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편집 작업에서 가장 재미있는 부분, 바로 음악에 맞춰 배열하는 작업입니다. 광고 영상은 영화나 유튜브 영상 등의 다른 분야보다 음악의 지분이 훨씬 큽니다. 광고 영상의 분위기는 음악이 좌우합니다. 15초, 30초의 짧은 시간 동안 시청자가 지루해하지 않고 기억에 남을만한 광고 영상을 만들기 위해서 음악의 강력한 힘을 빌리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영상의 분위기를 극대화시킬 수 있는 최선의 음악을 고르는 것은 편집 과정에서 굉장히 중요한 일이죠.
좋은 음악 고르는 법
영상에 어울리는 음악을 고르는 작업은 굉장히 즐거운 일입니다. 편집 감독의 음악적 기량을 맘껏 펼칠 수 있죠. 물론 간혹 기획 단계에서 음악이 미리 정해져 있는 경우도 있고, 까다로운 브랜드의 경우 음악 교체를 요청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대부분의 경우 음악을 고르는 것은 편집 감독만의 고유한 권한입니다.
그렇기에 평소에 좋은 음악, 다양한 음악을 많이 들어두어야 합니다. 이는 편집자에게 꼭 필요한 훈련입니다. 애초에 음악에 관심이 많은 사람들이 영상 분야에서 일을 하게 되는 경향도 있는 것 같습니다. 특정 장르의 음악만 들어서는 안 돼요. 특정 분위기의 영상만 만들 수는 없으니까요. 다양한 분야의 음악을 귀에 익히고 단 몇 초만 듣고도 좋은 음악인지 아닌지 바로 판단할 수 있어야 합니다.
영화를 많이 보는 사람은 어느 시점이 되면 포스터만 보고도 대충 이것이 좋은 영화인지 아닌지 대충 감을 잡을 수 있습니다. 그런 것처럼 음악의 특정 부분만 듣고도 이것이 작업할 영상에 맞는 음악인지 아닌지 판단할 수 없다면, 음악을 고르는 데에 너무 많은 시간을 써버리게 됩니다.
이건 제가 개인적으로 경험으로 터득한 방법인데요, 음원 사이트에서 음악을 고를 때 러닝타임 중간 부분의 3초가량을 듣습니다. 대부분의 음악은 중간 부분이 클라이맥스거든요. 대부분의 음악은 1초에서 2초만 들어도 좋은 음악인지 아닌지에 대한 감이 옵니다. 그렇게 클릭, 클릭, 클릭을 하며 빠르게 음악을 고르다가 좋은 느낌이 오는 음악은 좀 더 오래 들어봅니다. 그런 방법으로 해당 영상과 어울릴 것 같은 후보 음원들을 5개 정도 고릅니다.
그런 후에 대충 잘라놓은 영상 작업파일 위에 후보 음원들을 넣어봅니다. 그중에서 실제 영상의 느낌과 가장 잘 맞는 음원을 고르죠. 대충 잘라놓은 영상이어도 영상마다 조명, 세트, 분위기 등의 컨디션이 다르기 때문에 그 영상만의 분위기가 있습니다.
또 한 가지 유념해야 할 것은 영상의 분위기뿐 아니라 브랜드 아이덴티티와도 잘 맞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아무리 잘 만들어진 힙합음악이어도 중장년층을 타깃으로 한 브랜드의 광고에 사용할 수는 없으니까요. 그렇게 영상의 분위기와 브랜드의 아이덴티티를 고려하여 가장 잘 어울리는 음악을 고릅니다.
영상에 생명력 불어넣기
이제 앞에서 잘라놓았던 영상 파일을 골라놓은 음악에 맞춰 배열할 차례입니다. 정적인 영상에 춤을 추는 듯한 리듬을 더하는 작업입니다. 나무토막처럼 딱딱한 영상에 생명력을 불어넣어 피노키오처럼 춤추게 하는 것과 비슷합니다. 이 작업을 할 때 저는 수십 번씩 반복해서 음악을 들으며 춤을 춥니다. 다만 몸을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영상을 움직입니다.
영상은 컷과 모션을 비롯한 다양한 효과를 통해 '시각적인 음계와 박자'를 만들어냅니다. 각자의 음을 연주하는 서로 다른 악기가 조화를 이루며 하나의 음악을 만들어내듯이, 영상이 제3의 악기가 되는 것입니다. 음악에 맞춰 영상을 연주하는 것에 익숙해지면 자신만의 주법이 생깁니다. 영상의 어떤 요소를 어떤 악기로 느끼는지는 사람마다 다를 수 있겠지만, 개인적으로는 영상이 전환되는 부분은 베이스 드럼, 앵글의 움직임은 키보드 멜로디, 그래픽 효과는 크래시 드럼과 비슷하다고 생각합니다.
음악에 맞춰 영상을 다양하게 연주해 봅니다. 하나의 영상에서 다음 영상으로 넘어가는 부분(컷)의 타이밍, 크기(scale)와 모션(position)을 움직여보기도 합니다. 그래픽 효과가 등장하는 타이밍으로 비트를 만들기도 합니다. 댄서가 여러 동작을 시도해 보다가 '아, 이 동작 괜찮네'라는 실감이 오는 것처럼, 음악과 잘 어울리는 영상의 움직임을 보면 그런 실감이 옵니다.
잘 편집된 광고 영상에서는 '플로우'가 느껴집니다. 음악을 끄고 들어도 리듬을 느낄 수 있죠. '딴, 딴, 딴'으로 이어지는 정속의 박자 대신 '딴, 따라, 딴, 딴'처럼 약간의 그루브를 첨가하면 더 재미있는 리듬을 만들어 낼 수 있습니다. 이 그루브는 음악의 흐름을 직관적으로 느끼며 연주하는 재즈의 '스윙'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자신만의 리듬에 맞춰 걷는 것
헨리 데이비드 소로우는 <월든>에서 "자기만의 리듬에 맞춰 걷는 것이 중요하다. 남의 걸음에 맞추려다 보면 쉽게 넘어진다"라고 했습니다. 브랜드의 아이덴티티에 부합하는 음악을 고르고 그 리듬에 맞춰 춤추는 영상을 만들듯이, 우리도 각자 자신에게 잘 맞는 음악을 찾아내고 그 리듬에 맞춰 걸어가야 합니다. 다른 사람의 리듬에 맞춰 걷다 보면 한 걸음 한 걸음이 무겁고 어색해져 버리겠죠. 어찌어찌 그 리듬에 맞춰 걸을 수 있게 된다 해도 마음 한 구석에선 지금 내 걸음이 어딘가 부자연스럽다는 것, 이것이 내 리듬이 아니라는 생각을 떨칠 수 없을 겁니다.
내가 신나는 일렉트로닉 음악이라면 빠르고 경쾌한 리듬으로, 잔잔하고 느린 템포의 엠비언트 음악이라면 그런 속도로 걸어야 합니다. 그 리듬에 약간의 그루브까지 첨가하면 더 재미있는 인생이 되겠죠.
그러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우선 평소에 다양한 음악을 접해보며 자신에게 맞는 속도가 무엇인지, 어떤 장르의 음악이 가장 나다운지 잘 알고 있어야 합니다. 세상에 존재하는 다양한 음악을 들어보기 위해 낯선 문화를 가진 곳으로 여행을 갈 수도 있고, 책을 들여다볼 수도 있고, 영화 속에서 다른 인생을 엿볼 수도 있습니다. 방법은 무궁무진합니다. 모두 자신의 리듬에 맞춰 가장 자연스럽고 행복한 춤을 출 수 있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