캥거루족 10주 차
독립한 지 10년 만에 돌연 캥거루족이 된 30대 자식입니다. 현재 부모님과 함께 살고 있습니다.
"나중에 하면 안 될까?"
몇 년 전, 나는 어버이날 선물로 부모님의 건강검진을 준비했다. 내 지갑 사정을 생각하면 결코 작지 않은 결심이었다. 하지만 그들은 거절, 또 거절. 특별한 이유도 말해주지 않고 나중으로 미루기만 했다. 답답했다. 뭘 망설이는 건지 알 수 없었다.
무섭다고 했다. 주변에 건강검진을 받았다가 큰 병을 발견한 사람들이 있다고 했다. 그럼 하루라도 빨리 검사를 받아야지! 피한다고 될 일이야? 다그쳐봤지만 그들의 고집을 꺾지는 못했다. 원래 자식은 부모 말을 들어도, 부모는 자식 말을 듣지 않는다. 나의 야심 찬 건강 프로젝트는 그렇게 무산되었다.
그런데 이번엔 상황이 다르다.
같이 사니까 좀 더 끈질기게 설득할 수 있지 않을까?
마침 회사에서 가족 중 한 명을 무상으로 검진해 주는 복지가 생겼다. 오호! 예감이 좋다. 부모님은 공짜에 마음이 약해지기 마련이다. 불안함을 잠재우기 위해 같은 병원, 같은 날에 나도 함께 검사를 받기로 했다. 용기를 내야 한다면? 지금이다. 드디어 엄마가 도전 의사를 내비쳤다.
엄마는 대학병원에서 큰 수술을 몇 번이나 했지만, 여태 종합건강검진을 받은 적이 없었다. 참 아이러니했다. 늦었지만 이제라도 하게 되어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만약 떨어져 살았다면 이렇게까지 챙겨드리진 못했을 것이다. 마음에 짐으로 남아있던 오랜 숙원사업을 끝낸 기분이 들었다.
검사 당일, 나는 엄마에게 온갖 아는 척을 해댔다. 별거 아니라는 듯 여유를 부리는 선배미, 아니 꼰대미가 철철 흘렀다. 우리는 함께 병원에 들어왔지만 직원의 안내에 따라 각자 떨어져 검사를 받게 되었다. 종종 복도에서 엄마를 마주쳤다. 나는 그녀가 잘하고 있는지 계속 신경이 쓰였다. 이제는 내가 엄마를 살펴야 하는 입장이 된 건가. 기분이 이상했다.
기본적인 검사들을 모두 마치고 내시경실로 넘어왔다. 마지막 관문이자 하이라이트다. 나는 위와 대장내시경을 앞두고 있었다. 뭐 별거 있겠어~라는 마음으로 긴장하는 기색을 감추고 검사실로 들어갔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몽롱한 정신에 지배당하며 눈만 꿈벅거리는 와중에 누군가 내 이름을 부르는 목소리가 들렸다.
"양독자님! 안으로 들어오세요. 보호자분도 같이요."
안으로 들어가자 시술을 담당한 의사가 앉아있었고 화면에는 이상한 사진이 띄워져 있었다. 방금까지 내 몸속에 있던 용종이었다. 그는 나의 대장 상태를 조곤조곤 설명해 주었다. 당분간 무리한 운동과 자극적인 음식은 주의하라고 당부했다. 수면 유도제의 강력함에 여전히 헤롱거리는 나와 달리, 맨 정신인 엄마는 꽤나 놀란 눈치였다.
용종 제거도 나름 수술이라고, 직후 2시간은 물도 마시면 안 된다. 이미 전날 점심부터 아무것도 먹지 못한 상태. 뜻밖의 금식 명령에 온 세상을 잃은 듯했다. 팔다리에 기운이 빠져 걸을 힘도 없었다. 엄마는 자신에게 기대라며 어깨를 내어주셨다. 나보다 왜소해진 엄마에게 더는 의지할 일이 없을 줄 알았는데... 그녀는 여전히 포근하고 편안했다.
언제부터일까. 앞으로는 내가 엄마, 아빠의 보호자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물론 실제 보호자 역할을 한 적은 없다.) 신체적, 경제적으로 우위에 있다는 사실만으로 그들의 울타리가 될 수 있다고 자만했다. 하지만 아니었다. 내가 심리적으로 그들에게 의지하고 있는 한, 그들은 여전한 내 보호자였다. 어쩌면 나에게는 경제적 독립이 아닌 정신적 독립이 시급한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