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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와 함께 사는 30대, 비정상인가요?

캥거루족 연습생

by 양독자


적지 않은 나이에 부모님과 함께 살고자 하는 것은 여간 눈치가 보이는 일이 아니었다. 가까운 친척, 옆집 이웃, 안면을 트고 지내는 택배 기사님까지. 장성한 자식이 다시 ‘품 안의 자식’이 됐다는 사실을 어떻게 받아들일지. 나는 주변의 시선이 조금은 두려웠다.


쟤는 결혼도 안 하고 아직 부모랑 사네?

자식은 크면 떨어져 사는데 답인데!

아이고 부모가 고생이겠어…

정작 남들은 관심도 없을 텐데 지레 걱정을 사모았다.


사실 정말 신경 쓰이는 대상은 이웃도 친척도 아니었다. 죄송하지만 부모님도 아니었다. 그건 바로, 나였다. 누구보다 나에게 눈치가 보였다. 어느덧 30대 중반, 부끄러움을 무시하고 뻔뻔해지기란 쉽지 않은 나이였다.




내 주변에는 왜 캥거루족이 없을까?


통계청 조사에 따르면 우리나라 2030의 81%가 캥거루족으로 살고 있다고 한다. 영광스럽게도(?) OECD국가 중 1위다. 그런데 왜… 내 주변에는 부모님과 함께 사는 30대가 없는 거지? 아마도 81%를 이루는 대부분이 20대 일테지. 그렇다면 캥거루족에도 나이제한이 있는 걸까.


독립에 적령기가 있다면 그건 언제쯤일까? 성인이 되자마자? 사회인이 되는 순간? 나 역시 이른 나이에 직장생활을 시작하면서 자취를 시작했다. 또래 친구들보다는 일찍 독립을 이룬 셈이다. 그런데 이제 오래전 머물렀던 부모의 품으로 돌아가려 한다. 나는 무모한 길을 걸어가는 중인가. 아무리 둘러봐도 내 앞에는 선구자가 없다.


다시 캥거루족이 되는 건 정말 도박일까?




30대 캥거루족을 만나다


나는 현역에서 활동 중인 캥거루족 선배들의 이야기가 필요했다. 내가 터무니없는 결심을 한건 아닌지, 그들의 생생한 경험담을 통해 확인하고 싶었다. 리터루족(다시 캥거루족이 된 자식)은 결국 찾지 못했지만 태어난 이후 지금까지 계속 부모님과 거주 중인 ‘모태 캥거루족’ 두 명을 취재할 수 있었다. 나는 그들에게 물었다. 어때요, 이 나이에 부모님께 얹혀사는 삶은?



첫 번째 캥거루

- 30대 중후반 남자

- 매달 용돈 겸 생활비 드림

- 현재 독립 준비 중(마음속으로)


그는 출퇴근시간 단축을 위해 자취를 고려하고 있다고 했다. 한데 내가 느끼기에는 엄마의 감시를 피하기 위함인 듯 보였다. 저녁 술자리로 늦게 귀가할 때면 때때로 눈치가 보인다는 것이다. 통금은 없었지만 통제는 남아있었다. 내일모레 마흔이 되는 아들에게도 예외는 없었다. 간혹 집에 어른들이 오실 때면 ‘결혼도 안 하고 여기서 뭐 해’라는 잔소리를 들어야 하는 상황을 최대 단점으로 꼽았다.



두 번째 캥거루

- 30대 중반 여자

- 따로 생활비는 내지 않음

- 자가를 구입했으나 여전히 부모님과 함께 사는 중


그녀는 나와 동갑이었다. 그래서인지 더 동질감이 들었다. 그녀는 캥거루족으로 사는 것이 금전적으로 유리하다는 사실을 순순히 인정했다. 여름철 전기세와 겨울철 가스비에 무감각한걸 보니 엄청난 캥거루인 게 분명했다. 공식적인 생활비를 내고 있지 않아서인지 종종 눈치가 보이는데, 그럴 때면 집에 필요한 물건들을 대신 구매해 주는 방식으로 죄책감을 덜어낸다고 한다. 결혼을 하지 않는 이상은 지금처럼 부모님과 함께 지낼 거라고 했다.




그들의 애환은 맵고도 달달한, 맵단맵단 그 자체였다. 가감 없는 후기를 듣고 나니 ‘언제까지 캥거루족으로 남을 수는 없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계약직 캥거루가 되기로 마음먹었다. 기간은 1년? 아니면 2년쯤? 그래, 3년 안에는 그토록 꿈꾸던 내 집마련에 성공해서 다시 독립을 하자고 다짐했다. 잠시만 얹혀사는 거야, 아주 잠시만! 마치 주문을 걸듯 되뇌었다.


과연 나는 약속한 기간 내에 캥거루족을 은퇴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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