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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년 만에 집에 왔습니다

캥거루족 1일 차

by 양독자


가출을 했었다.


부모 동의 없이 집을 나간 것이 통상적 의미의 가출이라면, 10년 전 내가 저지른 행동은 가출임을 부정할 수 없다. 그때의 나는 자취를 너무도 갈망했고, 어엿한 성인이자 사회인이었으며, 부모의 승낙을 기다릴 만큼 마음이 여유롭지 못했다. 그렇게 집을 나왔지만 ’가출청년‘이라는 오명은 어딘가 모르게 찝찝했다. 허락받지 못한 결정이라도 응원은 받고 싶은 이기적인 자식의 욕심이었다.


가출한 지 1년쯤 지났을 때였나. 자취방을 방문한 아빠가 ‘예전에 본가에서 출퇴근하기 힘들었겠네’ 하시며 그간의 노고를 인정해 주셨다. 아마 서울까지 지하철을 타고 오면서 마주친 인파에 혀를 내두르신 모양이다. 그날 아빠는 ‘외동딸 자취 반대 위원회’를 탈퇴하고 지난날 나의 행보를 정당한 독립으로 받아들였다. 나는 그렇게 ‘독립청년’으로 승격되었다.


독립 훈장을 받은 지 벌써 10년.

이제 그만 집으로 돌아가려 한다.




강제 미니멀리스트가 되다


"짐이 왜 이렇게 많아?"


나도 모르게 혼잣말이 입 밖으로 툭 튀어나왔다. 좁아터진 원룸에 어찌나 물건이 많은지. 끝도 없이 등장하는 살림살이를 보고 있으니 그간 내가 공간활용 하나는 기막히게 하고 살았음을 실감하게 됐다. 구석구석 숨어있는 잡동사니들을 바닥에 펼쳐놓았다. 순식간에 발 디딜 틈이 사라졌다. 비록 내 집 마련은 못했지만 ‘내 짐 마련’은 성공한 듯했다.


한 아이를 키우려면 온 마을이 필요하다는 아프리카 속담처럼 한 인간이 살아가려면 온 물건이 필요하다. 프라이팬, 손톱깎이, 빨래건조대 등. 1인 가구든 4인 가구든 사용하는 물품은 비슷하다. 하지만 이것들은 더 이상 쓸모가 없다. 내가 이사 갈 그곳은 초초초 풀옵션이니까. 모든 용품들이 이미 구비되어 있다. 그러니 지금 남아있는 것들은 과감히 처분하자!


안 쓰던 식기류, 안 입을 옷, 버릴까 말까 고민하던 것들을 정리했다. 웬만한 것들은 버렸고, 쓸만한 것들은 새 주인을 찾아주었다. 얼마나 팔아댔는지 중고거래로만 100만 원을 넘게 벌었다.(덕분에 당근마켓 온도가 5도나 올라갔다) 물건을 비워낼수록 묘한 희열감이 느껴졌다. 집 안은 점점 썰렁해지는데 마음에는 온기가 들어섰다. 묶은 각질이 벗겨지고 뽀얀 피부가 만져지는 기분이었다.


공간의 여백이 마음의 여유처럼 느껴졌다.




자취방 말고 내 방


드디어 이삿날이다. 캥거루족으로 정식 데뷔를 앞두니기분이 싱숭생숭했다. 집을 떠날 때는 라면박스 몇 개로 충분했던 것 같은데. 다시 돌아올 때는 짐이 한가득이다. 웬만큼 버렸다고 생각했는데 아직도 남아있는 것들이 많다. 미리 구입해 둔 이사용 박스에 물건을 담아 집으로 택배를 보냈다. 내가 도착하기도 전에 짐이 먼저 우리 집에 도착했다.


지금까지 내 방은 부모님의 서브룸이었다. 코로나가 유행하던 시절에는 격리 장소, 누군가 놀러 오면 손님방, 평상시에는 잡동사니들을 넣어두는 창고로 쓰였다. 나의 입주가 확정되자 부모님은 서브룸의 용도변경 작업을 시작하셨다. 내 짐이 들어올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해 주신 것이다. 이렇게 감사한 집주인이 있나.


반나절만에 이삿짐 정리가 끝났다. ‘내 방’이 ‘내 짐’으로 가득 찼다. 익숙한 공간에 놓인 익숙한 물건들. 그런데 이질감이 느껴지는 건 왜일까. 남이 쓰던 방을 내 물건으로 어지럽힌 것 같았다. 영화 <기생충>에서 기태(송강호)네 가족이 주인 없는 대저택에서 활개 치던 모습이 겹쳐졌다. 아직은 내 방이 불편하고 서먹서먹했다.


괜찮아, 아직 우리 집이 어색할 뿐이야!



이사할 때 카카오 방문택배를 이용했는데 아주 편리했다(추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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