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리랜서로 살 용기
"나는 내 거다."
당연한 진리를 무리에서 빠져나왔을 때, 신념을 가지고 살았을 때, 겨우 알게 되었다.
엄마가 되어보면 자연스럽게 과거 엄마의 흉내를 내게 된다. 자식으로 살아본 경험은 있는데 엄마로 살아본 건 처음이라. 자상함이라기보다 과잉보호에 가까웠던 엄마의 양육은 지극히 자연스럽게 내 아이에게로 전염됐다.
"엄마, 나에게 실수할 기회를 주세요. 그래야 내가 배우고 성장할 수 있잖아요."
중3이 된 아들이 어느 날 조심스럽게 한 말이었다. 아무런 대꾸도 하지 못한 채 고개를 끄떡였다.
아이가 내 거라고 생각했나 보다. 나의 엄마도 그랬었다. 아빠도 그랬다. 가족, 특히 부모는 자식이 자신들의 것인 양 생각하고 취급한다. '사랑'이란 명목아래 '사랑'이라고 거듭 언급하면서. '사'자에 한 번 멈칫, '랑'자에 발이 묶여 오랜 시간 그 틀을 벗어나지 못했다.
어느 날부터 사랑의 족쇄가 숨 막히게 싫어졌다.
'나는 내 거야, 내 거라고' 수없이 허공에 외치고 동굴 속 같은 마음에 외쳐댔다. 멈추지 않은 외침의 파동 탓일까, 갇혀 있던 동굴 안으로 틈새가 생기기 시작했다. 그 작은 틈을 비집고 들어온 한 줄기 빛. 그 빛을 따라 첫 번째 발걸음을 내디디면서 나의 길이 시작되었다.
그런 경험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부모의 모습을 무의식적으로 복사해 아들에게 붙여 넣기하고 있었다. 아들이 "나는 내 거야, 내 거라고" 외칠 때까지 끊임없이.
그래서인지 내가 내 거가 될 수 없을 때, 기꺼이 벗어나는 길을 선택하는 습관이 있다. 거꾸로 무리에서 벗어나는 걸 두려워하고 힘들어하는 사람들도 있다. 아니 많다. 무리 속에 있으면서 그것이 다 자신의 인간관계라도 되는냥 그 무리를 벗어날 때까지 착각하며 산다. 그러면서 무리의 속도에 맞춰 뛰기도 하고, 걷기도 한다. 그러다 어느 날 "나는 누구? 여기는 어디?"냐고 묻는 자신과 조우한다. 나에게도 그런 시간이 있었던 것처럼.
예전에 본 드라마 <사이코지만 괜찮아>에 인상적인 대사가 나온다. "문상태는 문상태 거", "문강태는 문강태 거." 장애가 있는 형 문상태와 그 형을 책임지며 살아가는 동생 문강태. 이 둘은 버거운 인생살이 속에 자신을 잃어버린 채 살다 차츰 자아를 찾아가며 "나는 내 거다."라는 진리의 섬에 도달한다.
당연한 이치처럼 들릴지 모르지만 그 이치를 깨닫는데 무척이나 오랜 시간이 걸렸다. 20대 후반, 일본에서 다니던 회사가 있었다. 만원 전철에 끼여 숨조차 제대로 쉴 수 없었던 출근시간. 회사까지 50분 정도 걸리는 시간 동안 '오늘은 지각하면 안 되는데'만 내내 생각하며 회사에 도착했다. 간신히 5분 전에 도착해 화장실에 들어가 옷매무새를 다지며 거울을 봤다. 거울에 비친 내 눈빛은 힘이 없었다. '이렇게 언제까지 살 수 있을까'를 되물으며 회사로 들어갔다.
회사 안에 내 책상, 내 자리가 분명 있는데 그곳에 '나'는 없었다. 일도 그럭저럭 할만하고 괜찮았다. 동료와도 상사들과도 원만히 잘 지냈다. 그건 단지 하고 있는 일이었고, 할 수 있는 일이었다. 하고 싶은 일이 아니었다. 물을 마셔도 갈증이 가시지 않고, 음식을 먹어도 맛이 없다. 나의 영혼은 목마름에 헐떡이고 있었다.
힘겨운 삶의 무게로 사랑을 거부하는 정신병동 보호사 문강태처럼 '나'를 찾지 못하면 사랑도 인생도 찌그러지고 얼그러진다. "나는 내 거야."라고 말하는 순간, 강태의 눈빛은 생명력을 얻어 반짝인다. 헤매던 영혼과 자아가 일체 되면서.
"인생은 내 것이다.", "나는 내 거다." 이 말에 설득되고 싶지 않다. 고개를 끄덕이며 이해하는 현실 속에 존재하려 지금도 애쓴다. 안정적인 월급을 주는 자리에도, 파도를 치듯 불안정한 수입의 프리랜서 자리에도 불안과 두려움은 공평하게 공존한다. 다만 내 영혼이 자유롭게 숨을 쉬는지, 생명력을 가지고 '오늘'을 맞이하는지가 다를 뿐.
아침에 눈을 뜨고 오늘이라는 시간이 주어져, 그저 감사하다. 살아있는 눈빛으로 오늘도 살 용기를 기꺼이 낸다. 아직 길을 헤매는 사람들을 위해 '내 인생은 내 거'라는 이정표를 꽂아두고 또다시 앞으로 나아가면서.
"미래를 예측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그것을 만드는 것입니다."
-에이브러햄 링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