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바이러스가 한창이던 2021년, 많은 기업들이 잠시나마 불가피하게 원격근무를 실행하게 되었습니다. 10년 뒤에나 가능할 것으로 보였던 디지털 노마드의 세상을 전염병이 앞당긴 것이죠. 아무런 준비 없이 너무 급격하게 실행됐던 변화였기에 그 기간은 한시적이었고 회사원들은 다시 사무실로 돌아와야 했지만, 꼭 사무실에 출근하지 않아도 근무가 가능하다는 사실을 몸소 체험할 수 있는 기회였습니다.
그리 머지않은 미래에 거의 모든 직종에서 이러한 원격 근무 형태가 가능해질 것입니다. 기업들은 사옥이 필요 없어지고 그에 따른 부대비용이 들지 않으니 이득일 테고, 회사원들은 출근에 대한 부담을 없애고 장소에 구애받지 않는 자유로운 생활을 할 수 있을 테니까요.
기업은 인건비 역시 줄이려고 할 테지만 그 부분에 대해선 크게 걱정할 필요가 없습니다. 프리랜서는 하나의 기업에서 일정한 월급을 받는 대신 다수의 기업과 일을 할 수 있고 여러 가지 다른 직업을 동시에 가질 수도 있으니까요. 이렇게 시간과 장소, 기업과 직종에서 자유로운 디지털 노마드는 미래의 보편적인 근무형태입니다.
그러나 현재 디지털 노마드로 일할 수 있는 직종은 한정적입니다. 디지털 노마드가 보편적인 근무형태가 될 때까지 기다리고 싶지 않다면, 지금 이미 그런 형태로 움직이고 있는 몇 가지 직업 중에서 찾아야겠죠. 현재 디지털 노마드로 일할 수 있는 대표적인 직종에는 어떤 것들이 있을까요?
1. 유튜브 / 온라인 광고 영상 편집자
유튜브와 SNS의 등장으로 급격하게 발달한 직종입니다. 저도 이 분야에 종사하고 있죠. 영상 편집에도 여러 분야가 있지만 모든 영상 편집자가 디지털 노마드가 될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TV 프로그램이나 TV 광고의 경우 대부분 기획과 촬영, 편집을 하나의 제작사에서 진행하기 때문에 회사에 입사하지 않고 TV를 플랫폼으로 하는 영상의 편집자로 일하는 것은 현재로선 어렵습니다.
디지털 노마드로 일하고 싶다면 유튜브 영상이나 온라인 광고 영상의 편집자가 되어야 합니다. 유튜브 편집과 온라인 광고 편집은 비슷해 보이지만 성격이 꽤 다른데요. 유튜브 영상 편집은 높은 편집 기술을 요구하지 않기 때문에 재미있는 부분을 골라낼 수 있는 센스와 약간의 편집 기술만 있다면 누구나 도전해 볼 만한 분야입니다.
반면에 모션 그래픽 스킬과 디자인에 대한 전문 지식을 갖고 있으신 분들은 온라인 광고 편집에 도전해 보는 것이 좋습니다. 온라인 광고 편집은 유튜브 편집에 비해 높은 편집기술이 요구되고 진입장벽이 높지만, 그만큼 시간대비 높은 페이를 기대해 볼 수 있거든요.
2. 그래픽 디자이너
그래픽 디자이너 또한 대표적인 디지털 노마드 직종입니다. 컴퓨터 그래픽을 통해 디자인을 하는 모든 분야, 이를 테면 브랜드의 로고, 출판물의 표지 디자인, 웹 디자인, 편집디자인 등이 모두 그래픽 디자인에 포함됩니다.
그래픽 디자인은 디자인 스킬과 그래픽 프로그램을 다룰 수 있는 능력만 있다면 누구나 어렵지 않게 도전해 볼 수 있는 분야입니다. 어도비 일러스트레이터나 포토샵과 같은 그래픽 프로그램이 고도로 발달함에 따라 초보자도 그리 어렵지 않게 그럴싸한 그래픽을 만들어낼 수 있게 되었기 때문이죠. 그러나 진입장벽이 낮은 만큼 경쟁이 치열합니다.
