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서로의 마음이 서로에게 닿았을까

사육제의 밤(1886)-앙리 루소

by 낮은 속삭임
사육제의 밤(1886)-앙리 루소, 미국 펜실베니아주 필라델피아 미술관 소장

보름달이 둥글게 떠오른 밤, 별들이 점점이 박힌 하늘 아래로 낮은 구름이 보인다. 이파리가 다 떨어진 나무로 보아 계절은 겨울인가 보다. 겨울나무는 어딘가 쓸쓸해 보이는데, 그림 속 숲의 겨울나무는 오히려 포근해 보인다. 이파리가 가득하면 밤 풍경이 조금 답답하지 않을까. 그 어두운 숲과 나무 앞의 왼쪽에는 헛간인지 창고인지 모를 건물이 나무 숲에 하나 된 듯 그려져 있다. 그림의 중앙에는 화려한 차림의 남녀가 팔짱을 끼고 함께 걸어가고 있다. 아마도 축제에 참여하거나 아니면 축제에서 돌아오는 모양이다. 남자는 고개를 여자에게로 돌려 그녀의 얼굴을 바라본다. 표정은 보이지 않아도 그 얼굴에는 사랑이 가득 차 있지 않을까 싶다. 그래서 밤의 숲과 하늘에 비해 두 사람은 하늘에서 빛나는 달처럼 환하게 땅에서 빛나고 있는 듯하다. 축제의 밤은 그렇게 깊어가고 있다. 이 그림을 보면 오래전에 재미있게 보았던, 그러나 고구마 백 개는 삼키는 듯한 일본 애니메이션 <너에게 닿기를> 1기의 마지막 회에서 주인공 쿠로누마 사와코와 카제하야 쇼타가 새해를 맞이하는 장면이 떠오른다. 눈 내리는 한 해의 마지막 날이자 사와코의 생일에 함께 새해를 맞는, 답답하지만 예쁘고 아름다운 사와코와 카제하야의 모습이.

이미지 출처: 네이버

그림의 제목에 나타난 '사육제(Carnival)'는 가톨릭에서 사순절이 시작되기 전에 며칠간 열리는 가면무도회 등의 축제를 의미한다. 이론적으로는 주현절(Epiphany, 그리스도가 하나님의 아들로 온 세상 사람들 앞에 나타난 날로 1월 6일로 지킨다)부터 재의 수요일(Ash Wednesday, 사순절이 시작되는 첫날) 전까지라고 한다. 재의 수요일이 보통 2월 14일경이기에 가톨릭을 믿는 국가들의 사육제가 1월 말에서 2월 초에 열린다. 그래서 이탈리아의 베네치아 카르나발레, 프랑스 니스 카니발, 브라질의 리우 카니발이 이때 개최된다.

자신을 프랑스 최고의 사실주의 화가 중 하나로 평가한 화가 앙리 루소(Henri Rousseau)는 전문적 교육을 받은 화가가 아니었다. 집안 사정으로 하급 세관원으로 일하며 40대 이후부터 그림을 그린 그는 '르 두아니에(Le Douanier, 세관원)'라는 별명에 '일요화가', '아마추어 화가'라며 비웃음을 사기도 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1886년 이후부터 앙데팡당전에 출품했지만 언론에서는 그의 작품들을 졸작으로 평가하며 조소했다고 한다. 미술의 역동기였던 19세기말 20세기 초 파리에서 활동하면서 어떤 미술 운동이나 유파에 속하지 않고 독자적인 화풍을 이끌어냈던 앙리 루소. 자신의 스승은 오로지 자연 밖에 없었다고 한 그에 대한 평이 바뀌기 시작한 것은 1905년 살롱도톤 전에 출품한 일련의 정글 그림이 마티스, 루오를 비롯한 야수파 전시와 함께 강렬한 효과를 발한 이후부터라고 한다. 피카소와 마티스 등이 원시적인 것에 관심을 기울였던 이 시기에 그는 '순수한 원시인'으로 명성을 얻게 되었으며, 특히 피카소는 루소의 작품을 '살롱전의 때가 묻지 않은 순수한 작품'이라 평했다고 한다. 아카데미 미술을 지향했으나, 당대 전위 미술가들의 지원을 받으며 20세기 미술가들에게 시대를 앞선 감수성을 지닌 화가로 평가되는 앙리 루소는 오늘날 모더니즘의 대부로 인정받고 있다고 전해진다.

*이 작품은 미국 펜실베이니아주 필라델피아의 필라델피아 미술관에 소장되어 있다. 정보와 이미지는 네이버 검색을 참고하고 내려받았다.

keyword
이전 03화신이 내린 슬픈 저주 '자신을 알게 되면 멸망하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