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부산 토박이로 자랐다. 그래서 바다는 내게 익숙한 풍경이다. 아무리 큰 걱정이 있더라도 바다를 보면 괜히 마음이 편해졌다. 저 드넓은 푸른 바다 앞에 내 고민거리들은 너무나도 작아 보였기 때문일까.
아버지는 요트를 좋아하셨다. 수영구 요트경기장은 주말 잔소리를 피할 수 있는, 당신의 아지트시곤 했다. 아들과 함께 하면 좋겠다는 어머니의 성원에는 이기지 못하셨다.
여덟 살 무렵 초등학교 입학과 함께, 나는 아버지 손에 이끌려 주말마다 딩기요트를 몰기 시작했다.
딩기요트란 엔진과 선실이 없는 조그마한 배다. 10년 뒤에야 자동차 운전면허를 딸 수 있을 정도로 어렸던 나. 이제 한 배의 선장이 된다.
배를 몰고 3개월쯤 지났을까. 코치님께서는 이제 넓은 바다로 나가볼 때라 말하셨다. 처음 해안을 벗어났다. 빌딩들이 점차 사라지고, 보이는 건 저 먼 오륙도 뿐이었다.
그 바다에는 위험이 도사렸다. 풍향계도 바람을 읽지 못하고 핑핑 돌 때가 있었다. 그러다 보면 배 전체를 집어삼킬만한 파도가 올 때가 찾아왔다.
처음으로 파도에 정면으로 충돌하던 때가 기억난다. 바람이 강해지면, 붐(Boom, 메인 세일을 고정하는 쇠) 휙휙 머리 위를 지나간다. 그럴 때마다 세일 매듭을 생명줄처럼 붙잡았지만 별 수 없었다. 추운 바다에 빠지기 싫어 발버둥을 칠수록, 선체는 더 흔들렸다. 얼마 지나지 않아 순싯간에 배 전체가 뒤집어졌다.
딩기요트 세일링 신고식 캡사이징(Capsizing)이다.
몇 번의 전복을 경험하고 나니 강풍과 파도에 익숙해졌다. 그리고 이를 이용하는 나만의 노하우가 생겼다. 내가 조절할 수 없는 바람이 찾아오면 과감히 매듭을 놓아야 한다. 그러면 팽팽하게 긴장된 세일이 펼쳐진다. 마치 하늘을 향해 백기를 드는 것 같았다.
그리고 바다에 닿을 정도로 누워야 한다. 기울어진 배의 무게중심을 맞추고, 파도의 흐름을 타기 위해서다.
그러면 갑자기 배가 속도를 내고 파도를 타기 시작한다. 하늘이 항복을 받아들이고 내 편이 된 듯하다.
살다 보면 예상치 못한 역경들이 온다. 책들의 문장, 어른들의 조언, 그간의 경험들도 길을 알려주지 못하는 어려움들 말이다. 그럴 땐 오히려 파도를 탈 줄 알아야 한다. 꽉 쥔 주먹을 풀고 편안히 누워야 오히려 파도의 힘을 이용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