캥거루족 4주 차
독립한 지 10년 만에 돌연 캥거루족이 된 30대 자식입니다. 현재 부모님과 함께 살고 있습니다.
나태주 시인의 말처럼
자세히 보아야 예쁜 게 있고
오래 보아야 사랑스러운 게 있다.
그리고
매일 보아야 알게 되는 것도 있다.
요즘의 엄마가 내겐 그렇다.
한적한 카페에서 책이나 재밌는 영상을 보는 것이 나의 소소한 휴식법이다. 본가로 거주지를 옮긴 지 한 달쯤 되니 새 아지트의 필요성이 느껴졌다. 동네 구석에 숨어 있고, 잔잔한 음악이 흐르는, 작고 아늑한 카페들. 나중에 가봐야지 다짐했던 장소들이 쌓여가자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엄마는 우리 집 근처에 이런 가게가 있다는 걸 알까?
"엄마, 나 카페 갈건대. 같이 갈래?"
무심코 던진 제안에 엄마가 환하게 웃는다. 60대 여인이 순식간에 6살 어린아이가 된다. 너무 들떠있는 그녀의 상태가 오히려 당황스러울 정도다. 우리는 각자 읽을 책을 챙겨가기로 했다. 엄마는 내 책장에서 한 권을 집어 들었다.
음료 두 잔과 케이크 한 조각. 그 너머로 엄마와 책이 있다. 너무도 생경한 장면. 나는 엄마가 책을 읽는 모습을 본 적이 없다. 적어도 내 기억 속에서는 그랬다. 그녀는 피곤한 워킹맘이었다. 종일 일하다 집에 오면 또 일을 했다. TV드라마를 보는 것이 휴식의 전부였다. 그녀가 일을 그만두고 여유를 되찾을 즈음에는 내가 회사생활로 바쁘기 시작했다. 그렇게 우리는 철저하게 엇갈렸다.
카페에 온 지 1시간. 슬슬 주의가 산만해지기 시작한 나와 다르게 엄마의 시선은 여전히 책에 고정되어 있었다. 그녀는 무척 신기해했다. 카페가 이렇게 집중이 잘 되는 공간인지 몰랐다며. 왜 젊은 사람들이 여기서 공부하는지 이제야 알겠다고 했다. 집에 있으면 온갖 생각에 잠식당해 도통 책장이 넘어가질 않았는데, 지금은 책 속의 문장만이 머릿속에 가득 찬 듯했다.
“나도 처녀 때는 책 많이 읽었는데~”
에이~ 거짓말. 엄마가 책 읽는 모습도 처음 봤는데, 심지어 책을 좋아했단다. 갑작스러운 고백 공격에 내 가슴은 찌릿해졌다. 엄마가 26살 즈음에 결혼을 했으니까, 그녀가 MZ였을 시절에는 텍스트힙(Text Hip)을 꽤나 즐겼던 것이다. 오늘 몇십 년 만에 알게 된 엄마가 낯설게 느껴졌다.
엄마는 오랜만에 책에 빠져있는 자신의 모습이 마음에 든다며 사진으로 남겨달라고 말했다. 그 장면은 다음날 그녀의 카카오톡 프로필이 되었다.
우리가 예전처럼 떨어져 살았다면 이런 기회가 있었을까? 적어도 카페에 앉아 아무 대화 없이 책만 보는 일은 없었을 것이다. 우리는 서로의 안부를 묻기에 바쁘고, 새로운 소식을 전하기 급급했다. 간헐적으로 만나는 가족에게 침묵은 사치이니까.
매일 만나는 가족이라서 가질 수 있는 시간들. 언제까지 함께 지낼지 알 수 없기에, 언제 사라질지 모르는 기회다. 소멸의 순간이 올 때까지 지금의 소중함을 놓치지 말자고 다짐해 본다. 그럼 이제 엄마랑 탐방할 다음 카페를 찾아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