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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롤로그

지방에선 인천국제공항이 너무 멀다

by 낮은 속삭임

몇 달 전, 항공권을 구입하고 순차적으로 숙소를 예약, 여행 준비를 차근차근하고 있었다. 직장에서의 업무도 정리하던 와중에 엄청난 정치적 사건이 터졌고 지금까지 그것이 진행 중이어서 이래저래 소란스럽고 산만한 연말이 지나갔다. 그러다 보니 어느새 여행 날짜가 가까워졌다.

겨울에 해외 출국을 하게 되면, 그것도 인천국제공항으로 가야 하는 것이라면, 지방에 사는 사람으로 날씨에 유독 민감할 수밖에 없다. 아침 비행기라서 여기에선 새벽에 공항 리무진을 타야 한다. 리무진도 벌써 예약해 두었었는데, 출발 전날인 오늘 오후부터 눈발이 날리기 시작했고 그에 더해 날이 점점 추워지기 시작했다. 바깥의 날씨를 보면서 조금씩 걱정이 늘어갔다. 내가 타야 하는 공항 리무진은 새벽 1시 40분. 일반적인 날씨라면 아무 걱정 없이 1시 10분쯤 호출하고 집을 나서면 되는 일이지만, 눈이 오면 달라진다. 적어도 공항 리무진 타기 한 시간 전에는 택시 호출을 해야 하는 것은 아닐지. 그런데 과연 그 새벽에 택시를 잡을 수 있을까. 카카오 택시 호출이 제대로 이루어질 수 있을까. 평소 같으면 십여 분이면 도착할 터미널까지 시간은 얼마나 걸릴까. 눈을 보니 걱정만 늘어나고 있다. 아니면 터미널 부근 어딘가에 가 있어야 하는 것일까. 그 한밤중에 아무도 없는 큰길을 따라 터미널까지 터벅터벅 걷는다는 것은 생각만 해도 춥고 끔찍하다. 눈을 보니 여러 가지 생각이 든다. 그렇지만 오늘은 평일이고, 이곳은 그래도 인구가 제법 되는 중소도시이니 새벽 택시가 잡히기를 바랄 수밖에. 아직 도로에 눈이 쌓이지는 않았으나 젖은 도로가 밤이 되면 얼어붙을 듯하여 조금 걱정되기는 한다. 제대로 갈 수 있을 테지...?


날씨를 지나치게 걱정했었다. 혹시 택시가 호출되지 않으면 어쩌지 하는 것도 무색하게, 택시는 5분 만에 왔다. 내가 걱정했던 만큼 눈이 쌓여서 도로가 빙판이 되지는 않았던 모양이다. 밤이라 다니는 차도 없고, 십분 만에 버스터미널에 도착했다. 내가 예약한 차의 앞차가 손님들을 싣고 떠날 준비를 하고 있었다. 터미널 안은 생각보다 춥지 않았다. 대합실은 앉아서 기다릴 수 있을 만큼의 온도는 유지하고 있었다. 나와 같은 차를 탈 것 같은 이들이 하나 둘 나타나는 것 같다. 버스를 기다릴 때마다 드는 생각이긴 한데, 여행은 정말 기다림이 엄청난 부분을 차지한다. 특히 나처럼 지방에서 출발하는 사람들은, 비행기를 타기 전날부터가 여행의 시작이 된다. 아직 버스가 오기까지 삼십 여 분을 기다려야 되고, 버스 탑승 후 거의 네 시간을 차에서 보내야 하며, 공항에 도착해서 출국 수속을 마치고 비행기에 오르기까지 기다림의 연속이다. 기다리는 시간을 잘 보낼 방법은 따로 없다. 버스에서는 편안히 잘 것이고 공항에서는 또 있는 그대로의 시간을 보내면 되는 것이니까.

여행가방을 보니 조금 어이없긴 하다. 여름 열흘 짐이라고 쌌는데 열흘 짐이나 한 달 짐이나 별반 차이가 없는 것을 보니 나는 진정한 맥시멀리스트인 걸로. 돌아올 때는 보조 배낭에 넣은 잡다한 물건들을 다 여행가방에 때려 넣을지도 모르겠다. 꼭 기내에 들고 타야 하는 것을 빼고는.


버스는 제시간에 도착했다. 새벽이라 꽤 빠르게 달리던 버스가 어딘가에서 정차했다. 휴게소도 아니었는데 뭔가 했더니 몇 시간 전에 눈길 교통사고가 있었고 그 정리 여파로 꽤 시간이 걸렸다. 그렇지만 그래봐야 십여 분이었고 그다음부터는 휴게소 한번 쉬고 쭉 달려왔다. 어느새 인천공항고속도로를 달리고 있었고 곧 제1 터미널에 도착했는 방송이 흘러나왔다. 하차 후 짐을 끌고 공항으로 들어오니 아직 체크인 데스크가 안 떴다. 가방을 열어 겨울옷을 넣고 나니 체크인 데스크 안내가 떴고 셀프 체크인 키오스크에서 여권스캔 후 탑승권 및 부치는 짐 꼬리표를 출력했다. 짐을 부치고 이제 출국 게이트 쪽으로 갔다. 겨울 방학 시즌이어서인지 가족 단위 여행객들이 많다. 좌석은 가장 원하지 않는 자리인 가운데 열 가운데 자리. 변경해보려 해도 꽉 차 있어서 어쩔 수 없이 여섯 시간 반을 그렇게 가야 한다.


공항엔 항상 사람들이 많다. 출국장에 줄을 서서 천천히 들어간다. 소지품 검사에서 태블릿을 빼려고 하니 그대로 둬도 된다고 한다. 자동출국검사대를 지나 바로 찾아간 곳은 마티나 라운지. 삼성카드 제휴로 연 2회 무료 사용 가능하다. 전날 저녁식사를 조금 부실하게 먹어서인지 공항에 도착하니 배가 고팠다. 자리 잡고 앉아서 맛있게 아침 식사를 끝냈다. 탑승 시작 시간까지 이십 여 분을 남기고 라운지에서 일어섰다. 다행히 라운지와 게이트는 그리 멀지 않았다. 이제 곧 비행기를 탄다. 조금은 불안하면서 설레는 마음을 담은 채 나의 '여름으로 떠나는 겨울여행'이 시작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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