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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현재 Apr 15. 2023

그때는 맞고 지금은 틀리다

불효자가 성공한다


5년 뒤에도, 10년 뒤의 세상이 지금과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라고 확신할 수 있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사실 실제로 아무런 변화가 없었다기보다는 그 변화의 속도가 거의 느껴지지 않을 정도로 미미하게 느껴지던 시절이 있었죠.


90년대 말 초고속 인터넷이 보급화되기 전까지 세계의 국가는 서로에게 미치는 영향을 실시간으로 인식하기 힘들었습니다. 물론 그전에도 각 나라는 경제적으로 복잡하게 얽혀있었기 때문에 다른 나라에서 일어난 사회적 변화가 우리의 실생활에도 영향을 끼쳤지만, 이러한 변동이 우리의 생활이나 문화까지 바꿔놓진 못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지금 지구 반대편에서 생겨난 변화가 즉각적으로 우리 실생활에 변화를 일으킬 수 있는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중동 국가 간의 싸움이 우리의 생활물가에 큰 영향을 미치는 것은 물론이고, 미국의 실리콘밸리에서 개발된 기술로 인해 나의 직업이 하루아침에 위태로워질 수도 있습니다. 지구 반대편에서 시작된 '틱톡 챌린지' 유행이 바로 다음날 한국의 SNS 시장을 도배해버리기도 합니다.



멈춰있는 것은 뒤로 가는 것


20년 전에는 잘 와닿지 않던 '지구촌'이라는 단어가 이제는 정말 피부로 느껴지기 시작한 것입니다. 30년 전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변수가 늘어났고 이제 당장 내일의 세상이 어떤 모습일지 예상하기도 어려운, 말 그대로 '한 치 앞도 보기 힘든' 시대가 되었습니다.


이 시대의 어제와 오늘은 같지 않습니다. 오늘 내가 갖고 있는 것의 가치가 내일도 같을 것이라고 그 어느 누구도 확신할 수 없게 됐죠. 어제까지 가장 촉망받던 직종이 오늘 처음 선보인 신기술로 인해 하루 만에 사양산업이 된다고 해도 크게 놀랄 것이 없습니다.


이렇게 변화의 속도가 빨라진 시대에 지금의 상태에 안주하는 것은 마치 러닝 머신 위에 가만히 서 있는 것과 같습니다. 가만히 멈춰 서 있는 것은 뒤로 가는 것이나 다름없죠. 어떤 식으로든 몸을 움직이지 않으면 안 됩니다. 그런데 대체 어떤 지표를 따라 움직여야 할까요?



당신의 인생을 살아본 사람은 없다


전 세계에서 가장 소식에 밝은 사람이어도 내일의 세상이 어떤 모습일지 100% 확신할 수는 없습니다. 게다가 나와 다른 직업을 가지고 나와 다른 곳에서 나와 다른 방식으로 살고 있는 사람의 세상은 나의 세상과 같지 않습니다. 세계엔 80억 인구만큼이나 다양한 세상이 있습니다. 


이런 조건에서 우리가 움직일 수 있는 최선의 방향을 가리켜 줄 수 있는 것은 우리 자신의 손가락뿐입니다. 매일 일어나고 있는 전 세계의 소식에 귀 기울여야 하는 것은 필수지만, 여기에 각자 자신만의 독자적인 상황을 더해 판단하지 않으면 그 정보를 제대로 활용할 수 없습니다. 


불교 <열반경>에 나오는 맹인모상이라는 우화가 있습니다. '장님 코끼리 만지는 격'이라는 말이 여기서 나왔죠. 앞을 보지 못하는 사람들이 각자의 위치에서 코끼리를 만지며 자신이 경험한 것이 코끼리의 모습이라고 착각하는 우화죠. 코끼리의 귀를 만진 사람은 코끼리가 보자기처럼 생겼다고 말하고, 코끼리의 긴 코를 만진 사람은 뱀과 같다고, 코끼리의 두꺼운 다리를 만진 사람은 코끼리가 기둥처럼 생겼다고 판단합니다. 

 

이 우화는 자기가 아는 한 부분을 전체인 것처럼 말하는 것을 뜻하지만 우리가 알고 있는 세상이 모두 다르다는 것, 어느 한 사람의 판단을 곧이곧대로 믿을 수 없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타인의 삶과 타인의 판단은 그런 것입니다. 80억 인구가 처한 상황은 모두 다르고, 그렇기에 거대한 코끼리의 몸 구석구석을 만져보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실제 코끼리의 전체적인 모습을 아는 것은 중요하지만 우리 각자의 세상과 위치가 각각 다르다는 것도 염두에 두어야 합니다. 누군가의 삶은 코끼리의 코 앞에 있고, 또 다른 이의 삶은 코끼리의 다리 옆에 있습니다.


