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인류'의 노화
70년대 생 90년대 학번 '신인류'
1990년에 결성된 우리나라 최초의 프로듀서 그룹 공일오비(015B)의 노래 '신인류의 사랑(1993)'의 가사를 들어보면 지금은 전혀 신인류스럽지 않다. 오히려 예쁜 여자와 만나고 싶어 하는 남자들의 당연한 모습을 노래한 것이라고 해야 할까. 남자들이 가지고 있는 외모에 대한 근거 없는 자신감의 표현일 수도. 그 근자감은 과거 예능 프로그램 '무한도전-오호츠크해 특집/미남이시네요'에서 볼 수 있다.
맘에 안 드는 그녀에게 계속 전화가 오고
내가 전화하는 그녀는 나를 피하려 하고
거리엔 괜찮은 사람 많은데
소개를 받으러 나간 자리엔
어디서 이런 여자들만 나오는 거야
나도 이제 다른 친구들처럼
맘에 드는 누군가를 사귀어 보고 싶어
어쩌다 맘에 드는 그녀 남자 친구가 있고
별로 예쁘지 않은 그녀 괜히 콧대만 세고
거리에서 본 괜찮은 여자에게
용기를 내서 말을 걸어보면
항상 제일 못생긴 친구가 훼방을 놓지
나도 이제 다른 친구들처럼
맘에 드는 누군가를 사귀어 보고 싶어
주위를 보면 나보다 못난 남자들이 다
예쁜 여자와 잘도 다니는데
나는 왜 이럴까
나도 이제 다른 친구들처럼
맘에 드는 누군가를 사귀어 보고 싶어
그러나 이 노래를 폄훼하고자 하는 것이 아니다. 다만, 이 노래의 제목으로 나온 '신인류'에 대해 얘기하고 싶을 뿐이다. 그 당시, 70년대생 90년대 학번은 그야말로 '신인류'였다. 물론 그 '신인류'도 학력고사 세대와 수능세대로 나뉘기는 하지만, 90년대를 살았던 90년대 학번들이 모두 그 '신인류'에 포함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들은 드라마 '응답하라 1994'의 마지막 내레이션에 나오는 것처럼 인류 역사 상 유일하게 아날로그와 디지털 모두를 경험한 축복받은 세대였지만, 지금은 4, 50대의 평범한 중년으로 세상을 살아가는 사람들이다. 1997년의 IMF 경제위기를 겪으면서 취업 전선에서 좌절을 겪었고 대다수의 비정규직이 양산된 어려운 상황에서 이전 세대들이 세워놓은 경제적 기틀 위에서 아등바등하며 살아가고 있으면서도, 그 경제적 기반을 무너뜨리지는 않았다. 오히려 그 어려운 상황을 좋은 방향으로 지속적으로 발전시켰다고 해도 과언은 아닐 것이라 생각한다. 이는 그들이 받은 교육과 삶에 대한 가치가 지금 같은 우리나라의 평가를 만들어낸 것인지도 모른다. 비록 '낀 세대에 낀 세대'로 육체적인 면에서나 정신적인 면에서 두루 힘들기는 하지만.
'신인류', 'X세대'로 불렸던 우리 세대-세대 구분에서 보면 1965년생부터 1980년생까지를 X세대로 구분해 두었기는 하지만, 개인적으로 우리나라 X세대는 90년대 학번들로 보는 편이 무난하지 않을까 생각한다-는 부모 세대보다 부유하게 살고 있는 세대이기도 하다. 부모 세대의 교육열을 그대로 물려받아 배움에 대해 늘 갈구했던 세대이고 자신을 끊임없이 계발하고자 노력했던 세대이다. 지금은 그저 그런 직장인으로, 월급쟁이로, 어쩌면 누군가에게 꼰대로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이기는 하지만, 우리도 지금의 MZ세대들처럼 '리즈'시절이 있었다. 소위 말하는 '90년대 생', 'MZ세대'와 같은 말의 시작은 결국 X세대가 나타나면서 발생한 개념이라 보는 것이 맞을 것이다. 물론 그 이전의 '86세대'도 있지 않느냐라고 반문할 수 있지만, 그들과는 결이 다른 세대였고 사회보다는 개인에 더 치중했기에 그들에게 핀잔이나 비난을 받기도 했지만, 결국 이전과는 다른 세대의 시작을 알리는 신세대였다는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그리고 그러한 '신인류'가 우리 사회의 중심축이 되면서 사회질서는 예전보다 많이 달라졌다고 생각한다. 분명히 우리 세대가 청소년이었던 시기에는 우리나라의 치안도 그리 좋지 않았다. 지하철에는 소매치기가 많았고, 인신매매와 같은 강력범죄들이 신문의 사회면을 장식하기도 했었으며, 학교 내의 도난 사고도 빈번했었다. 지금처럼 가방이나 스마트폰, 태블릿으로 자기 자리를 맡아놓는 그런 엄청난 일은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우리나라의 치안이 우리 세대가 청소년이었을 때와는 엄청나게 달라져 있었다. 남의 물건은 손대지 않는 것, 길 가다가 앞사람이 떨어뜨린 물건을 주워주는 것, 화물차의 짐이 쏟아졌을 때 그것을 함께 모아주고 길을 정리하는 것, 비싼 물건들이 자리에 놓여있을 때 그것을 가져가는 것이 아니라 지켜주거나 혹시 누군가가 가져가지 않을까 살펴보는 것이 어느새 우리 사회에서는 당연한 것이 되었다. 새벽 시간이나 밤늦은 시간에 운동하러 나가는 것이, 24시간 편의점 앞에서 밤늦은 시간까지 가볍게 술 한잔 하는 일상이 예삿일이 되어있었다. 물론 어둡고 위험한 구역이 없다는 것은 아니다. 청소년의 일탈이라든가 기술의 발달로 인한 사이버 범죄가 양산되는 면이 있기는 하지만, 다른 나라에 비하면 우리나라는 천국 같은 곳이다. 그런데 어떻게 우리는 이런 사회를 만들 수 있었을까. 아마도 우리나라 사람이라면 모두 공통적으로 갖고 있는 유교 의식이 우리의 DNA에 새겨져 있어서 그런 것인지도 모른다. 일제 강점기와 전쟁을 거치면서 우선은 지독한 빈곤과 생활고를 벗어나야 했기에 우리도 모르게 억눌러왔던 높은 도덕 수준이, 생활수준과 교육 수준이 높아지면서 제대로 발현된 것이 아닐까.
그러나 그런 변화를 가져온 '신인류'도 노화의 길을 걷고 있다. 시간은 그렇게 흐르고 있었고, 고인이 된 가수 신해철 님의 노래가사처럼 '세상을 살아가는 것은 세상에 길들여지는 것이고, 남들과 닮아가는 동안 꿈은 우리의 곁을 떠나겠지만', 그 어쩔 수 없는 흐름에 우리도 따를 수밖에 없다. 그래도, 지금은 '신인류'보다는 그냥 그런 저런 기성세대로 살아가고 있지만, 우리 세대도 소위 '리즈시절'은 있었다고, 그렇게 말하고 싶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