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족한 건 채우면 된다!
경험상 외동은 장점보다 단점이 먼저 나타난다. 가장 먼저 드러나는 단점은 '사회성 부족‘이다. 외동아이를 키우는 부모님들이 가장 걱정하는 부분이기도 하다.
사회성은 타인과 원만하게 소통하는 능력이다. 나는 이것이 타고나는 역량이라 생각했다. 낯선 어른을 봐도 울지 않는 아기, 엄마가 슬퍼하면 따라 울먹거리는 아이들을 보면 그랬다.
나는 애기 때부터 낯가림이 심했다. 잘 모르는 사람이 안아보려고 팔만 내밀어도 울음을 터트렸다고 한다. 심지어 친조부모님 댁에 가서도 계속 울어대는 바람에 엄마는 나를 달래느라 합법적으로(?) 부엌일을 면제받았다. 평생 효도는 어릴 때 한다더니. 그때의 나는 반박불가한 효녀였다.
태생적으로 사람을 어려워했다. 동네 어른들을 뵙고도 쭈뼛대기 바빴다. 인사 한 번을 시원하게 한 적이 없었다. 이렇게 숫기 없는 딸이 심지어 외동이라니. 부모님이 얼마나 걱정했을지 눈에 훤하다. ‘얘가 학교 가서 친구는 잘 사귀려나?’, ‘커서 밥 벌이는 할 수 있으려나?’ 나라도 나를 걱정했을 것 같다.
엄마는 '우리 딸 사회성 키우기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맛있는 음식을 만들어서 친구들을 집에 초대하기도 하고, 동네 놀이터에 데리고 나가서 또래 아이들과 반 강제로 어울리게 했다. 패스트푸드점에 가면 일부러 나에게 주문을 시키기도 하고(거의 울며 겨자 먹기로 했다), 엄마의 심부름으로 혼자 슈퍼에 다녀오기도 했다(당시 엄마는 나의 뒤를 미행 중이었다).
안타깝게도 이런 시도들이 나의 본질을 바꾸진 못했다. 나는 여전히 비사교적 성향을 한가득 머금고 있다. 아직도 처음 만난 사람은 어렵고, 전화보단 문자가 편하며, 대면보단 비대면을 선호한다. 하지만 엄마의 노력이 전부 물거품이 된 건 아니다. 사교적인 인간이 되진 못해도 조금은 사회적인 인간이 되었으니까.
부모님의 걱정과 달리 교우관계는 원만했다. 새로운 친구를 사귀는 과정은 늘 어색했고, 학년이 바뀔 때마다 긴장감은 극에 달했지만, 몇 번 겪다 보니 이것도 곧 익숙해졌다. 친구들과 어울리는 일쯤은 어렵지 않았다.
대학생이 되고부터 새로운 문제가 생겼다. 이전에는 없던 선후배라는 개념이 등장했기 때문이다. 나보다 한 두 살 많거나 적은 사람은 지금까지 경험해 본 적 없는 대상이었다. 집과 학교만 오가는 일상 속에서 내가 가진 인간관계는 동급생과 선생님이 전부였다. 한정된 관계는 새로운 상대를 어렵게 대하는 원인이 된다.
교수님보다 과선배에게 묻고 배울게 많은 새내기. 캠퍼스에서 만난 한 학년 위의 사람들은 불편하고 낯설었다. 어릴 적 이후로 입에 담아본 적도 없는 ‘언니’, ‘오빠’라는 호칭도 어색했다. 그래서 몇 달 동안을 선배라고 불렀다. 으윽-. 지금 생각하면 너무 오글거린다. 무슨 청춘드라마도 아니고.
희한한 게 나보다 어린 후배들은 더 어려웠다. 연장자로서 이끌어줘야 한다는 부담감이 있었다. 내가 그런 역할을 해봤어야 알지… 윗사람에게는 순종적이면 됐지만, 아랫사람에게는 리더십 혹은 카리스마 같은 무엇이 필요했다. 나에게 절대 없는 그것.
