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 꼭 가족일 필요는 없다
벌새 / 죽은 시인의 사회 / 귀를 기울이면
늦은 나이에도 결혼을 하지 않거나 아이를 갖지 않고 살아가는 것이 이상해 보이지 않는 요즘. 자아실현의 욕구, 주거의 욕구가 종족 번식의 욕구를 뛰어넘는 시대다.
가족의 의미 또한 마찬가지다. 법적으로 가족이 아닌 사람과 한집에 살기도 하고, 양육과 인격형성이 가족 구성원 밖에서 이뤄지기도 한다. 이렇게 가족 구조의 경계가 허물어지는 시대에 꼭 생물학적 유전자를 남기는 것만을 우리의 존재 이유로 봐야 할까?
*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벌새 (2018) / 죽은 시인의 사회 (1989) / 귀를 기울이면 (1995)
위대한 멘토가 세상을 구한다
어떤 가족은 서로에게 가장 큰 안식처지만, 누군가에겐 인생에서 가장 큰 장애물이 되기도 한다. 영화 <벌새>의 은희(박지후)에게 가족은 후자다. 오빠는 은희에게 늘 폭력을 가하고, 부모는 충분한 관심을 주지 않는다. 이런 상황이 잘못되었다는 것조차 느끼지 못하고 무력하게 살아가는 은희는 어느 날 학원 선생님 영지(김새벽)를 만나게 된다. 어딘가 독특해 보이는 영지는 은희에게 신선한 자극으로 다가오고, 영지가 무심한 듯 해준 몇 마디 말들이 씨앗이 되어 은희의 마음속에 새로운 자아를 싹 틔운다.
<죽은 시인의 사회> 속 학생들이 겪는 상황 또한 비슷하다. 학교는 학생들에게 규율과 명예만을 강요하고 개인의 정체성을 인정하지 않는다. 이들의 가족도 학교와 크게 다르지 않다. 대학 진학을 위한 노력만을 강요하고 꿈을 지지해주지 않는 가족에 정서적인 유대를 느끼지 못하는 그들. 새로 부임한 교사 키팅(로빈 윌리엄스)은 그들의 가족이 채워 주지 못한 마음속 빈자리를 가득 채워준다.
서로 얼굴을 아는 사람은 세상에 가득하지만, 마음까지 아는 사람은 얼마나 될까.
- <벌새>
<귀를 기울이면>의 주인공 시즈쿠는 진로에 대해 고민하는 사춘기 소녀다. 우연한 기회에 골동품 상점의 주인 할아버지 시로를 알게 되고, 그는 방황하는 시즈쿠에게 글을 써보라고 조언한다. 시로를 멘토이자 첫 번째 독자로 삼아 꿈을 향해 한 발자국씩 나아가는 시즈쿠. 영화에서 미래의 시점을 보여주진 않지만 분명 그녀는 훌륭한 작가로 성장했을 것이다.
영화를 보며 그들이 부러워졌다. 모든 게 불안한 사춘기 시절에 영지나 키팅 같은 선생님을 만났다면, 내 곁에 시로 할아버지 같은 어른이 있었다면 내 인생은, 내 자아는 어떻게 달라졌을까.
꼭 가족일 필요는 없다
모든 가족이 행복하고 안정적인 것은 아니며, 때론 생각지도 못한 관계에서 그 결핍이 충족되기도 한다. 가족에게서 지지를 받지 못한다고 해서, 혹은 시로 할아버지 같은 멘토가 없다고 해서 우울해할 필요는 없다.
우리는 지금 다양한 미디어를 통해 손쉽게 전 세계의 수많은 멘토를 만날 수 있는 시대에 살고 있다. 원한다면 언제든지 클릭 몇 번만으로도 가르침이나 지지를 얻을 수 있다. 내게 가장 큰 힘을 주는 존재가 가족이 아니라서, 또는 그런 존재가 주변에 없다고 해서 불행해하지 마라. 때론 지구 반대편에 있는 작가나 유튜버가 역경을 헤쳐나갈 힘을 주기도 하니까.
우리가 남길 수 있는 위대한 유산
인생에서 훌륭한 멘토를 만나본적이 있다면, 혹은 그런 멘토를 꿈꿔본 적이 있다면 우리 자신이 누군가에게 그런 존재가 되어보는 것도 그만큼 보람 있는 일이지 않을까?
이를 위해 반드시 교사 자격증을 따고 교단에 서야만 하는 것은 아니다. 삶의 의미를 일깨워준다거나 진로에 도움을 주는 것처럼 대단할 필요도 없다. 사실 우리는 자신도 알지 못하는 사이에 매 순간 서로 영향을 주고받으며 살아가고 있다.
누군가의 입장에서 진심 어린 이야기를 해주거나, 신선한 영감을 주는 등의 작은 행동만으로도 충분하다. 그 작은 진동이 나비효과처럼 큰 바람이 되어 여러 가지 형태로 세상에 전해질 테니.
이 세상에 남기고 갈 우리의 흔적이 꼭 생물학적 유전자일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글을 통해, 대화를 통해, 행동을 통해 누군가의 가슴속에 문화적 유전자를 남길 수 있다면, 그로 인해 새로운 자아가 생겨나고 전파된다면. 세상에 이보다 큰 성취가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