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브랜드로, 나를 브랜딩
나는 왜 프리랜서로 살까. 관념 속에 버무려지기가 싫다. 잡어 매운탕처럼 범벅된 양념 속에 묻혀 내가 누군지 알 길 없는 인생이 싫다. 밥상 위에 반찬이 많아 아무도 젓가락 대지 않는 초라한 단무지라도 이름을 갖고 있는 단무지가 낫다는 것이 나의 지론이다.
조직생활이, 회사가 잡어로 만든 매운탕처럼 여겨져 싫었다. 매운탕 안에 각종 양념으로 범벅이 된 물고기보다 형체와 색깔을 또렷이 알 수 있는 단무지. 모두가 매일 찾지는 않지만 필요한 날이 있지 않은가. 짜장면을 먹을 때, 짬뽕을 먹을 때, 탕수육을 먹을 때, 느끼한 음식을 먹을 때 상큼한 역할을 해내는 단무지. 색깔도 노란 것이 상큼하고 한 번쯤 요긴한 쓸모를 부린다.
하나 더, 프리랜서의 앞 글자 프리가 프리프리하게 꼬리 치며 본성을 건드린다. '너는 프리프리하게 헤엄치는 물고기처럼 살아야 된다고. 매운탕은 너의 운명이 아니야.'
어쩌면 나는 쟁반처럼 동그란 세상에 끼여지지 않는 사각형 퍼즐 조각일지도 모른다. 오랜 시간 동그라미인 줄 알고 이것저것 하면서 시간을 흘려보냈다. 인생에 부대끼는 일이 많아 어느 날 우연히 거울을 보니 네모가 비친다. 그걸 그제야 안 거다. 네모로 살아가기에는 늦었을까 잠시 고민도 해 보았다. 그러다 내린 결론! 늦은 때는 없다. 네모로 살아갈 시간이 시작되었을 뿐.
문제는 동그란 세상 안에서 데구루루 구르며 잡음 내지 않고 살아야 하는데 네모이다 보니 꿈틀댈 때마다 소리가 난다. 쿵쾅쿵쾅. 왜 이렇게 조용히 못 사냐고 동그라미한테 잔소리 한 바가지 듣는다. 그게 아니라 네모여서 움직일 때마다 소리가 그냥 나는 건데…. 사실 동그라미 천지인 세상에서 주눅 드는 날도 있고 눈치 보이는 날도 있다. 설 자리가 좁을 때도 있고 위축될 때도 있다. 대범해지는 날보다 소심하게 살아야 했던 날이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많았다.
그런데 소심한 세월도 길어지니 반발심이 생기면서 중심이 선다. 네모가 어때서. 네모로 살 권리, 국가에 사회에 가족에게 허락이 필요하지 않다는 것을 우물 밖 세계에서 겨우 알았다. 각자 저마다 생긴 대로 살고 있는 생물체들이 가득한 커다란 세상에서 눈이 번쩍 뜨였다.
동그라미는 동그랗게
세모는 세모나게
네모는 네모 그대로.
내가 좋아하는 쉘 실버스타인의 동화 <어디로 갔을까 나의 한쪽은>에 이 빠진 동그라미가 나온다. 자신에게 맞는 조각을 찾아 떠나는 여행 이야기다. 결국 이 빠진 동그라미는 이 빠진 채로, 구르지 못하는 조각은 조각대로 자신들의 삶을 받아들인다. '그러다가 …… 천천히…… 한끝을 땅에 대고 몸을 일으키는 조각……' 마지막 부분에 홀로 남은 조각은 자신을 구르게 해 줄 다른 동그라미를 더 이상 기다리지 않고 홀로서기에 도전한다. 자아를 찾은 것이다.
네모인 나도 그렇다. 이 빠진 동그라미처럼 굴러다니며 조금 더 완전해지려고 애쓰며 살았다. 다양한 조각들을 만나 끼워 보고 맞춰 보며 때론 안도하고 때론 힘들어하면서. 네모는 네모의 쓸모가 있다는 것을, 네모는 네모의 가치가 있다는 것을 주변이 아니라 오롯이 나에게 집중했을 때 겨우 깨닫게 되었다.
그걸 찾아 인생이란 여행길을 지도 없이 헤맨 것이다. 지도가 있으면 있는 대로 시간이 단축되어서 좋고 지도가 없으면 없는 대로 새로운 골목길과 뒷길, 옆길에서 줍는 새로운 풍경과 이색적인 환경을 접하면서 영감을 얻어 좋다. 그 무엇도 쓸모 있게 생각하면 쓸모 있어지는 법이니까.
자유를 꿈꾼 시인이자 사상가로 유명한 헨리 데이비드 소로는 이런 멋진 말을 남겼다. "생계를 꾸리는 데 인생의 상당 부분을 소모하는 것보다 더 치명적인 실수는 없다. 모든 위대한 일은 자립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시인이라면 자신의 시로 몸을 먹여 살려야 한다. 제재소의 증기기관이 제재소에서 나오는 나무 부스러기를 연료로 삼아 돌아가듯이. 우리는 사랑하는 일을 생계로 삼아야 한다."
네모로 살아가면서 나의 몸을 먹여 살리면 되는 것이다. 그뿐이다.
요즘은 N잡러, 퍼스널 브랜딩이 유행이다. 빠르게 변해가는 최첨단 시대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생존법의 하나로 인식하는 걸까. 다른 관점으로 출발해 처음부터 자신이 사랑하는 것을 찾아 세상 속에 쓰일 곳이 없는지 찾아내 그곳에 한 부분이 되는 발상은 어떨까. 가슴이 뜨거워지는 것에 열정과 사랑을 담아 살아가는 것, 그것이 퍼스널 브랜딩이니까.
자아를 찾아 떠나는 이 빠진 동그라미처럼, 홀로 서기를 자청한 조각처럼 내가 누구인지 알게 된다는 것이 이번생의 가장 훌륭한 작업이 되었다. 네모는 구르지 않고 네모대로 살아가도 된다는 것을 알아차려서 이제는 쿵쾅거리는 소음을 음향처럼 즐긴다.
'어디 네모가 필요한 곳은 없나?'
눈 빠지게 세상을 바라보는 새로운 습관이 여기서 생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