경쟁이 치열하면 단가는 내려가기 마련이니 그래픽 디자이너로 얻는 수입만으로는 생활비를 충당하기 힘든 것이 사실입니다. 프리랜서 외주 플랫폼에 들어가서 대충 훑어보더라도 얼마나 많은 그래픽 디자이너가 터무니없이 저렴한 값으로 경쟁하고 있는지 쉽게 알 수 있습니다. 그러니 프리랜서 그래픽 디자이너가 되는 것을 생각 중이라면 다른 한 두 가지의 직업과 함께 병행하는 것이 현명한 방법이 될 수 있겠죠.
3. 온라인 튜터 / 번역가
만약 당신이 외국어에 능숙하거나, 특정 프로그램을 잘 다루거나, 남들은 잘 모르는 자신만의 '꿀팁'을 갖고 있다면 온라인 강의로 기술을 전수하는 온라인 강사에 도전해 볼 수 있을 것입니다. 학생의 집과 같은 특정 장소에서 이뤄졌던 개인 과외가 선생과 학생이 각자 편한 장소에서 전화나 화상을 통해서 가능해졌습니다. 남들이 알고 싶어 하는 유용한 지식이나 기술을 갖고 있다면 한 번쯤 고려해 볼 만한 분야죠.
영상으로 자신의 강의를 촬영해 일정 금액을 받고 그 영상을 구독하는 플랫폼이 늘어나는 추세지만, 아무 경력이 없는 상태에서 이런 플랫폼의 검증 절차를 통과하는 것은 그리 간단하지 않습니다. 촬영 경험이 없는 일반인이 카메라 앞에서 강의를 하는 것도 쉽지 않은 일이고요. 게다가 일방적인 동영상 강의보다 실시간으로 이루어지는 개인 과외를 선호하는 사람들이 많으니, 초보 강사들에겐 클래스 플랫폼보다 1대 1 유선 과외가 적합합니다.
하지만 자신이 잘 아는 것과 남에게 가르치는 것은 너무도 다른 일입니다. 외국어 능력을 갖고 있지만 다른 사람에게 가르치는 것에 자신이 없다면 번역가로 일할 수도 있겠죠. 대신 번역가는 일정 수준의 작문 실력을 요구합니다. 같은 외국어 능력을 갖고 있다고 해도 이렇게 각자의 성향과 부수적인 능력에 따라 직업이 완전히 달라집니다.
4. 위탁 판매자
위탁 판매란 재고를 소유하고 있지 않은 상태에서 쇼핑 플랫폼에 상품을 등록하고 주문을 받은 후 실제 상품을 소유하고 있는 판매자가 곧바로 주문 고객에게 상품을 배송하는 시스템입니다. 위탁 판매자는 실제 상품 판매자와 소비자의 중간 다리의 역할을 하며 실제 상품 가격을 제외한 마진을 얻게 됩니다.
상품의 재고관리나 배송 업무를 하지 않고 주문을 전달하기 때문에 창업비용이 전혀 들지 않고 누구나 쉽게 도전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죠. 하지만 그 장점 때문에 동일한 제품을 위탁 판매하는 판매자가 셀 수 없이 많아졌고, 소비자 또한 이런 현실을 잘 알고 있기 때문에 가격이 100원이라도 더 낮은 판매자의 상품이 팔리게 됩니다. 결국 마진은 0원에 가까울 정도로 점점 낮아지게 됐고, 이런 현실 때문에 많은 위탁 판매자들이 판매를 포기하게 되는 사례가 늘어나고 있습니다.
게다가 위탁 판매자가 제품을 직접 관리하고 배송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제품이나 배송에 문제가 생겼을 경우 처리가 힘들다는 단점도 있습니다. 이런 단점들을 감수하고 턱없이 낮은 마진을 얻느니 그냥 판매를 포기하겠다는 판매자가 늘어나고 있는 것이죠.
