캥거루족 5주 차
독립한 지 10년 만에 돌연 캥거루족이 된 30대 자식입니다. 현재 부모님과 함께 살고 있습니다.
나는 금방 익숙해졌다. 엄마, 아빠를 매일 보는 것이 더는 어색하지 않았다. 그건 부모님도 마찬가지였다. 10년 넘게 떨어져 산 게 맞나 싶을 만큼, 우리는 서로에게 금세 적응했다. 잠시 혼자 먼 곳으로 여행을 다녀온 것 같았다. ‘역시 집이 최고야!’라고 읊조리며 온전한 쉼터에 도착한 기분. 내 몸은 머리보다 빠르게 캥거루족으로 진화했다.
하지만 익숙하지 않았던 것들이 익숙해지자,
도리어 익숙했던 것들이 그리워지기 시작했다.
1인 가구에게 외로움은 필수, 쓸쓸함은 옵션이다. 에어컨, 세탁기, 하이라이터, 옷장, 마지막으로 ‘고독’까지 있어야 진정한 풀옵션 원룸이라 할 수 있다. 혼자 사는 10년 동안 적막함은 극에 다다랐다. 집 안에 흐르는 애잔한 백색소음이 당연했고, 오히려 무슨 소리가 나면 온 신경이 미어캣처럼 곤두섰다.
‘이 정도면 충분해’
집 안이 온통 나의 들숨과 날숨으로 채워지고, 예능 방송을 보며 혼자 웃고, 마치 누가 있는 것처럼 궁시렁거리는 것까지. 고독사를 제외한 고독에 관한 모든 걸 경험했다. 질리고, 지겹고, 지칠 정도로. 적어도 앞으로 몇 달은, 아니 몇 년은 혼자이지 않아도 되겠다고, 그렇게 생각했다.
하지만 인간은 혼자라는 명제가 맞는 건지. 아니면 혼자이길 좋아하는 타고난 성향 때문인지. 나는 금세 고독이 그리워졌다. 집에서 혼자 넷플릭스를 보고, 사치스러운 배달 음식으로 끼니를 때우고, 4캔에 만 원짜리 편의점 맥주로 혼술을 하는 모든 기억들이 아른거렸다. 고독 쿨타임이 이렇게 빨리 채워지다니. 혹시 나는 캥거루족이 되면 안 됐던 사람이 아닐까.
다년간의 자취생활로 고독의 수준이 높아진 나는, 웬만한 공간 분리로는 만족하지 못했다. 방 안에 혼자 있는 것도 마찬가지였다. 간헐적으로 날아오는 엄마의 질문, 지속적으로 들려오는 거실 TV소리. 이것들은 누군가와 함께 있다는 심리적 안정감을 주었지만, 분명 고독타임을 방해하는 요소였다.
나는 완전한 혼자만의 시간이 필요했다. 그러려면 무조건 밖으로 나가야 했다. 부모님과 함께 사는 집은 고독을 수혈하기에 적절한 장소가 아니다. 주말에는 의무적으로 주변 카페에서 몇 시간씩 보내거나 공원에서 산책을 했다. 평일에는 가끔씩 밖에서 혼자 저녁을 먹었다. 다찌석이 있는 일본라멘집에서 마시는 작은 생맥주 한 잔은 묘한 해방감을 주었다.
‘쟤는 혼자 어딜 가는 거야?’
혼자 밖에서 이것저것 하는 내 모습이 부모님에게는 의아해 보였나 보다. 그들의 시선을 의식해서일까? 내 고독타임은 더욱 비밀스럽게 진행되었다. 가끔 반휴를 내고 일찍 퇴근하는 날에는 저녁 무렵까지 밖에서 시간을 보내다 집에 들어가곤 했다. 몰래 누리는 고독은 생각보다 짜릿했다.
캥거루족에게도 혼자만의 시간은 필수다. 아니, 캥거루족이기에 더욱 필요하다고 할 수 있다. 회사에서는 동료에게, 학교에서는 친구에게, 집에서는 가족에게 소멸되는 내적 에너지를 고독타임이 아니면 무슨 수로 채운단 말인가.
하지만 증오스럽던 외로움을 즐기게 된 건, 아이러니하게도 내가 캥거루족이 된 덕분이다. 몇 주 동안 부모님으로부터 충분한 정신적 평온함을 얻었기에, 이렇게 고독한 순간을 갈망할 수 있게 된 거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