캥거루족 3주 차
독립한 지 10년 만에 돌연 캥거루족이 된 30대 자식입니다. 현재 부모님과 함께 살고 있습니다.
나는 항상 소문에 느린 편이다.
가족에 대한 소식도 예외는 아니었다.
처음으로 엄마가 큰 수술을 받게 되었을 때. 그다음 수술을 앞두었을 때에도. 아빠가 침대에서 떨어져 제대로 걷지 못했던 사건도. 대부분의 이야기는 안정을 되찾고 나서야 내 귀에 들어왔다. 모든 과정에는 내가 없었다. 결과만 함께 할 뿐이었다.
떨어져 살면 어쩔 수 없어. 괜히 걱정할까 봐 그런 거겠지. 하지만 서운함과 이해는 별개의 영역이었다. 왜 진작 말하지 않았냐며 화를 내고 싶었지만, 나는 그럴 자격이 없다. 나 역시 그들에게 똑같이 행동하고 있었으니까.
우린 서로에게 늘 뒷북이었다.
어느 일요일 아침이었다. 일을 마치고 돌아온 아빠의 목소리가 평소보다 가라앉아있었다. 아빠는 거실에 앉아있는 나를 건너뛰고 곧장 엄마가 있는 안방으로 들어갔다. 방 문 틈으로 새어 나오는 속닥거림. 이건 분명 좋지 않은 신호다.
“아빠가 볼 일을 봤는데, 피가 콸콸 쏟아졌데…”
거실로 나온 엄마가 긴장한 표정으로 내게 말했다. 역시 나쁜 뉴스가 맞았다. 그런데 이게 무슨 상황이지? 놀람은 당연, 어리둥절은 옵션이었다. 독해가 되지 않는 이유는 철저히 배경지식이 부족한 탓이다.
며칠 전 대장내시경을 받은 아빠가 용종 2개를 떼어낸 것. 그 크기가 제법 컸다는 것. 이후에 심한 혈변을 보게 되면 급히 병원에 가야 한다는 것. 뭐 하나 제대로 아는 게 없었다.
내가 부모의 소식에 민첩하지 못했던 건 물리적 거리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지금 생각해 보니 명백한 핑계다. 부모에 대한 무심함을 감추기 위한 비겁한 변명이었다. 한 집에서 지낸 지 어느덧 한 달. 아직도 나는 그들에 대해 문외한이다.
응급실에서 여러 검사를 받고 떨리는 마음으로 결과를 기다렸다. 다행히(?) 용종이 제거된 부분이 제대로 지혈되지 않아 발생한 출혈이라고 의사가 설명했다. 다시 조치했지만 경과를 지켜보려면 입원을 해야 한다고 했다.
아빠는 곧장 간호병동으로 옮겨졌다. 이곳은 면회시간에만 출입이 가능했다. 어쩔 수 없이 엄마와 나는 병실 밖에 남겨졌다. 아빠에게 건네주지 못한 물건들은 담당 간호사에게 대신 전해졌다. 친절한 그녀는 시술 결과와 추후 진행과정에 대해 간략히 설명해 주었다. 그리고는 아빠에 대해 묻기 시작했다.
“평소에 드시는 약이 있나요?”
그녀의 초롱초롱한 눈이 나를 향했다. 내게 명쾌한 대답을 바라는 눈치였다. 그러나 나는 기대에 부응하지 못했다. ‘어… 아빠가 딱히 먹는 약은 없지… 않나? 영양제는 약이 아니잖아?…’ 머릿속이 새하얘졌다. 우물쭈물거리는 나를 대신하여 엄마가 입을 열었다. 정기적으로 복용하는 약은 없다고 말했다. 그러자 곧바로 다음 질문이 날아왔다.
“과거에 앓았거나 현재 앓고 계신 지병은 있나요?”
그녀가 또 나를 바라본다. 마치 두 번째 기회를 주는 것처럼. ‘이건 자식인 네가 당연히 알아야지!’라고 말하는 것처럼 느껴졌다. 나는 간단한 질문에도 선뜻 답하지 못하는 자신이 부끄러워졌다. 환자에 대한 정보는 확실해야 하는데, 내가 알고 있는 건 대강 아는 찌라시들 뿐이다. 그렇다. 나는 아빠에 대해 제대로 아는 게 없다. 간호사 선생님은 더 이상 나를 쳐다보고 이야기하지 않았다.
나는 부모님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을까?
알고 있다면, 제대로 아는 게 맞긴 한가?
따로 사는 동안 멀어진 건, 물리적 거리인가 심리적 거리인가. 그렇다면 우리가 함께 지내는 동안 다시 가까워질 수 있을까. 가공된 소식보다 날 것 그대로를 공유하고, 서로에 대해 몰랐던 사실을 알아가는 일. 조금 더 욕심내자면 단단히 뭉친 마음속 응어리를 풀어내는 것까지도.
어쩌면 이번이 마지막 기회일지도 모른다.
그들을 알아가고, 나를 표현할 기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