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 나만 빼고 다들 잘 나가

괜찮아요 미스터 브래드 / 원더 / 맨 우먼 & 칠드런

by 현재

오늘도 습관적으로 SNS를 들여다본다. 해외여행, 고급 리조트, 트렌디한 옷차림, 화려한 인맥, 내 것과 비교되는 수많은 팔로워 수. 나만 빼고 다들 잘 나가는 기분이다.


그들이 이 모든 걸 이룰 동안 난 뭘 한 걸까. 행복하고 부유해 보이는 삶과 비교되는 별 볼 일 없는 내 삶이 초라하게 느껴진다. 무언가 크게 잘못되어가고 있는 듯한 불안감이 엄습한다. 그럴 때면 어김없이 이런 생각이 든다.


혹시 내가 잘못 살아온 건 아닐까?

정말 이대로 괜찮은 걸까?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괜찮아요 미스터 브래드 (2017) / 원더 (2017) / 맨 우먼 & 칠드런 (2014) / 돈 많은 친구들 (2006)



타인의 시선 앞에선 모두가 불행하다


<괜찮아요, 미스터 브래드>의 브래드(벤 스틸러)는 어느 날 문득 자신의 인생에 패배감을 느낀다. 대학 동창들은 모두 베스트셀러 작가, 할리우드 감독, 헤지펀드 대표 등 각 분야에서 한 자리씩 꿰차고 있다. 학창 시절 라이벌이었던 크레이그가 TV에 나오는 모습을 볼 때마다 질투와 열등감에 잠을 이루지 못한다.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비영리단체 1인 기업 대표로 간신히 살아가고 있는 자신이 초라하게 느껴진다.


<원더>의 주인공 어기(제이콥 트렘블레이)의 열등감은 외모다. 남들과 다른 외모로 태어난 어기는 얼굴을 감추기 위해 무거운 헬멧을 쓰고 다닌다. 어기의 얼굴을 보고 놀라는 사람들의 시선은 아무리 가족의 사랑을 듬뿍 받고 자란 어기에게도 감당하기 힘든 현실이다. 어기는 1년 내내 핼러윈을 기다린다. 그날엔 모두가 얼굴을 감추고 다니니까.



우리를 망치는 것은 다른 사람의 눈을
지나치게 의식하는 것이다.
만약 나 외에 모든 사람이 장님이라면
번쩍이는 가구는 필요가 없다.

- 벤저민 프랭클린



현대 사회에서 이렇게 타인의 시선, 비교에 집착하게 되는 가장 흔한 이유는 SNS다. 스마트폰 보급률이 95%, SNS 이용률이 55%를 넘긴 지금. 우리는 하루에도 수십 번씩 SNS를 통해 타인의 삶을 본다. 그 덕에 타인과의 소통은 어느 때보다도 편리해졌지만 반대로 우울감, 좌절감을 느끼는 이들이 많아졌다.


미국 아칸소대와 오리건주립대, 앨라배마대 연구진은 18~30세 성인 남녀 1000여 명을 대상으로 SNS 사용 시간과 우울증 사이 연관성을 6개월간 추적 관찰했다. 그 결과, SNS를 하루에 300분 이상 사용한 참가자 가운데 26.9%가 우울증에 걸린 것으로 나타났다. 또 196~300분 이내로 사용한 참가자는 32.3%가 우울증을 앓고 있었다.

- 2022년 10월 4일 동아일보 기사 <“나만 이렇게 사나”… 과도한 SNS 사용, 우울증 위험↑>



<맨 우먼 & 칠드런>은 이런 현실을 잘 보여준 영화다. 노력과 책임이 따르는 오프라인에서의 소통보다 쉽고 간단한 온라인 소통에 대부분의 시간을 쓰는 남자, 여자, 그리고 아이들(맨 우먼& 칠드런). 그들은 바로 곁에 있는 가족, 친구들보단 온라인상의 이름 모를 타인과의 대화를 더 편하게 여긴다.


온라인 세상에선 암울한 현실을 잊고 자신감 넘치는 사람이 되고, 타인 또한 모두 매력적으로 보인다.



완벽한 인생은 없다


그러나 온라인 속 모습은 실제 모습과 다른 경우가 많다. 우리가 아무 저항 없이 받아들이는 한 장의 사진, 언제든 수정 가능한 한 줄의 프로필. '행복 배틀'이 펼쳐지는 SNS 속 세상에선 모두가 부유하고 성공적인 삶을 사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사실 그 모습들은 그저 힘든 하루 중에 잠시 행복했던 찰나의 순간이거나, 간혹 존재한 적 없는 조작된 사진인 경우도 흔하다.


이런 현상은 오프라인에서도 크게 다르지 않다. 우린 타인의 아주 단편적인 모습만 보기 때문에 많은 것을 오해하기 쉽다. 자신의 불행, 지루한 일상을 널리 알리고 싶어 하는 사람은 없다. 모두가 타인에겐 좋은 모습만 보여주려 하기 때문에 아무 문제없는 것처럼 보일 뿐이다.


그러나 완벽한 인생은 없다.


<괜찮아요, 미스터 브래드>의 브래드는 완벽해 보였던 친구들에게도 문제가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심각한 병을 앓고 있는 딸과 위기에 봉착한 회사 때문에 우울증을 앓고 있는 제이슨, 알코올 중독인 빌리, 인성문제로 친구들에게 외면받는 크레이그. 화려한 겉모습에 감춰져 있던 그들의 불행을 목격한 브래드는 돈이 모든 문제를 해결해줄 순 없다는 것, 완벽한 삶은 없다는 걸 깨닫는다.



