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종의 시대, '극 I'의 생존법
내 홍보팀은 나다
아무와도 교류하지 않고 방 안에만 틀어박혀 그림을 그리는 화가가 있다고 상상해 봅시다. 그는 지금 막 미술사에 길이 남을만한 세계 최고의 그림을 완성해 냈습니다. 그도 자신이 엄청난 작품을 만들어 냈다는 것을 알지만 자신의 작품을 사람들에게 내보이는 것은 영 내키지 않습니다.
자신의 열정과 시간, 영혼을 다 바쳐 만들어 낸 분신과도 같은 이 작품을 세상에 내보이는 순간 누군가는 '색채가 조화롭지 못하다'느니, '거실에 걸어둘 만한 그림은 아니다'느니 흠을 잡을 것이 뻔했기 때문입니다. 조회수에 관심 많은 기자와 평론가들은 업계 동료들의 술자리에서 안주거리가 될만한 기사제목을 신나게 쏟아내겠죠.
생각이 여기까지 미치자 그는 결국 작품을 세상에 공개하지 않기로 결심합니다. 자신이 이런 작품을 완성했다는 것을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았고, 미술사에 길이 남을 그 위대한 작품은 작업실 한 구석에서 하얀 천에 덮인 채 먼지가 쌓여갔습니다.
세월이 흘러 그 작품이 다른 누군가에게 발견되었을 때 이미 그 작품이 큰 의미를 지녔던 시대는 지나간 뒤였죠.
가장 무서운 것은 무플
우리는 이 화가가 바보 같다고 생각하지만, 사실 '극 I(Introvert) 성향'인 저를 포함해 많은 사람들이 쉽게 자신을 드러내지 못합니다. 혹시 누군가가 내 작품에 대해 혹은 내 외모에 대해 악평할 것이 두렵기도 하고, 내 치부를 온 세상에 드러내는 것 같은 느낌에 망설이게 되는 것이죠. 그러나 유튜브 브이로그든 개인 포트폴리오 SNS 계정이든, 일단 시작하고 나면 얼마 지나지 않아 이런 걱정이 기우였다는 사실을 깨닫게 될 겁니다.
며칠이 지나도 한 자릿수를 벗어나지 못하는 조회수를 보면 악플을 예상했던 것이 무색해집니다. '가장 무서운 것은 무플', '악플도 관심'이라는 말이 뼈저리게 느껴지는 순간이죠. 넘쳐나는 콘텐츠의 홍수 속에서 내가 이제 막 올린 콘텐츠가 누군가에게 노출될 가능성은 거의 없습니다. 심지어 내가 한번 봐달라며 콘텐츠 링크를 공유한 지인들조차 내 콘텐츠에 관심이 없을 가능성이 큽니다.
처음 콘텐츠를 올리고 나면 이렇게 세상 사람들이 생각보다 내게 큰 관심이 없다는 사실에 안도하게 됩니다. 인생이 무의미하다는 사실에서 절망보다 자유를 느끼는 것처럼요. 온라인 콘텐츠의 궁극적인 목표는 '악플 받지 않기'가 아니라 '콘텐츠의 노출' 그 자체입니다. 노출 자체가 어렵다 보니 자유롭게 여러 가지 콘텐츠를 시험해 보며 어떤 콘텐츠가 노출에 적합한지 탐색해야 합니다.
혹시 어떤 악평을 받게 되더라도 그것이 내 콘텐츠에 대한 올바른 평가라고 생각하지 마세요. 이런 혹평이 나오는 이유는 실제로 내 콘텐츠에 흠이 있어서가 아닙니다. 사람들은 저마다 취향이 제각각이고, 호평보다는 혹평이 자신의 존재감을 드러내는데 훨씬 효과적이기 때문입니다. 아시다시피 그저 온라인의 익명성에 숨어 남을 비난하고 싶은 사람도 있고요.
내 홍보팀은 나다
'관종'이라는 말은 SNS가 막 시작되던 시절 불특정 다수로부터 많은 반응을 얻기 위해 자극적인 게시물을 올리는 사람들을 비하하는 의미에서 만든 말이었습니다. 이제 '관종'의 기질은 성공하기 위해 마땅히 갖춰야 할 자질이 되었습니다. 직업이 꼭 유튜버나 SNS 크리에이터가 아니더라도, 학원에서 학생들에게 수학을 가르치는 강사든 주방에서 요리를 하는 요리사든지 이렇게 자신을 드러내는 성향이 없다면 분야를 막론하고 명예를 얻기 힘든 세상이 되었습니다.
콘텐츠를 막 시작하는 우리의 홍보팀은 우리 자신입니다. 알고 있는 정보를 총 동원해 알고리즘에 올라타 적극적으로 우리의 소중한 콘텐츠를 홍보해야 합니다. 노출되지 않는 콘텐츠는 가치가 없습니다. 내가 멋진 일을 하고 있다면, 적극적으로 알려야 합니다. 내가 알리고자 하는 의지가 없다면 아무도 알아주지 않습니다. 요즘 같은 콘텐츠의 시대에선 우리가 가진 것, 알고 있는 것을 공유하는 것이 가장 큰 자산입니다.
수많은 플랫폼은 각자 텍스트, 영상, 이미지 중 한 가지 포맷을 주력으로 합니다. 이 중에 여러분의 저마다의 콘텐츠에 잘 맞는 플랫폼이 하나쯤은 있을 거예요. 어떤 콘텐츠 포맷, 어떤 플랫폼이 나와 가장 잘 맞을지 알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은 물론 직접 시도해보는 것이죠. 자신의 능력을 다양한 플랫폼에서 다양한 포맷으로 노출시켜 보세요.
우리가 하는 일이 아무리 멋지다고 해도 직접 드러내지 않으면 아무도 알아볼 수 없으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