당신의 인생을 살아본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당신과 같은 인생을 살아갈 사람도 없습니다. 스스로 판단해야 합니다. 그렇기에 다른 세상을 주의 깊게 들여다보는 것과 우리 자신의 삶에 대입시킬 줄 아는 능력이 모두 필요합니다. 



불효자가 되기로 했다


자신만의 나침반을 지키기 위해서는 어느 한 사람의 판단을 아무 저항 없이 받아들여서는 안 됩니다. 아무리 명망 있고 공신력 있는 사람의 말이라도, 평소에 존경하던 멘토의 말이어도, 사랑하는 부모님의 말이어도 내면에서 수긍하고 마음에서 우러나오지 않는다면 곧대로 하지 마십시오. 지금 제가 하고 있는 말도 마찬가지입니다.


제가 사회초년생일 때 아버지는 항상 '너 잘되라고 하는 말', '내가 살아보니' 같은 말을 자주 하셨고, 그래서 나는 '그래, 나보다 두 배를 더 살아왔고 크게 성공해 본 적도 있는 아버지의 말이 맞겠지'라고 생각하며 아버지의 말을 따르려 노력했습니다. 한편으로는 부모님께 자랑스러운 딸이 되고 싶기도 했습니다. 부모님의 기대에 부응하는 삶을 사는 것 말고는 딱히 어떻게 살아야 할지 몰랐기도 하고요.


그러나 결과는 언제나 좋지 않았습니다. 나를 괴롭히는 선배에게 이렇게 대해보라던 아버지의 처세술은 전혀 효과가 없었고, 아버지가 전수해 준 사업방식은 제가 종사하는 업계에선 통하지 않았습니다. '그때는 맞고 지금은 틀린' 것이었겠죠. 그래서 20대 후반이 되었을 때 저는 더 이상 부모님의 기대에 부응하는 인생을 살지 않겠다, 불효자라고 해도 상관없다고 결심했습니다.



그때는 맞고 지금은 틀리다


아이러니하게도 제가 아버지의 마음에 들려고 노력하지 않기로 결심하자 오히려 저는 믿음직한 자식이 되었습니다. 언젠가 아인슈타인이 들었던 비유처럼, 물고기인 제가 나무에 오르려 하지 않고 바다에 뛰어들어 헤엄치자 비로소 저는 자랑스러운 물고기가 되었습니다.


불효자로 살자는 것이 부모님에게 나쁜 행동을 하자는 말이 아닙니다. 부모님이 원하는 그대로의 모습, 자랑스러운 딸이 되기 위해 모든 인생을 바쳐서는 안 된다는 의미입니다. 물론 부모님은 우리가 그렇게 살면 행복할 것이다라는 마음에서 그런 기대를 품는 것이겠지만, 30년 전 가치관을 지금 시대에서 적용하는 것은 행복하고 평탄한 삶과는 거리가 멀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대부분의 기성세대 부모님들은 자식들이 자신의 세대에서 유망했던 직업을 갖기를 원합니다. 우리 부모님들이 젊었던 시절엔 기술의 변화가 직업에 미치는 영향이 그리 크지 않았거든요. 그러나 우리는 지난 30년간 변함없이 선망의 대상이던 직업들이 하루아침에 없어진다 해도 이상할 것이 없는 격동의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선배들의 오랜 경험에서 우러나온 조언은 '그때는 맞았지만 지금은 틀린' 이론일 수밖에 없습니다. 


나와 같은 상황으로 오늘을 살아본 사람은 이 세상에 아무도 없습니다. 나조차도 오늘을 사는 것은 처음이니까요. 날이 갈수록 점점 더 복잡하게 얽히고설키는 이 정글 같은 시대에 길을 잃지 않고 계속 앞으로 나아가기 위해선 각자 자신만의 나침반을 지녀야 합니다.


이렇게 오늘의 덤불이 어느 방향으로 새롭게 자라났는지를 알고 내 나침반이 가리키는 방향이 어딘지를 알고 있다면, 아무리 복잡한 세상이라도 길을 잃고 헤매지 않고 계속해서 앞으로 나아갈 수 있을 거라 확신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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