행복의 주도권


자신의 삶을 남과 비교하며 열등감을 느끼던 <괜찮아요, 미스터 브래드>의 브래드는 아들인 트로이가 하버드 진학을 목표로 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자 행복한 상상에 잠긴다. 내 아들이 하버드생이란 걸 알면 친구들이 얼마나 부러워할까?


아들의 성공적인 삶이 자신의 초라한 삶을 덮어줄 것만 같은 희망에 부풀어 있는 브래드. 그는 당사자인 아들보다 하버드 진학에 더 집착하기 시작한다. 그러나 정말 트로이가 하버드생이 되기만 하면 브래드의 인생이 행복해질까?


사실 트로이는 뮤지션을 꿈꾸고 있다. 하버드생이 되더라도 높은 연봉, 안정적인 직장으로 대변되는 성공가도를 달릴 생각이 전혀 없고, 하버드에 진학하지 못한다고 해서 좌절하지도 않을 것이다.


하지만 브래드는 트로이의 행복 따위엔 관심이 없다. 지금 당장 타인에게 자랑할 아들의 하버드 진학이라는 이야깃거리가 필요할 뿐이다. 하지만 정작 그 이야기를 듣게 될 타인들은 브래드에게 큰 관심이 없다. 결국 아무도 필요로 하지 않는 무가치한 허울에 자신의 행복을 배팅한 것이다.


"제대로 된 샴푸만 찾으면 내가 원하는 머리가 될 거로 생각했지. 머리를 감을 때마다 새로운 기회가 되는 거였어. 예뻐질 수 있는 새로운 기회 말이야. 그러다 당신이랑 결혼하고 나서 샴푸는 다 똑같다는 걸 알게 됐지"

- 영화 <돈 많은 친구들>



우리는 종종 우리가 필요로 하지도 않는 것들에 헛된 기대를 건다. 그것만 갖게 되면 모든 문제가 해결될 것 같고, 그 행복이 영원할 것 같은 느낌. 그저 그 기분에 사로잡혀 실제로 가치 있는 것에 집중하지 못하고 잘못된 것을 쫓는다. 자신이 이루지 못한 것을 다른 누군가에게 책임 전가하거나, 타인의 시선을 통해 우월감을 느끼기 위해 값비싼 사치품에 집착하기도 한다.


그러다 막상 그것을 손에 쥐게 되었을 때의 행복감은 오래가지 못한다. 문제는 그것의 부재가 아니라 내 마음속에 있었으니까. 본인의 행복을 좌우하는 건 자신의 마음인데 그 주도권을 엄한 곳에 넘기고는 일이 잘 풀릴 거라 기대하는 것이다.



애초에 왜 경쟁하세요?
이미 충분히 갖고 계시면서.

- <괜찮아요, 미스터 브래드>




'있는 그대로'의 자신에 대한 긍정


자존감의 사전적 의미는 '스스로 품위를 지키고 자기를 존중하는 마음'이다. 자신의 존엄성을 타인의 평가에 기대지 않고, 자신의 성숙된 사고를 통해 얻는 것. '있는 그대로'의 자신에 대한 긍정이다.


자존감이 높은 이들은 자신이 가진 능력의 가치를 정확히 알고, 단점을 감추거나 왜곡하지 않는다. 자신의 진정한 가치를 잘 알기에 굳이 허세나 사치품으로 자신을 포장할 필요성을 느끼지 않는다. 단점 또한 잘 알고 긍정적으로 받아들이기 때문에 감추거나 열등감을 느끼지 않는다. 내가 잘하는 것을 아는 것도 중요하지만 내 단점을 스스로 마주하고 받아들이는 것은 훨씬 어렵다.


부족한 것을 인정하고 그것을 과대평가하지 않는 것. 높은 자존감의 비결은 자신의 '단점'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이는 데에 있다.


정말 신기한 것은, 본인의 단점을 부끄러워하지 않고 당당하게 대하는 순간 타인은 더 이상 그것을 단점으로 인식하지 않는다. 본인도 인정하지 않는 단점을 감히 손가락질할 수 있는 사람은 모두 나와 전혀 상관없는 사람들뿐이다. 결국 단점이란 어떤 것에 대해 본인이 스스로 내리는 평가일지도 모른다.



인생에서 중요한 것은 자신에게 주어진 길을 한결같이 똑바로 나아가고, 그것을 다른 사람의 것과 비교하지 않는 것이다.

- 헤르만 헤세



세상 모든 것에는 긍정적인 면과 부정적인 면이 공존한다. 무조건적으로 좋은 삶과 나쁜 삶 또한 존재하지 않는다. 나보다 많은 것을 가진 또래를 보면 '내가 늦은 것은 아닐까, 나이에 비해 이룬 게 없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지만, 세상에 나와 같은 인생은 없다.


지문만큼이나 다양한 길이 있고, 각자의 속도가 다르고, 저마다의 뛰어난 점을 갖고 있다. 속도가 느리거나 장단점이 다르다고 해서 걱정할 필요 없다. 내게 주어진 길을 꾸준히 걸어가고, 그 길을 어제보다 한걸음 더 나아갔다면 그걸로 완벽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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