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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캥거루족이 된 이유

캥거루족 6주 차

by 양독자
독립한 지 10년 만에 돌연 캥거루족이 된 30대 자식입니다. 현재 부모님과 함께 살고 있습니다.


캥거루족이 되었다는 사실을 굳이 주변에 말하진 않았다. 숨기려는 의도는 아니었다. 자연스러운 ‘캥밍아웃’을 하고 싶었달까. 요즘 잘 지내? 별일 없지? 아직 그 동네 살아? 가볍게 안부를 묻는 질문이 날아오면, 나는 이때다! 하며 최신 근황을 공개했다.


“얼마 전에 본가로 이사했어. 지금 부모님이랑 같이 살아. “


무심코 던진 물음표에 예상치 못한 느낌표를 받자,

그들은 또 다른 물음표를 보내왔다.


“왜?”




왜 캥거루족이 됐냐고?


혹시… 너 결혼해?

혹시… 집에 무슨 일 있어?

혹시… 코인 투자하다가 돈 날렸니?


아니. 아니야. 아니라고! 그들은 의문을 해소하기 바빴다. 단 한 명도 ‘왜’냐고 묻지 않는 사람이 없었다. 내가 캥거루족이 된 게 그렇게 의아해? 장성한 자식은 아무 이유 없이 그러면 안 되는 거야? ‘혹시’라는 부사를 동반하며 조심스럽게 물어야 할 만큼 중대한 일이 있지 않는 한, 웬만해선 일어날 수 없는 사건인 거냐고.


그런 게 아니면 왜 부모님이랑 사는 거야? 순수하게(?) 캥거루족이 되었을 리 없다고 굳게 믿는 그들에게 나는 표면적인 이유들을 늘어놓는다. 원룸 계약 만료, 직장 이전 문제, 내 집마련 준비 등. 궁색한 변명만 주절주절 읊었다. 석연치는 않지만 어느 정도 수긍이 된다는 듯, 사람들은 그제야 고개를 끄덕인다.




사실… 진짜 이유는…


의문사 가운데 제일 까다로운 게 ‘왜?’ 아닐까. 단순한 사실관계를 설명하면 끝나는 다른 녀석들에 비해, 이 녀석은 사람의 마음속을 펼쳐 보여야만 비로소 온전한 대답이 된다. 그런 의미에서 나는 ‘왜’ 캥거루족이 됐냐는 물음에 한 번도 완전한 답을 한 적이 없다.


매일 보는 직장 동료, 몇 안 되는 친한 친구, 함께 사는 부모님. 그 누구에게도 솔직하게 털어놓지 못했다. 심지어는 나 자신에게도 그랬다. 속마음에 가까이 가는 게 겁이 나서 빙빙 주변만 맴돌았다. 상처를 들여다보는 것도, 들춰내 보이는 것도, 모두 용기가 필요했다.


이 글에서 고백하자면, 사실 나는 ‘도피성 캥거루족’이다. 본가로 이사 온 게 아니다. 도망쳐온 것이다. 언뜻 보면 나무랄 데 없는 평온한 인생. 자세히 보면 제대로 된 것이 없었다. 무기력? 번아웃? 외로움? 우울증? 병명도 원인도 해결책도 알 수 없었다. 일단 혼자 있는 환경에서 벗어나자는 생각뿐이었다. 그럼 난 어디로 가야 할까? 그래, 가장 익숙하고 따스한 부모님 품으로 가자!




“묘하게 낯빛이 좋아진 것 같아“

엄마표 입바른 칭찬에 그건 기분 탓이라며 웃어넘겼지만, 사실은 조금 안도했다. 내가 조금씩 나아지고 있는 걸까. 이렇게만 지내면 다시 밝아질 수 있으려나. 언젠가 마음의 살이 차오르고, 단단한 딱지가 생겼다 사라지고, 여기에 상처가 있었지라고 느낄 만큼 감정이 희미해질 무렵이 찾아오면, 그때는 이렇게 말해야겠다.


저는 회복하기 위해 캥거루족이 됐습니다.

주치의는 ‘엄마’, 치료제는 ‘집밥’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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