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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현재 Jul 27. 2023

[에필로그] 마침내 요일을 잊었다

디지털 노마드의 시대가 온다


7년 전 퇴사를 준비하던 저는 앞으로 살고 싶은 인생의 모습을 그려보기로 했습니다. 한동안 진지하게 생각하게 생각해 본 적이 없었기에 떠올리는 것이 쉽지 않았습니다. 원하는 것을 알기 위해선 우선 원치 않는 것을 정확히 알고 있어야 하죠. 먼저 제가 원하지 않는 것, 벗어나고 싶은 것에 대해 생각해 보기로 했습니다.


충분치 않은 통장 잔고, 적지 않은 나이에 대한 압박, 내 바이오리듬과는 상관없이 획일적으로 정해져 있는 출퇴근시간과 식사시간, 내가 올린 콘텐츠의 조회수로 평가되는 실적, SNS의 '좋아요' 개수.


저를 불행하게 만드는 것은 모두 숫자로 표시되는 것들이었고, 이 숫자들이 저를 압박하고 있었습니다. 제가 행복해지기 위해선 이 숫자들에서 자유로워져야 했습니다. 저의 삶을 온통 에워싸고 있는 모든 숫자에서 해방되는 것을 인생의 목표로 삼았습니다.


이 시기에 우연히 짐 캐리의 연기 생활에 대한 다큐멘터리인 <짐과 앤디>를 보게 되었습니다. 가난 때문에 평생을 고생하던 아버지의 무덤에 천만 달러 수표를 함께 묻고, 일이나 인생에서 미련이 남은 것은 아무것도 없다며 그림 그리는 일에 몰두하며 살고 있는 짐 캐리에게서 '숫자에서 진정으로 해방된 사람'의 모습을 보았습니다.


저는 그 모습을 보고 어떤 것에서 해방되기 위해선 그것을 온전히 소유하고 있어야 한다고 느꼈습니다. 그렇게 모든 숫자들을 소유하고 그것에서 자유로워지겠다는 의미로 0부터 9까지의 숫자를 몸에 타투로 새겼습니다.




마침내 요일을 잊었다


숫자를 몸에 새긴 지 7년째, 이제 저를 압박하던 숫자들을 더는 신경 쓰지 않게 되었습니다. 짐 캐리처럼 천만 달러를 갖고 있는 건 아니지만 원하면 언제든지 여행을 떠날 수 있고, 당장 이번달에 일이 들어오지 않더라도 다음 달이나 다다음달 생활비를 걱정하지 않아도 됩니다. 그리고 나이 때문에 무엇을 하지 못한다거나, 또는 무엇을 해야 한다는 압박을 느끼지도 않습니다.


회사를 다니며 가장 힘들었던 것 중 하나는 출퇴근시간과 식사시간을 비롯한 타임테이블이 개개인의 바이오리듬과 상관없이 획일적으로 정해져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항상 잠이 부족했고, 매일 아침 땅이 꺼질 듯 무거운 몸을 이끌고 출근길에 올랐습니다. 12시가 되면 배가 고프지 않아도 밥을 먹어야 했고, 배가 고프더라도 정해진 식사시간이 될 때까지 기다려야 했습니다. 괴로운 것은 시간뿐이 아니었습니다. 매운 음식을 못 먹는 저였지만 다른 동료들이 매운 음식을 먹고 싶다고 하면 함께 먹어야 했죠.


하지만 이제 제 몸이 가장 편안하게 느끼는 일과대로 생활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제 바이오리듬대로 자연스럽게 먹고 자고 일어나니 알람이 울리지 않아도 매일 정해진 시간에 눈이 떠졌고, 제 몸이 원하는 대로 4시간에 한 번씩 식사를 합니다. 배달 음식이나 식당 음식 대신에 몸에 좋은 음식들을 직접 만들어 먹으니 회사생활 내내 달고 살던 위염도 없어졌죠. 회사에 다닐 땐 피곤에 찌들어 엄두도 못 내던 운동을 매일 할 수 있게 되자 20대 때보다 몸도 훨씬 좋아졌고요.


무엇보다도 제가 큰 자유를 느끼는 것은 요일을 잊었다는 사실입니다. 평일에도 주말처럼 쉴 수 있고, 원한다면 여행을 갈 수도 있습니다. 일주일 내내 금요일만을 기다리며 살거나 하고 싶은 모든 것을 주말로 미루지 않아도 됩니다. 이렇게 다른 사람들이 정확한 수치로 정해놓은 기준에 억지로 맞춰 살지 않아도 된다는 사실이 저를 가장 저답게 만든다고 느낍니다.


이 모든 것은 제가 시간과 장소에 제약을 받지 않고 일하는 디지털 노마드이기 때문에 가능한 일입니다. 디지털 노마드로 일할 수 있는 기회는 아직 그리 많지 않기 때문에, 개인의 노력뿐만 아니라 여러 가지 주변 상황과 타이밍이 잘 맞아야 합니다. 모든 일이 그렇듯이 약간의 운도 따라줘야 하고요. 마치 까다로운 수많은 조건이  모두 충족되어야만 성립되는 골디락스 존(Goldilocks zone, 생명체가 생존할 수 있는 조건을 갖춘 지대)처럼요.


하지만 앞으로는 디지털 노마드와 같은 업무형태가 점차 늘어날 거라고 확신합니다. 그리 멀지 않은 미래에는 사무실이 모두 사라지고 모두가 각자 원하는 장소에서 디지털 노마드의 형태로 일하게 되겠죠.




디지털 노마드의 시대가 온다


물론 모두가 이런 자유로운 상황을 반기는 것은 아닙니다. 각자의 성향에 따라 누군가는 지금과 같은 일정한 급여와 수동적인 업무형태를 원할 수도 있겠죠. 하지만 AI의 시대에 살고 있는 지금, 업무의 자동화로 우리의 여가시간이 늘어나고 안정적인 일자리가 점차 줄어드는 추세가 가속화되고 있습니다.


원하든 원치 않든, 우리는 일 이외의 시간을 보내는 법을 배워야 하고 업무가 저절로 주어지지 않아도 능동적으로 찾아낼 수 있는 방법을 익혀야 합니다. 이런 미래에 대한 전망이 누군가에게는 무섭게 들릴 수도 있겠지만, 어떤 시각으로 보느냐에 따라 이것은 우리 모두에게 큰 축복이 될 수 있습니다.


디지털 노마드의 가장 큰 이점은 개개인이 온전히 각자의 모습대로 살 수 있는 '개인화', 그리고 수많은 가능성을 펼쳐볼 수 있는 '가능성'입니다. 디지털 노마드가 되면 전 세계 어디서든 일할 수 있고, 개인의 여가 시간도 크게 늘어납니다. 그동안 시간적 여유가 없어서 하지 못했던 취미를 시작할 수도 있고 새로운 직업에 도전해 볼 수도 있죠. 여유보다 금전적 이득을 원하는 분이라면 투잡, 쓰리잡도 얼마든지 가능합니다. 매일 아침 9시부터 저녁 6시까지 한 장소에 있어야 하는 제약 때문에 쉽게 도전하지 못했던 각자의 가능성을 마음껏 펼쳐볼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내가 원하는 장소에서 하루에 4시간만 일하는 것, 금요일만을 바라보며 살지 않는 것. 꿈처럼 들리지만, 지금도 누군가는 그렇게 일하고 있습니다. 그리 멀지 않은 미래에 여러분도 곧 그렇게 될 거고요. 생각만으로도 두근거리는 삶 아닌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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