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부모님과 살면서 내가 포기한 것들

캥거루족 12주 차

by 양독자
독립한 지 10년 만에 돌연 캥거루족이 된 30대 자식입니다. 현재 부모님과 함께 살고 있습니다.


부모님과 같이 산지도 3개월이 넘었다.


달리 말하면,

집에서 치킨에 맥주를 곁들인 순간이,

해가 중천에 걸릴 때까지 잠을 자던 순간이,

TV에서 청불 영화를 본 순간이,

3개월이 넘은 것이기도 했다.


캥거루가 청정지역에 서식하는 것처럼,

캥거루족도 ‘청정구역’에 산다.





이곳에는 ‘배달음식’이 없습니다



자취생 시절, 내 별명은 ‘치박사’였다. 치박사는 치킨박사의 줄임말로 치킨을 자주, 많이, 다양하게 섭취한 덕분에 얻은 훈장이다. 내 머릿속에는 빅데이터가 쌓여 있었다. 누군가 치킨에 대해 물으면, 질문자의 입맛, 감정, 날씨에 맞춰 추천이 가능했다. 한 마디로 ‘챗 피티’였다.


치킨은 나의 소울푸드였다. 지친 하루를 달래주는데 그만한 것이 없었다. 달콤하고 매콤한 양념은 도파민을 내뿜었지만, 재료 본체는 단백질이라는 사실이 나를 죄책감으로부터 멀어지게 했다. 녀석은 ‘술’과 비슷했다. 지칠 때, 짜증 날 때, 기분 좋을 때, 그냥 잠들기 아쉬울 때, 이 모든 순간과 잘 어우러졌다. 달걀이 완전식품이라면 치킨은 ‘완벽식품’이었다.



캥거루족이 되기 전, 마지막 치킨


요즘은 상황이 많이 달라졌다. 본가로 이사 온 후, 나는 치맥을 즐긴 적이 없다. 밥 먹듯이 치킨을 먹었는데, 이제는 치킨을 먹듯이 집밥을 먹는다. 이는 부모님의 식습관 때문이다. 그들의 주식은 예전과 많이 달라져 있었다. 바깥음식은 최대한 멀리했고, 마치 <생로병사의 비밀>에 나올 법한 자연주의 식단을 추구했다.


자연스럽게 나도 치킨과 멀어졌다. 신메뉴를 누구보다 먼저 먹어보던 ‘얼리치답터‘였지만, 최근 몇 달은 신상 업데이트가 되지 않았다. 치박사 타이틀이 박탈당할 위기다. 배달어플 등급도 VIP에서 일반회원으로 내려갔다. 무료배달 구독서비스는 해지한 지 오래다.





이곳에는 ‘늦잠’이 없습니다



혼자 살면서 어둡고 차분해진 성격과 달리 유일하게 밝아진 것이 하나 있다. 바로 ‘잠귀’다. 이놈의 잠귀는 조증 수준으로 너무 밝아져서 곤란할 지경이다. 자는 내내 온몸의 신경이 주변을 감지하는 기분. 어떨 때는 렘수면 상태로 밤을 지새우는 것 같다.


<해와 바람>에서 나그네의 옷을 벗긴 건, 거센 바람이 아닌 태양이었다. 내 잠을 깨우는 것도 요란한 알람이 아닌 잔잔한 소음이다. 오히려 작은 소리들이 내 잠귀를 살살 건드린다. 그리고 결국엔 눈을 뜨게 만든다.



이솝 우화 <해와 바람>


‘부스럭부스럭’

‘사부작사부작’


우리 집에는 이른 아침부터 하루를 시작하는 부모님이 있다. 혹여나 내가 잠에서 깰까 봐 그들은 평소보다 조심스럽게 움직인다. 대화도 소곤소곤한다. 하지만 배려 가득한 소리도 내 잠귀를 몰래 지나치진 못한다.


오늘은 엎친데 덮친 격으로 문 너머에서 음식 냄새가 흘러나온다. 청각과 후각의 콜라보. 그럼 늦잠은 완벽히 실패했다고 봐야 한다. 이렇게 나는 ‘새 나라의 어이’가 되어가고 있다.





이곳에는 ‘19금’이 없습니다



몇 해 전, 영화 <기생충>이 개봉했다. 봉준호 감독의 신작이자 칸 영화제 수상작. 부모님과 함께 보기에 손색없는 타이틀이었다. 나는 의심 없이 표를 예매했다가 두 눈을 의심하고 말았다. 이 작품에는 부모님과 절대 같이 보면 안 되는 민망한 씬들이 등장한다. 놀랍게도 ‘15세 이상 관람가’인데 말이다.


깜깜한 극장 안에서 옆에 앉은 부모님의 표정을 온 감각으로 살피는 기분을 아는가. 영화가 끝났는데 누구도 감상평을 이야기하지 않는 어색함을 아는가. 경험해보지 않으면 모른다. 그날 이후 나에게는 ‘기생충 트라우마’가 생겼다. 부모님과 영화관에 가지 않을뿐더러 같이 영화를 본 적도 없다.


캥거루족은 웃지못할 사연


문제는 캥거루족이 되면서 개인용 TV를 잃었다는 것이다. 거실에 있는 공용 TV로는 내가 원하는 영화를 다 볼 수 없다. 나만 보는 게 아니기 때문이다. 부모님과 함께 볼만한 작품만 골라야 하는데, 요즘은 재미와 건전성을 모두 갖춘 영화를 찾기 힘들다. 19금은 당연히 불가. 15금도 안심할 수 없다.(기억하자 기생충)


물론 방에서 노트북이나 태블릿 PC로 보는 방법도 있다. 하지만 왠지 금지된 영상을 보는 것 같달까? 부모님 몰래 야동을 보는 중학생 아들이 된 기분이다. 분명 나는 19금을 넘어 29금도 볼 수 있는 성인이고, 그렇다고 불법 영상을 보는 것도 아닌데, 이상하게 여기선 당당하지 못하다. ‘청소년 관람불가’는 ‘캥거루족 관람불가’다.





배달 음식, 주말 늦잠, 잔혹하고 선정적인 영화.

부모님과 함께 살면서 포기한 것들이다. 일명 ‘3포’ 캥거루족. 하지만 이걸 포기라고 할 수 있을까? 이로움보다 해로움에 가까운 것들이다. ‘해독’이라는 표현이 어울릴지도 모른다.


곰이 사람이 되는 시간, 100일.

그 시간 동안 나도 다른 사람이 되어가고 있다.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