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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현재 Jan 11. 2023

step 3. 정리의 힘

물건 정리, 파일 정리, 인생 정리


음식을 잘하는 사람들은 조리뿐 아니라 식재료 준비나 뒷정리에도 신경을 씁니다. 요리사가 조리 하기 전 필요한 식재료를 깨끗이 씻어 준비해 놓듯이, 본격적인 영상 편집을 시작하기 전에도 데이터(촬영본, 그래픽 소스, 사운드 효과 등 작업에 필요한 소스)를 깔끔하게 정리해서 준비하는 과정이 필요합니다. 촬영본을 깔끔하게 정리해서 편집팀에게 전달해 주는 촬영팀 많지만, 간혹 촬영된 영상들을 전혀 정리하지 않은 채 원본을 통째로 넘겨버리는 촬영팀도 있기 때문입니다.


정리되지 않은 상태로 넘겨진 촬영본은 효율적이지 못한 포맷으로 인해 화질 대비 용량이 거대하고, 잘못 촬영된 파일들과 중복되는 씬들이 뒤죽박죽 섞여 있으며, 파일 이름의 길이가 너무 길어 파일을 구분하기 어렵습니다.



데이터 정리의 효과


이렇게 정신없고 정리되지 않은 상태의 데이터를 그대로 편집하는 편집자도 많아요. 그러나 이렇게 되면 작업이 느려질뿐더러 활용하지 못하는 촬영본이 생기거나 문제가 생겼을 때 바로 대처하기 어렵습니다. 반면 데이터를 깔끔하게 정리해 놓으면 작업이 훨씬 수월해지고, 수많은 촬영본을 한눈에 파악할 수 있게 됩니다.


데이터를 정리하는 과정은 촬영 현장의 부재를 메우는 작업이기도 합니다. 보통 프리랜서로 일하는 편집감독은 따로 요청이 있지 않는 이상 촬영장에 잘 가지 않아요. 그러나 촬영본을 정리하면서 하나하나 훑어보면 촬영장에서 무슨 일들이 있었고, 어떤 과정을 거쳐 촬영됐는지 파악할 수 있죠. 이렇게 촬영본을 파악하면 기획자와의 커뮤니케이션이 훨씬 수월해집니다.


편집자는 클라이언트에게 "3번째 씬 촬영본 중에 와이드 앵글로 고정해서 촬영한 버전과 클로즈업한 상태로 제품을 훑는 버전이 있는데, 보시고 둘 중 어울리는 걸로 넣어주세요."라는 식의 디렉션을 받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런 경우에 "네, 한 번 볼게요"라고 대답한 뒤 그 영상을 찾아보는 것보다, "작은 디테일이 많은 제품이라 클로즈업해서 훑은 영상에서 제품이 더 돋보이니 이 버전으로 작업해 볼게요."라고 말하는 게 전문가로서 더욱 신뢰가 가는 대답이겠죠. 이런 대답이 바로 나오려면 촬영본을 한눈에 파악하는 과정을 거쳐야 해요.



촬영본 정리 3단계


데이터 정리는 파일 이름 정리에서부터 시작됩니다. 촬영 원본의 파일 이름은 카메라 정보, 날짜, 버전 정보 등이 뒤섞여 모든 파일에 중복 적용되는 알파벳과 번호들로 가득해 한눈에 구분이 되지 않습니다. 중복된 알파벳과 숫자들은 모두 지우고 영상을 구분할 수 있는 번호만 남기면 영상을 한눈에 구분할 수 있게 돼요. 파일 이름을 하나하나 바꾸려면 굉장히 많은 시간이 걸리기 때문에, 한 번에 손쉽게 많은 파일 이름을 바꿔주는 파일 이름 변경 프로그램을 이용하면 편리합니다. 이렇게 파일 이름을 정리하는 것이 별 것 아닌 것 같지만, 촬영본과 편집소스가 수백 개인 작업을 할 때는 이런 정리가 꼭 필요합니다.