하지만 아무리 동일한 제품이어도 추후에 문제가 생겼을 때 신속하게 해결해 줄 것이라는 신뢰를 줄 수 있을 것으로 판단되면 소비자는 신뢰감 있는 판매자의 판매가격이 다른 판매자보다 더 높더라도 기꺼이 지불할 의사를 갖고 있습니다. 단순한 가격 경쟁이 아니라 이렇게 남들보다 나은 서비스로 경쟁을 한다면 충분한 마진을 기대해 볼 수 있을 것입니다.
5. IT 전문가 (개발자, SEO 전문가)
요즘 뜨고 있는 새로운 IT 전문 직종은 바로 SEO 전문가입니다. SEO는 'Search Engine Optimization'의 약자로, '검색엔진 최적화'를 뜻합니다. 온라인 마케팅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로 떠오른 '상위 노출'을 위해 적절한 키워드와 콘텐츠를 통해 웹사이트를 최적화하는 직업이죠. 웹 사이트나 앱을 개발하는 개발자 또한 대표적인 디지털 노마드 직종 중 하나입니다.
개발자가 다른 디지털 노마드와 다른 특이한 점은 다른 프리랜서들과는 달리 회사에 소속되어 있으면서 원격으로 근무를 하는 직원들이 많다는 것입니다. 또한 하나의 회사와 하나의 프로젝트를 3~6개월 동안 진행하며 이 기간 동안에만 그 회사에 상주하며 일하는 프리랜서 개발자들 또한 적지 않습니다. 이렇게 같은 개발자여도 작업 방식에 따라 다른 형태로 근무를 하게 됩니다.
SEO 전문가와 개발자 모두 자유로운 근무 형태와 높은 수입을 자랑하는 대표적인 IT 유망직종입니다. 그러나 그만큼 전문적인 지식과 기술을 요구하죠. 게다가 최근 AI의 상용화로 인해 빠른 속도로 입지가 좁아지게 될 것으로 보이는 직업으로 꼽히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AI가 무서운 속도로 발전해 개발자와 SEO 전문가의 자리를 대신하게 되는 날이 온다면, 과연 우리가 지금 갖고 있는 직업은 안전할까요?
6. 예술가 (글 작가, 화가, 웹툰 작가, 일러스트레이터)
수백 년 전부터 지금까지 기술의 발전과 상관없이 시간과 장소에 구애받지 않는 프리랜서로 일했던 직업은 아마 예술가가 유일하지 않을까요. 화가나 작가, 조각가 등의 예술가는 흔히 '작가'라는 직함으로 불립니다. 그중에서도 특히 특히 책을 쓰는 작가는 디지털 노마드에서 '디지털'이라는 수식어를 뺀, 그냥 '노마드'의 형태로 일해도 좋은 직업입니다. 굳이 가는 곳마다 노트북을 들고 다니지 않아도, 와이파이가 되지 않는 산골이어도 종이와 펜만 있다면 언제 어디서든 일할 수 있죠. 그러나 작가는 우리 모두가 알다시피 진입장벽이 굉장히 높은 직종입니다.
모두가 살면서 책을 한 권쯤은 내고 싶어 하지만 독립출판이나 자가출판이 아닌 이상 출판사의 눈에 띄어 정식으로 출판을 하는 것은 하늘의 별따기만큼 어렵습니다. 재능이 있고 운도 잘 따라주어 어찌어찌 출판을 하게 되었다고 해도, 이 책이 몇 부나 팔릴지는 아무도 알 수 없습니다. 그 책의 인세만으로 생활비를 충당할 수 있을지도 미지수죠. 혹 베스트셀러 작가가 되었다고 해도, 그다음 책 역시 베스트셀러가 되리라는 보장이 없는 것은 당연하고요. 결국 작가라는 직업은 그 수입으로 생활비를 충당할 목적으로 도전하기엔 적합하지 않습니다.
