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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것을 내려놓은 표정, '어쩔 수가 없다'

터번을 쓴 여인(베아트리체 첸치, 17세기 경)-귀도 레니

by 낮은 속삭임
<터번을 쓴 여인-베아트리체 첸치(17세기 경)>, 귀도 레니, 이탈리아 로마 국립고전미술관(바르베리니 궁전) 소장

17세기 바로크 시대 이탈리아 화가 귀도 레니 (Guido Reni)의 <터번을 쓴 여인(베아트리체 첸치, 17세기 경)>. 흰 터번을 두르고 역시 같은 색 옷을 입은 여인이, 체념한 담담한 표정으로 뒤를 돌아보고 있다. 세상을 달관한 듯한 그 표정 속에는 오히려 편안함이 보인다고나 할까. 이제는 모든 무거운 짐을 내려놓은 듯해서 오히려 맑은 표정이다. 그녀의 얼굴은 부드럽고 우아한 아름다움이 가득하다. 우아함 속에 담긴 그녀의 비극적 이야기는 현대 사회에서도 일어나서는 안 되는 끔찍한 일이다. 그녀의 이름은 베아트리체 첸치, 로마의 유력한 귀족 프란치스코 첸치 공작의 딸이다. 프란치스코는 아내에게 상습적으로 폭력을 휘둘렀고, 심지어 자신의 친딸인 베아트리체조차도 수차례 강간했다. 그 외에도 수많은 범죄를 저질렀지만, 그의 지위로 그는 늘 풀려났다. 베아트리체와 그녀의 계모는 공작의 악행을 수차례 교황청에 고발했으나 달라진 것은 없었고, 오히려 아버지에 의해 성에 갇히기도 했다. 이를 더 이상 참을 수 없었던 그녀는 가족들과 함께 아버지를 살해하고 베란다로 던져 실족사로 가장했다. 그러나 이 사실이 탄로 나고 공작의 죽음에 가담했던 사람들 중 노예형을 받은 그녀의 이복동생을 제외하고는 모두 사형당한다. 그녀의 행동이 정당방위였음에도, 부친을 죽인 패륜은 용서될 수 없었다. 게다가 첸치 가문의 재산을 탐낸 교황청은 그녀에게 사형을 선고한다. 산탄젤로 다리 앞 광장의 처형대에서 비극적인 이야기와 함께 절세의 미녀로 알려진 그녀의 처형을 보기 위해 수많은 이들이 모여들었다고 한다. 처형대에 오르기 전, 아마도 그녀는 이러한 표정으로 뒤돌아보지 않았을까. 자신의 손으로 모든 것을 마무리한 사람의, 모든 것을 받아들이겠다는 담담한 표정. 그래서 오히려 더 슬픈 초상화로 남은 것은 아닐까.
이 작품은 귀도 레니의 원작설, 그의 제자이자 조수인 엘리자베타 시라니의 작품이라는 설, 그의 원작은 소실되고 시라니의 모작만이 전해진다는 설이 회자되고 있다.

볼로냐 출신의 화가 귀도 레니는 안니발레 카라치 형제, 그들의 사촌 루도비코 카라치의 영향을 받아 바로크 회화의 기틀을 세운, 볼로냐 화파의 대표적 화가로 알려져 있다. 특히 루도비코 카라치에게서 전통적인 고전풍 소묘기술을 배웠다고 한다. 그의 작품 속에 나타나는 인물은 그 선이 부드럽고 우아하며, 아름다운 색채와 세련된 붓터치를 보여주고 있다.

*이 작품은 이탈리아 로마 국립 고전 미술관(바르베리니 궁전)에 소장되어 있다. 정보와 이미지는 네이버 검색을 참고하고 내려받았다.

*여담: 감수성이 예민한 사람이 예술작품을 보면서 정신적 일체감, 격렬한 흥분이나 감흥, 우울, 현기증, 전신마비 등의 각종 증세를 느끼는 증상인 '스탕달 신드롬'. 프랑스 작가 스탕달이 당시 이 그림이 소장되어 있었던 피렌체에서 이 작품을 보고 걷잡을 수 없이 심장이 뛰고 쓰러질 듯한 경험을 겪게 되는데 거기에서 벗어나는데 한 달이나 걸리게 되었다고 한다. 피렌체의 영어식 이름을 따 '플로렌스 증후군'이라고도 한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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