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ep 4. 빼기의 기술
쓸데없는 부분 잘라내기
이제 막 디자인 관련 학과에 입학한 신입생들의 디자인을 보면 대부분 매우 화려합니다. 디테일뿐만 아니라 색감도 휘황찬란해서 도무지 눈을 어디에 둬야 할지 모르겠는 경우가 많아요. 저도 디자인학과 새내기였던 적이 있었기에 그 심정을 잘 이해합니다. 표현하고 싶은 영감이 넘쳐나니 내 안의 이 '크리에이티브'를 모조리 꺼내 세상에 보여주고 싶었거든요.
물론 어떤 분야에 경험이 부족할 때만 생각해 낼 수 있는 재기 넘치는 아이디어가 분명 있기는 합니다. 그러나 그런 반짝임은 그저 시선을 한번 사로잡은 뒤 사라져 버리는 경우가 많습니다. 지속적인 작업물을 만들기 위해선 아이디어를 그저 모두 표현하기보단 잘 가공해 내놓는 기술이 필요합니다.
<step 2. '진짜 중요한 것'에 집중하기>에서 영상 편집엔 디자인 감각이 필수라는 것, 그리고 가장 수준 높은 디자인은 미니멀(Minimal)을 추구한다는 것에 대해 말했었죠. 미니멀이란 그저 디테일의 수가 적은 것이 아니라, 핵심만 남기고 다른 모든 것을 자제한 것입니다. 디자인에 내공이 부족한 분들이나 디자인을 전문적으로 공부한 적이 없는 분들이 미니멀한 디자인을 하는 것은 매우 어렵습니다. 언제나 표현하는 것보다 자제하는 것이 더 어렵거든요. 하고 싶은 말을 하는 것보다 참는 것이 더 어려운 것처럼요.
'빼기'의 기술
디자인이란 더하는 것보단 '빼기의 기술'입니다. 빼기를 잘하기 위해선 남겨야 할 핵심요소가 무엇인지, 상대적으로 덜 중요하거나 아예 중요하지 않은 것이 무엇인지를 판별하는 판단력이 필수입니다. 영상 편집 프로그램을 켠 뒤 가장 먼저 해야 할 작업도 이 '빼기'입니다. 전 단계에서 미리 골라놓은 쓸만한 클립들 중에서 정말 영상에 넣을 만한 최고의 장면들만 남기는 작업이죠.
이 단계에서 우리는 사용하지 않을 부분을 빼고, 더 빼고, 더 이상 뺄 것이 없을 때까지 계속해서 잘라내야 합니다. 이렇게 잘라내다 보면 하나의 영상 파일에서 쓸만한 부분은 10퍼센트도 되지 않습니다. 30초 정도 되는 촬영본에서 3초를 건지기도 쉽지 않아요. 그러나 최대한 무자비하게 덜어낼수록 좋은 영상이 나옵니다.
본인이 직접 촬영을 하고 편집까지 하는 경우엔 이 과정이 더 어려워집니다. 자신이 촬영한 자식 같은 영상들이니 모든 씬에 다 애정이 있거든요. 그래서 촬영팀과 편집팀을 따로 나누는 것이 도움이 됩니다. 편집을 할 땐 제삼자의 입장에서 보는 객관적인 시각이 필요하기 때문이죠.
이렇게 쓸 수 없는 부분들을 모두 잘라내고 가장 좋은 부분들만 남기는 것은 편집에서 가장 중요한 작업입니다. 이 작업만 잘해도 영상의 웬만한 퀄리티는 보장됩니다.
'시작하기'보다 '멈추기'가 우선
우리의 일상에서도 더하기보다 빼기가 중요한 경우가 많습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다이어트가 하고 싶으면 운동을 시작하거나 다이어트 보조제를 먹지만, 사실 늘 먹던 탄산음료나 배달음식을 끊는 것이 훨씬 효과적인 것처럼요.
좀 더 나은 자신이 되기 위해 계획을 세울 때에도 새로운 습관을 시작하는 것보다는 평소 습관 중에서 좋지 않은 것들을 멈추는 것이 우선입니다. 좋지 않은 것들을 덜어내야 그 자리에 좋은 습관들을 채울 수 있거든요.
제가 회사원이던 시절, 점점 체력이 달리고 허리와 어깨가 아파오자 운동의 필요성을 느꼈어요. 당장 집 앞 헬스장에 가서 6개월치 회원권을 결제했습니다. 그러나 딱 하루 나가서 러닝머신만 이용한 뒤 두 번 다신 나가지 못했습니다. 지금 와서 생각해 보니 제가 '빼기'를 간과하고 무작정 '더하기'만 했기 때문인 것 같아요.
그때 제 저녁 일상을 간략하게 설명하자면, 회사에서 퇴근 후 저녁을 먹고 네다섯 시간 동안 SNS나 유튜브 영상을 보며 시간을 보내다 새벽 두세 시경에 잠이 들곤 했습니다. 퇴근 후 처음 헬스장에 나갔던 날, 운동을 한 뒤 저녁을 먹고 침대에 누워 오락 콘텐츠를 보다 보니 새벽 네시가 훌쩍 넘어버렸습니다. 다음날 저는 부족한 잠과 오랜만의 운동 탓에 일을 제대로 할 수 없을 정도로 피곤했어요. 이러다 보니 다시 헬스장에 나가는 것이 너무 큰 부담이 됐고, 결과적으로 헬스장에 큰돈을 기부하게 됐습니다. 그때 헬스장을 끊기 전에 먼저 SNS와 유튜브시청에 오랜 시간을 쓰던 습관을 버렸다면 결과는 달랐을 거라 생각합니다.
하루의 시간은 한정적이기 때문에 먼저 쓸모없는 것들을 치우지 않으면 자리가 나지 않습니다. 부족한 자리에 새로운 습관을 억지로 끼워 넣으면 그 습관을 지속하기 어려워요. 대부분의 새로운 습관이 2주를 채 넘기지 못하는 이유가 이런 게 아닐까요. '빼기'만 잘해도 영상의 퀄리티가 보장되는 것처럼, 우리 일상에서 좋지 않은 것들 '멈추기'만 잘해도 충분히 좋은 인생이 되지 않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