작가, 화가, 웹툰 작가, 일러스트레이터와 같은 다양한 분야의 예술가들은 서로 굉장히 다른 일을 하지만, '작가'라는 타이틀을 얻고 그를 통해 수입을 얻게 되는 과정은 거의 비슷합니다.
모든 작가는 일단 무명의 시절을 견뎌내야 합니다. 자신의 작품세계를 혼자 묵묵히 빚어가며 아무도 봐주지 않고 아무도 인정해주지 않는 오랜 기간을 거쳐야 하죠. 이런 기간을 일정 시간 동안 거치면 그다음단계로 넘어간다는 보장 따윈 없습니다. 18세의 어떤 소녀가 집필 1년 만에 세계적인 베스트셀러 소설 작가가 됐다든가, 미대를 갓 졸업한 23살의 일러스트레이터가 유명 브랜드와 컬래버레이션을 했다는 소식들을 접하며 5년이고 10년이고 한 치 앞을 알 수 없는 깜깜한 길을 계속해서 걸어가야 합니다.
이렇게 보면 제가 예술가라는 직업 자체를 마치 로또 당첨과 비슷한, 거의 불가능의 영역으로 보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 저는 이렇게 까마득한 진입장벽에도 불구하고 '그래도 누군가는 그것을 넘는다'는 희망을 갖고 있습니다. 저 역시 그 벽을 넘기 위해 벽돌을 하나하나 잡고 올라가는 수많은 '작가 지망생' 중 하나입니다. 인고의 시간을 거쳐 자신만의 개성을 구축하고, 적절한 플랫폼과 적절한 타이밍에 지속적으로 노출시킨다면 누구나 어엿한 '작가'가 될 수 있을 거라 믿습니다.
7. 유튜버 / SNS 인플루언서 / 블로거
모든 플랫폼에는 개인이 수익을 얻을 수 있는 기회가 있습니다. 유튜버와 SNS 인플루언서는 유튜브, 인스타그램, 틱톡 등의 플랫폼에 자신의 생활을 노출시켜 그에 따른 광고 수익을 얻는 대표적인 신흥 직업입니다. 누구나 쉽게 시도해 볼 수 있지만 일정 금액 이상의 수익을 얻기는 쉽지 않죠. 그러나 이에 성공할 경우 탑급 연예인에 버금가는 수익을 올릴 수도 있습니다.
우리는 불과 10년 전까지만 해도 이런 일이 직업이 될 수 있으리라곤 상상도 못 했습니다. 5년 뒤, 10년 뒤엔 또 어떤 새로운 직업이 탄생할까요? 플랫폼은 모두에게 공평한 기회를 제공합니다. 항상 새로운 플랫폼에 관심을 기울이고 빠르게 도전하고 적응한다면 지금은 상상할 수 없는 새로운 곳에서 수익을 얻을 수 있을 것입니다.
8. 투자자 (주식 트레이더)
주식이나 비트코인을 통해 어린 나이에 엄청난 자산가가 되었다는 이야기를 인터넷에서 심심치 않게 볼 수 있지만, 극히 소수를 제외한 대부분의 투자자들은 마이너스 수익을 면하기 쉽지 않습니다. 전업 투자자가 되는 것은 개인의 결심만으로 이루어질 수 있는 게 아닙니다. 남들보다 공부를 더 많이 한다고 해서, 더 많은 시간을 투자한다고 해서 성공확률이 높아지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주식 트레이더는 수많은 디지털 노마드 중에 가장 불안정한 직업일 것입니다. 그렇기에 대부분의 사람들은 투자를 본업으로 삼기보단 부수적인 수입을 가져다주는 '파이프라인'으로 여깁니다. 이것이 바람직한 태도일지도 모릅니다. 주식시장은 우리가 가진 모든 돈과 시간을 투자해 전념하기엔 너무 예측이 힘들고 위험성이 높으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