캥거루족 14주 차
독립한 지 10년 만에 돌연 캥거루족이 된 30대 자식입니다. 현재 부모님과 함께 살고 있습니다.
‘아무도 없는 집’이라니!
캥거루족의 마음은 무한정 뛰기 시작했다.
언제 다시 찾아올지 모르는 기회를 잡기 위해,
피 같은 휴가를 내어주고 우리 집을 점령했다.
그런데… 아빠도 나와 같은 날 휴가를 냈다.
아니! 왜! 하필! 지금!
부녀의 이심전심은 이번에도 통해버렸다.
오늘부터 3일.
아빠와 나는 단 둘이 집에 머문다.
아주 어색하고, 아주 어설프게.
아빠와 나도 가까운 시절이 있었다. 그게 언제였더라… 초등학생 때? 아니, 초등학교 입학 전인가? 그와 친밀했던 순간을 떠올리려면 한참이나 기억을 거슬러 올라가야 했다. 그리고는 마치 전생처럼 느껴지는 영역에 닿아야만 어렴풋한 추억이 나타났다. 그만큼 오래전이다.
나는 아빠와 총 세 번 떨어져 살았다. 초등학생 때, 고등학생 때, 내가 독립했을 때. 시기도 이유도 다양했지만 공통점이 하나 있다. 우리가 물리적으로 멀어지는 순간마다, 우리의 정서적 관계도 멀어졌다는 것이다. 어려서는 그리움 때문에, 사춘기 때는 반항심 때문에, 성인이 된 이후로는… 그냥 그렇게 됐다.
아빠는 살갑지 않은 경상도 남자였고, 나는 아들보다 무뚝뚝한 딸이었다. 우린 참 많이 닮았지만, 그 이유로 점점 멀어지기도 했다. 같은 극은 서로 닿지 못하는 ‘자석’처럼. 누군가 억지로 힘을 가하지 않는 한, 아빠와 나는 서로 붙어있지를 않았다. 가만히 놔두면 자연스럽게 멀어져 적당한 거리를 유지했다.
엄마는 성격이 달랐다. 아빠와 내가 ‘N극’이라면 엄마는 영락없는 ‘S극’이다. 두 개의 N극을 붙이려면 S극을 사이에 두어야 한다. 그녀는 우리 부녀를 연결하는 징검다리다. 여행을 가거나 외식을 하는 등, 크고 작은 이벤트에서 그녀는 항상 중심에 있었다. 엄마가 없으면 우리 가족이 함께할 일도 없다.
엄마 없는 집. 지금 여기에는 두 N극만 남아있다. 세상이 멸망하고 아빠와 단 둘이 남으면 이런 기분일까. 이 공간에서, 이 시간을, 이 어색함을, 어떻게 헤쳐나가야 할지 벌써부터 막막했다. 겨우 3일인데 이렇다고? 아… 휴가 쓰지 말고 출근이나 할걸. 막 후회하려는 찰나 아빠가 입을 열었다.
“오늘 뭐 약속 있나?”
나의 일정에 대해 묻는 아빠. 표준어와 사투리가 반반씩 섞인 그의 말투가 오늘따라 유달리 어색하게 느껴졌다. 아빠는 혹시 내가 집에 없었으면 하는 걸까? 하지만 나는 집에 있기 위해 휴가를 썼는걸… 딱히 갈 곳도, 갈 생각도, 갈 에너지도 없다.
“그럼 이따 나가서 맛있는 거나 먹자”
순순히 그러겠다고 답했지만 벌써부터 데면데면한 그와 나의 모습이 머릿속에 그려졌다. 분명 어릴 땐 아빠랑 있는게 더 편하고 좋았는데. 지금은 왜 이렇게 독대가 어색한건지. 자꾸 어색하다고 해서 더 어색하게 느껴지는 걸 거야. 근데 진짜 어색해. 어색하다고!
언젠가 아빠와 다시 스스럼없이 지낼 수 있을까?
서서히 멀어졌던 것처럼,
서서히 가까워질 수 있다면,
참 좋을 텐데 말이야.
내가 언제까지 캥거루족으로 살지 모르겠지만,
함께 지내는 동안 우리 사이가 조금은 친밀해지기를,
조심스레 바라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