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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현재 Jan 07. 2023

하고 싶은 말을 참아보기로 했다

모든 재앙은 입에서 나온다


그동안 많은 말실수를 했다. 상대방이 반기지 않을 거란 걸 뻔히 알면서도 그저 내 카타르시스를 위해 뱉은 말이 많았고, 남을 비난하거나 무시하며 내 추한 내면을 드러내기도 했다. 그 말을 하던 순간에도 그 말이 불필요하고 결과적으로 나 자신을 깎아내리는 말이란 걸 잘 알고 있었지만 그럼에고 불구하고 굳이 참지 않고 생각하는 족족 내뱉어버렸다.


3천 년 전 석가모니가 말했듯, 모든 재앙은 입에서부터 나온다. 프리랜서로 혼자서 일을 하고, 전화보단 메신저를 통한 소통을 주로 하는 내겐 '모든 재앙은 손가락에서 나온다'라고 할 수 있겠다.


이런 말들로 인해 일을 크게 그르치거나 사이가 틀어진 적은 없지만(내가 기억하는 한), 이런 상황을 인지하면서도 고치지 않는 것은 분명한 문제였다. 평판을 신경 쓰기 때문이 아니라 나 자신을 위해, 오랫동안 마음 한구석에 있던 이 숙제를 언젠가는 해치워야 했다. 케케묵은 목표를 처리하기에 새해처럼 좋은 타이밍이 있을까. 2023년을 맞아 이 문제를 해치우기로 결심했다.



하고 싶은 말 참기


상대방이 어떤 의도로 그런 말을 했는지 잘 알면서, 그가 원하는 대답이 아닌 정반대의 말로 분위기를 깨는 것이 내 주특기였다. 시험에 합격하려면 공부를 열심히 해야 하고, 날씬한 몸매를 원하면 운동을 해야 한다는 식의 뻔한 답을 모르는 사람은 없다. 사람들은 그런 조언을 듣기 위해 누군가에게 고민을 말하는 게 아니다. 내가 하고 싶은 지루한 조언대신 상대방이 원하는 공감을 해주기로 했다. 대부분은 '아 정말?'이나 '힘들었겠네', '잘했어'라는 간단한 말이면 충분했다.


상대방이 원하는 대답을 해준다고 해서 내 존재감이 흐려지거나 자아가 없어지진 않는다. 오히려 상대는 나를 더 신뢰하고 괜찮은 사람이라 느낀다. 물론 상대방이 내 자유를 침해하거나 선을 넘은 경우는 예외다. 권력이나 지위로 내가 원치 않는 행동을 요구하거나 나를 깎아내리는 말을 들을 땐 가차 없이 내 안에 묶어 놨던 흑염룡을 풀어주리라.



좋은 말을 할 수 없다면 침묵하기


그러나 사실 그렇게 화를 내는 상황에서 내가 왜 화가 났는지에 대해 날카로운 말로 쏘아붙이는 것보다 훨씬 더 효과적인 방법이 있다. 바로 '침묵하기'다.


침묵은 그 어떤 말보다도 강력하다. 정확한 인과관계를 설명하는 것보다 비유 들어 스스로 깨닫는 게 하는 것이 훨씬 효과적이듯이, 화를 내는 대신 침묵하면 상대방은 자신이 실수한 것이 있는지 스스로 되돌아보게 된다.


온몸의 세포가 거부반응을 일으켜 도저히 좋은 말을 해줄 수 없을 때도 있다. 자신의 삶이 얼마나 불행한지, 힘겨운 하루를 자신이 어떻게 견뎌냈는지를 타인에게 끊임없이 확인받고자 하는 사람이 있으면 그를 위로해주는 사람도 점점 지쳐간다. 이렇게 더 이상 다정한 말을 해줄 수 없는 상황이라면 그냥 침묵해야 한다.


침묵보다 좋은 말이 흔치 않다는 것을 알면서도 침묵을 지키는 것은 적지 않은 노력이 필요하다. '말하지 않고는 못 배기는'이 고약한 천성을 고쳐야 한다. 천성이란 언제든 내 의지대로 바꿀 수 있는 습관일 뿐이다. 그동안 평생 쓸데없는 말을 남발하며 살았으니 이제 멈출 때가 됐다.


모두가 알다시피 침묵하는 비결 같은 건 없다. 그저 고 싶은 말을 '아야' 한다. 세상에서 가장 쉬우면서 제일 어렵다. 한 가지 위로가 되는 사실이 있다면, 단 몇 초만 참으면 된다는 것이다. 그 순간에 하고 싶은 말을 딱 10초만 참으면, 말하고자 했던 대화의 타이밍은 금방 지나가고 말하고 싶은 욕구도 함께 사라진다.



말의 무게


개체가 많아지면 가치 떨어진다는 공식은 말에도 똑같이 적용된다. 말실수를 줄이기 위해서 뿐만 아니라 내가 하는 말의 무게를 더하기 위해, 더 가치 있는 말을 하는 사람이 되기 위해서 말을 줄여야 한다. 그동안 쓸데없는 말을 '굳이' 내뱉는 나를 견디느라 힘들고 상처받았을 내 주위 사람들에게 미안한 마음이 든다.


1년간 <새로운 나 프로젝트>를 며 느낀 건데, 혼자 머릿속으로 생각만 하는 것과 이렇게 공개적으로 다짐하는 것엔 아주 큰 차이가 있다. 비록 날 개인적으로 알지 못하는 불특정 다수가 읽는 글이지만, 마치 나를 24시간 지켜보는 감독관이 생긴 것처럼 나 자신을 의식하며 다짐을 더 철저히 지킬 수 있게 됐다. 데없는 을 줄이겠다고 이렇게 공개적으로 다짐했으니, 이번엔 반드시 이 고약한 말버릇을 고치고 말 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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