들어야 할지 노선을 정해야 하기 때문이다. 미국 고등학교에는 이과나 문과가 없다. 수학이나 과학 쪽이 더 적성에 맞고 미래에 그와 관련된 전공을 원한다면 이과 과목 쪽 수업을 챙겨 들으면서 좋은 성적을 유지해야 하고, 문과 쪽 전공을 원한다면 영어와 역사 과목 쪽에 비중을 두고 공부하는 시스템이다.
대학입시를 앞둔 아이를 보면서 과거의 대학입시가 정말 많이 떠올랐다. 미로와 같은 세상의 첫문, 여기서 자신이 선택한 길을 통해 헤매는 시간이 정해진다.
"엄마는 어땠어? 어떻게 전공을 선탰했어?"
"아유 말도 마. 외할머니가 여자라고 고등학교 때도 문과를 가라 해서 갔고, 대학도 문과 쪽으로 가라고 해서 갔어. 얼마나 후회했는데."
그랬다. 국어와 영어보다 수학을 월등히 잘했는데도 엄마는 여자는 문과를 가야 한다고 우겼다. 근거 없는 논리였지만 엄마니까 내 인생을 걱정해서 심사숙고해 그런 조언을 한다고 생각했다. 나중에 물어보니 문과 가서 편하게 대학 다니다 시집이나 가라는 뜻으로 말했다고 했다. 대학은 나의 미래 직업을 위해서가 아니라 시집을 가기 위한 스펙이라 생각하신 거다. 그 덕분에 나는 하고 싶은 걸 찾기까지 오랜 시간 방황해야 했다. 차라리 건축학과를 갔더라면 개집이라도 멋지게 지었을 텐데라는 후회를 반복적으로 하면서.
아이는 친구들도 똑같은 고민으로 머리 아파한다고 했다. 다행히 나와 남편은 한마음으로 충분히 고민해 원하는 길을 찾아보라는 조언을 해 주었다. 무엇을 선택해도 인생은 힘들지만 자신이 원하는 것을 하고 있을 때 버틸 힘이 생긴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아이는 학교 카운셀로도 만나고 주변에 알고 지내던 삼촌들이나 대학 간 형들과도 시간을 보냈다. 그러면서 지금 공부하고 있는 전공을 선택하게 되었다.
"그래서 뭘 공부하고 싶어?"
"엄마 나는 수학하고 컴퓨터 수업이 가장 재미있어. 컴퓨터 공학을 공부하려고. 그래야 후회를 덜 할 거 같아."
생각해 보니 그렇다. 완벽한 결정은 세상에 없다.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하면서 살면 적어도 후회는 덜 하는 인생이 되는 것이다. 아들은 결국 컴퓨터 공학을 공부하게 되었다. 학교 수업이 너무 빡세서 밤새 숙제를 하는 날도 많고 시험을 보고 좌절하는 날도 많다.
"엄마 망했어. 시험 개(완전히) 망했어."
이런 전화가 올 때는 조용히 끝까지 하고 싶은 이야기를 할 수 있도록 들어준다. 들으면 들을수록 포기한다는 건 아닌지 조마조마하다. 그런데 마지막에는 "그래도 내가 선택한 거니까 끝까지 잘 버텨야지."라고 해서 얼마나 다행인지.
이 전공을 내가 억지로 권했다면? 끔찍하다. 힘들 때마다 엄마 탓을 할 것이고 다시 설득하거나 싸워야 했을 것이다. 어쩌면 중간에 포기했을지도 모른다. 거기에서 끝나지 않는다. 주변에서 진로 문제로 사이가 악화되어 고통스러워하는 부모 자식 관계도 심심치 않게 본다. 후회는 부모 몫이 되고 원망은 자식 몫이 되어 좁혀지지 않는 관계를 보면서 안타까웠다.
나의 대학시절, 그 시절 대학 동기들이나 주변 친구들과 다르게 내가 선택한 길은 특이했을지도 모른다. 취직이 아니라 프리랜서라니 시큰둥하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하지만 이미 오랜 시간 방황한 터라 내 길은 내가 선택하고 싶었다. 지금 돌이켜 보면 부모가 정해준 프레임에서 벗어나 자유로운 내 인생을 찾는 길로 여겼던 것 같다.
지금 나는? 그럭저럭 행복하다. 세상에 완벽한 결정 같은 건 없다. 그래도 내가 해보고 싶었던 일들을 충분히 경험해서 투덜거리지 않는다. 그렇게 일본어로 통역 일을 하고 번역 일을 하고 강사를 하면서 자유롭게 경력을 쌓아 갔다. 그러다 미국으로 이민을 가게 되었고 부족한 영어로 새로운 일들에 도전해야 했다. 새로운 미로 앞에 다시 놓인 것이다.
미국에서 부족한 영어로 학교를 다니고 졸업 후에는 인터쉽을 구하기 위해 회사에 들어갔다. 미국이지만 일본어를 한다는 이유로 일본 마케팅 책임자로 일하게 되었다. 천만다행이었다. 영어보다는 일본어가 자유롭고 일본어보다는 한국어가 나은데 나에게 딱 맞는 직장이었다. 여기서 일하면서 배운 것을 토대로 그 후에 나만의 1인 기업을 설립하게 되었고 이 경험을 토대로 작년에 첫 전자책도 출판하게 되면서 본격적으로 글쓰기에 돌입했다. 최근에는 다시 두 번째 전자책을 출판했다.
사실 첫 출판은 10년 전의 일이다. 대학시절 글쓰기를 좋아해 학보사 기자를 하면서 편집장까지 하게 되었다. 그게 좋은 운을 불러왔는지 <꼬리에 꼬리를 무는 영어> 베스트셀러 작가 한호림 선생님을 알게 되었고 함께 <꼬리에 꼬리를 무는 일본어>를 3인이 공동 작업해 출판했다. 한호림 선생님과 나와 선배, 각자의 역할을 분담해 열심히 신나게 작업했던 그 시절을 기억하면 고생도 많이 했지만 즐겁고 소중한 추억이 되었다.
하고 싶은 일을 한다는 것 또한 결코 쉬운 길을 의미하지 않는다. 다만 어려움이 올 때 버티는 힘, 흔들리는 세상의 중심에서 똑바로 설 수 있는 힘을 얻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무엇보다 '나'를 잃지 않고 지킬 수 있어서 행복했다.
스토아학파의 대표적인 철학자 세네카는 이렇게 말한다.
"우리는 흔히 부모를 선택할 수 없다고, 그냥 우연에 의해 맺어진 것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우리는 적어도 자신이 원하는 사람은 될 수 있다. 이것도 진리다."
진로는 미로가 아니다. 진로는 자신이 원하는 사람이 되기 위한 중요한 선택의 길이다. 한 번쯤 미로 안에서 충분히 헤매었다면 이젠 원하지 않는 미로 속으로 다시 들어가지 말자. 헤매는 길을 반복적으로 선택하는 것이야말로 쓸데없는 용기이다.
미로는 해결책을 제시하지 않는다. 갈림길 앞에서 선택을 제시할 뿐이다. 세상은 드넓다. 미로 속에서 빠져나와 그것을 등지고 앞을 향해 자신의 길을 걸어 나갈 시간이 왔다. 우리 모두의 인생은 그 속에서 헤매기는 너무나 아깝고 소중하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