대학 4년 동안 배운 건 전공과목만이 아니었다. 나에게는 사회성을 배우는 시간이기도 했다. 방학마다 했던 단기 알바, 학기 중에 했던 대외 활동들. 낯설었던 경험과 인연들은 나를 확장시켜 주었다. 남들보단 느릴지 모르지만 분명 나는 조금씩 나아지고 있었다.
한 가지 특이한 점이 있다. 차라리 나이 차이가 많이 나는 어른은 오히려 편하다는 것이다. 유년기와 청소년기에 내 주변에는 어른들만 가득했다. 엄마, 아빠, 할머니, 할아버지. 나는 또래보다 어른이 익숙했다.
어느 날 친구가 카톡으로 MZ식 건배 동영상을 보냈다. 인스타나 유튜브 숏츠에서만 보던 그림이었다. 어디서 가져온 게 아니고 회식 때 직접 촬영했다고 했다. 이런 것도 할 줄 아냐며 놀라워하는 나에게 친구는 단호하게 말했다.
“네가 너무 차장님들이랑만 어울리는 거야”
맞는 말이었다. 나는 후배보다 선배가 편하다. 1~2년 차 직속 선배보다 10년 이상 차이나는 대선배들이 훨씬 편하다. 후배들에게는 어려워서 나오지 않는 말들이 한참 선배들에게는 툭툭 잘도 나온다. 심지어 장난도 친다.
가끔 점심을 함께 먹는 차장님도 이런 말을 했다.
“너는 오히려 나이 많은 사람들을 편하게 대하는 것 같아. 어린 친구들이랑 안 놀고, 우리랑 이렇게 지내는 걸 보면”
차장님들과 나는 10살 정도 차이가 난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전혀 어렵게 느껴지지 않는다. 어릴 적 가장 많이 소통하던 사람이 모두 어른들이어서 그런 걸까(생각해 보니 차장님들이 꼰대가 아니어서 잘 지냈던 것 같기도 하다).
어릴 적 엄마를 보고 부러워한 적이 있다. 엄마는 어쩜 처음 보는 사람 하고도 말을 잘할까, 신기했다. 그때 난 엄마가 외향적인 사람인 줄 알았다. 성인이 되어 안 사실이지만 엄마는 나와 굉장히 비슷한 성향을 갖고 있었다(MBTI도 나와 똑같다). 그저 성인이 되며 사회화된 내향인이었다. 나처럼.
사회생활을 하면서 깨달은 게 있다. 내가 생각했던 선천적인 능력은 ‘사교성’이었다는 것을. 오히려 ‘사회성’은 후천적인 영역이었다. 한 사람이 태어나 타인을 만나는 순간부터 사회성은 생기기 시작한다. 그래서 부모와 형제는 더없이 중요한 존재다. 형제가 없는 외동은 집 안에 교류할 또래가 없다. 그래서인지 사회성 발현이 다른 아이들보다 늦는 경우가 많다. 외동이 사람과의 관계에서 약자라는 편견이 아주 근거 없는 주장은 아니다.
하지만 오히려 다행이다. 반대로 생각하면 사회성은 주변의 도움과 본인의 의지로 충분히 기를 수 있는 능력이다. 머리가 좋으면 공부를 잘할 확률이 높지만, 공부를 잘하기 위한 필수조건이 높은 아이큐는 아니다. 명석한 두뇌가 사교성이라면 성적은 사회성이다. 머리가 좋지 않아도 성적은 올릴 수 있다. 더 많은 노력이 필요할 뿐이다. 마찬가지로 사교성이 부족하더라도 사회성은 충분히 키울 수 있다. 다만, 남들보다 조금 더 어려울 뿐이다.
나는 외동 중에서도 내성적인 편이라 사회성을 키우는 기간이 꽤나 길었다. 그 핸디캡을 알기에 나름의 노력을 해왔다. 여기에는 부모님의 도움이 매우 컸다. 인생은 혼자라지만 실은 더불어 사는 세상이다. 외동들은 조금만 더 적극적으로 세상에 나올 필요가 있다. 특히 나 같은 소극적인 외동이라면 더더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