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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명 ‘우리 집’인데 눈치가 보여요

캥거루족 1주 차

by 양독자
독립한 지 10년 만에 돌연 캥거루족이 된 30대 자식입니다. 현재 부모님과 함께 살고 있습니다.


부모님께 얹혀 산지 일주일.

나는 벌써 눈치가 보이기 시작했다.


핀잔을 주는 사람이 없는데 스스로 위축되는 내 모습. 나는 이 전개가 무척 당황스러웠다. 대체 왜 이러는 걸까. 내가 무슨 성적 떨어진 학생이야? 놀고먹는 청년백수야? 당당하지 않을 이유가 없는데. 왜… 아무도 주지 않는 눈칫밥을 혼자 찾아 먹고 난리인지. 수축된 마음을 애써 감추고자 소파에 널브러져 누워봤지만 상태는 변하지 않았다.


엄마, 아빠는 요 며칠 어땠을까. 오랜만에 자식과 함께 살게 되어 마냥 좋기만 할까? 아마 그건 아닐 거야. 말하지 못하는 불편함도 있겠지. 어쩌면 나만큼 눈치를 보고 있을지도 모르고. 우리가 떨어져 지낸 10년의 세월은 서로를 어색하게 만들기에 충분한 시간이었다.


그게 부모 자식 간이라 할지라도.




본가에 왔으면 엄마의 법을 따르라


모든 게 낯설었다. 여기가 우리 집이 맞나? 좋게 말하면 새롭고, 나쁘게 말하면 생소했다. 적어도 한 달에 한 번은 왔었고 명절에는 연휴 내내 지내기도 했지만, 실거주는 전혀 다른 영역이었다. 매일을 함께하는 동거인이 되자 몰랐던 것들이 새삼스럽게 다가왔다.


무엇보다 본가 사용법을 익히는 게 급선무였다. 나는 사소한 행동 하나에도 버퍼링이 걸려 어찌할 바를 몰랐다. 그럴 때마다 고개를 돌려 엄마를 스윽- 하고 바라봤다. 엄마는 자식의 엉거주춤한 자세만 보고도 무엇이 필요한지 단박에 알아챘다.


“음식물 쓰레기는 여기다 버리면 돼”

“아 근데! 바나나 껍질은 이 통에 넣어야 된다”

“생수는 김치냉장고 옆에 쌓여 있어“

“아 근데! 먹던 생수는 냉장고 안에 있다”

그렇게 차근차근 우리 집의 규칙을 익혀갔다.


가끔 이해되지 않거나 불편한 것들도 있었다. 가령 전자레인지가 다용도실에 있다던가. 당장 걸레가 되어도 이상하지 않을 수건들을 버리지 않는다던가 하는 것들. 소매를 걷어올리고 따지고 싶은 게 한두 가지가 아니었지만 나에겐 그럴 명분이 없다. 나는 이 집에 아무런 지분이 없는 캥거루족이니까.




캥거루족이 되자 의기소침해졌다


의외의 잔소리꾼은 아빠였다. 그는 언제부터 집안 살림에 지대한 관심을 갖기 시작한 걸까. 원조 잔소리꾼인 엄마도 가끔 아빠에게 혼날 때가 있다고 한다. 내가 집을 떠나 있는 동안 많은 변화가 있었나 보다.


우리 집을 회사로 비유하자면, 엄마는 업무를 알려주는 직속 사수 대리님, 아빠는 결재를 해주는 팀장님 같았다. 그리고 나는? 경력직으로 갓 입사한 중고신입직원. 회사의 상사들은 신입에게 큰 관심이 없어 보이지만, 사실 매의 눈으로 모든 걸 파악하고 있다. 아빠가 나를 그렇게 보고 있는 것 같았다.


혼자 살면서 자유분방해진 내 습관들은 뾰족한 가시가 되어 아빠의 눈에 콕콕 박혔다. 그것들은 아빠의 입을 통해 흘러나왔고, 결국엔 내 가슴을 쿡쿡 찔러댔다.

“화장실에 욕실 용품이 왜 이리 많아”

“발소리가 좀 쿵쿵거리네”

벌써 몇 번의 경고를 받은 건지 모르겠다.




눈치게임 1, 2, 3


주말 어느 날, 아빠가 갑자기 나를 화장실로 호출했다. 세면대 위 선반에 물이 흥건한 것을 보고 또 경고를 주려는 것이었다.

“이렇게 쓰면 안 돼”

나지막이 말하는 것 같았지만 나는 분명 느낄 수 있었다. 목소리에 스며든 약간의 짜증을. 표정에 녹아있는 약간의 못마땅함을.


순간 울컥해졌다. 세상에서 가장 편안해야 할 ‘우리 집’에서 나답지 않게 눈치를 살피던 지난 행동이, 그 혼란스러움과 새삼스러움이, 아빠의 마지막 경고에 터지고 만 것이다.

“세면대에서는 물이 튀는 게 정상이지!!”

나는 사춘기 소녀처럼 버럭 대들고 방 안으로 들어와 버렸다.


서른 중반이 다 되어서 아빠한테 말대꾸라니. 이게 도대체 무슨 일이람. 그냥 알겠다는 한 마디면 될 일인데. 훅 내뱉었던 울분이 급 부끄러워졌다. 나중에 엄마를 통해 알게 된 사실인데, 아빠는 그날의 잔소리가 심했던 건 아닌지 걱정했다고 한다. 이 집에서 나만 의기소침했다고 생각했는데, 우리는 서로 눈치를 보고 있었다.




누군가와 부대끼며 사는 건 역시 쉬운 일이 아니었다. 예전에 함께 살았던 사람이라도, 서로 잘 아는 가족이라도, 각자의 생활을 공유하는 적응 기간이 필요했다.


캥거루족 1주 차,

우리는 함께 과도기를 맞이하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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