다음 단계는 촬영본을 하나하나 보면서 사용할 수 없는 영상을 걸러내는 작업입니다. 저 같은 경우엔 사용할만한 부분이 없는 촬영본을 'NG'라는 폴더를 만들어 따로 보관해요. 쓸 수 없는 파일을 미리 걸러놓지 않으면 후에 쓰지도 못할 파일을 다시 보느라 시간을 낭비하는 일이 생기기 때문이죠.


쓸 만한 파일을 따로 걸러냈다면 마지막 단계는 '용량 정리'입니다. 간혹 러닝타임 20초 내외의 SNS 바이럴용 영상 촬영본이 1 테라바이트가 넘는 용량으로 전달되기도 해요. 이런 경우는 촬영본의 수가 많은 것이 아니라, 파일의 용량이 비효율적으로 큰 것입니다. 20초 내외의 영상 파일 하나가 기가 단위로 넘어가는 것은 굉장히 비효율적이죠. 파일이 무거우면 컴퓨터가 렌더링에 더 많은 시간이 걸리고, 작업 시간이 늘어납니다. 파일 용량을 효과적으로 압축시켜 주는 인코딩 프로그램을 이용하면 화질을 그대로 유지한 채 용량을 최소 2배에서 최대 10배까지 줄일 수 있어요. 이렇게 가벼워진 파일은 컴퓨터의 처리 속도를 빠르게 만들어 줍니다.



정리의 중요성


그동안 수많은 책과 미디어가 말해왔듯이, 정리는 영상편집뿐 아니라 우리의 삶에서도 아주 중요해요. 우리가 생활하는 공간은 그 사람의 내면을 닮게 됩니다. 반대로 내면도 공간을 닮죠. 정리가 습관인 사람과 정리하지 않는 사람의 삶은 전혀 달라요. 더 이상 필요 없게 된 물건을 처분하고, 용도별로 정해진 위치에 물건을 보관하는 것이 몸에 밴 사람은 쓸데없는 생각을 줄이고 시간을 효율적으로 사용하는 데도 능합니다. 그렇게 내면을 관리하는 사람은 공간도 그렇게 정리하게 되고, 공간을 정리하는 사람은 내면도 그렇게 변화하게 됩니다.


작업을 더 효율적으로 하기 위해, 놓치는 파일 없이 모든 촬영본을 한눈에 파악하기 위해 파일 정리를 하듯 우리의 일상에도 그런 정리가 필요하겠죠.


촬영본 정리가 '파일 이름 정리 - 쓸 수 없는 영상 정리 - 용량(포맷) 효율적으로 변환하기'의 단계로 이루어지듯이, 물건 정리나 시간 관리도 비슷한 단계를 거칩니다. 물건을 정리할 땐 용도별로 한데 모아놓고, 더 이상 필요 없게 된 물건을 정리하고, 자주 사용하는 물건을 손이 잘 닿는 곳에 구분해 놓는 과정을 거치죠.


영상 원본을 정리하지 않은 채로 작업하면 작업 효율성이 떨어지는 것처럼, 정리를 하지 않은 상태로 생활하게 되면 일상의 효율이 떨어집니다. 물론 '효율성 따윈 상관없다', '정리 전과 후의 큰 차이를 느끼지 못한다', '정리에 시간을 쓰는 것이 더 비효율적이다'라고 하는 사람도 있을지 모릅니다. 앞서 말했던 것처럼 영상 정리를 하지 않은 상태로 작업하는 작업자도 많으니까요.


그러나 정돈된 생활을 하게 되면 '자기 통제감'이 생깁니다. 자기 통제감은 '나는 모든 것을 파악하고 있다, 내가 원하는 대로 삶이 흘러가고 있다'라는 실감입니다. 이것을 느끼게 되면 자신감이 생기고, 새로운 것에 도전하는 것이 쉬워집니다. 이런 통제감, 한번 느껴보고 싶지 않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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