캥거루족 11주 차
독립한 지 10년 만에 돌연 캥거루족이 된 30대 자식입니다. 현재 부모님과 함께 살고 있습니다.
나는 여태까지 부모님께 생활비를 드린 적이 없다. 학생 때는 능력이 없어서 드리지 못했고, 직장인이 된 이후로는 부모님과 따로 살았기에 드리지 않았다. 동거여부와 고정수입, 생활비는 두 조건이 모두 충족될 때 성립한다고 판단했다.
그러니까 내 논리로 따진다면,
지금의 나는 생활비를 내지 않을 이유가 없다.
본가로 이사 온 후, 얼마 있지 않아 어버이날이 찾아왔다. 지금까지는 따로 산다는 명목하에 기념일마다 드리는 용돈으로 생활비를 대신했다. 이제는 어떻게 해야 할까? 아직 모르겠다. 일단 이번 달은 하던 대로 하자!
나는 캥거루족이 되기 전에 부모님과 이 부분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어야 했다. 생활비를 드릴지 말지? 낸다면 얼마를 내야 할지? 기존에 드리던 용돈은 어떻게 조정할지? 미리 정하고 시작했다면 이렇게 고민하는 일은 없었을 텐데. 내 실수였다.
점점 집에서 누리는 호사가 부담스럽게 느껴졌다. 달달한 사과 한쪽, 뽀송한 이불과 베개, 시원한 에어컨 바람. 이 모든 걸 공짜로 누리고 있으니 어쩐지 마음이 불편했다. 단골가게에 외상을 달아놓고 무단취식하는 기분이었다.
독립을 해본 사람이라면 안다. 숨만 쉬어도 돈이 나간다는 게 어떤 건지. 사실 이건 약간 과장된 말이다. 숨 쉬는 건 돈이 들지 않는다. 대신, 그걸 제외한 모든 것들은 돈이 든다. ‘생활비’는 최소한의 인간다운 생활을 하기 위한 비용이다.
말하다 보니 결론이 내려진 것 같다.
하루라도 빨리 부모님께 생활비를 드려야겠다.
나는 모르지 않았다.
하루만 청소를 미뤄도 바닥을 수놓는 머리카락을,
항상 깨끗할 것 같은 화장실 타일을 점령하는 물때를,
세탁기는 나몰라라 하는 빨래의 숨겨진 과정을,
나는 모르지 않았다.
자취를 해보지 않았다면 몰랐을 것이다. 그러나 이제는 엄마의 수고로움을 어느 정도 이해한다. 집안일은 하면 표 나지 않고, 하지 않으면 티가 난다. 세상에서 제일 억울한 노동이다. 이 법칙을 알고 있는 이상, 나는 정당한 비용을 지불해야만 한다.
하나의 고민이 끝나니 다른 고민이 시작된다. 그럼 얼마를 드려야 하지? 나는 적당한 금액을 스스로 정해야 했다. 누군가 정해주면 좋으련만. 부모님은 여전히 생활비에 대한 언급을 일절 하지 않고 있다. 혹시 내가 먼저 행동하기를 기다리고 있는 건 아닐까?
나도 누군가처럼 넉넉한 금액을 쿨하게 건네고 싶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 ‘자산 증식’이라는 나름의 목표를 갖고 캥거루족 생활을 시작하지 않았나. 혼자 살 때 지출하던 비용보다 더 많은 생활비를 드리진 못한다.
나는, 내 기준 최선의 금액을 현금으로 인출했다.
캥거루족이 된 지 세 달째. 드디어 나는 엄마에게 생활비를 건넸다. 은행로고가 새겨진 봉투를 보자 엄마는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상황파악이 전혀 되지 않는 얼굴. 대체 이게 뭐지? 하는 눈빛으로 나를 쳐다봤다.
”이거 생활비…“
쭈뼛대는 목소리로 내가 말했다. 이 상황이 왜 이렇게 민망한 걸까. 아무래도 홀쭉한 봉투가 마음에 걸린다. 조금 더 넣었어야 했나? 그래도 내 나이가 있는데… 생각보다 적은 금액에 엄마가 실망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봉투는 이미 건네어졌다.
“어휴~ 됐어!”
어린애 코 묻은 돈이라도 받은 것 마냥, 엄마는 단호하게 생활비를 거절했다. 젊을 때 더 저축하라며, 우린 아직 괜찮다며, 내가 건넨 소박한 봉투를 다시 돌려주었다. 나는 저걸 드리기까지 얼마나 많은 고민과 계산을 했던가. 참 하찮고 부끄러웠다.
“근데 얼마 넣었어? ㅎㅎ”
궁금하니 액수만 알려달라는 엄마.
나는 차마 대답하지 못했다.
캥거루족의 오명을 벗고 싶었다. 얹혀사는 자식이 아니라 함께 사는 자식으로 보이고 싶었다. 하지만 결국 나는 부모님의 등골브레이커가 되고 말았다.
민망함을 고마움으로 바꾸고 싶은 마음. 나는 엄마에게 여름 원피스 한 벌을 사주기로 했다. 무단취식에 비하면 별거 아니지만 이렇게라도 보답하고 싶었다. 옷을 입을 때마다 연신 고맙다고 말하는 엄마. 나는 더욱 미안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