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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이 내린 슬픈 저주 '자신을 알게 되면 멸망하리라'

나르키소스(1599)-미켈란젤로 메리시 다 카라바조

by 낮은 속삭임
<나르키소스(1599)>, 미켈란젤로 메리시 다 카라바조, 이탈리아 로마 국립고전미술관(바르베리니궁전)소장

17세기 바로크 시대를 출범시킨 것으로 여겨지는 이탈리아 화가 미켈란젤로 메리시 다 카라바조(Michelangelo Merisi da Caravaggio)의 <나르키소스(1599)>. 캄캄한 화면 속에서 환하게 빛을 받은 옆모습의, 팔, 무릎, 그리고 희게 빛나는 소매와 함께 마치 어둠 속에 떠 있는 듯한 남자가 물속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넋을 잃고 바라본다. 물에 비친 모습은 분명 자신일진대, 그는 왜 이리 애절하게 반사된 모습을 바라보는 것인가.

강의 신과 님프 사이에서 태어난 나르키소스는 태어나서 받은 신탁이 있다. '자신을 알게 되면 멸망할 것이다.' 자신의 얼굴은 보지 못한 채 그는 아름답고 건강한 청년으로 자라난다. 그의 미모에 반한 님프들이 많았고 그에게 구애하였으나 모두 실패하였다. 가장 대표적인 것이 님프 에코. 헤라 여신의 벌을 받아 상대방이 말한 마지막 말만 따라 할 수밖에 없던 그녀는, 그의 말을 따라 하며 그에게 애정을 표하지만 그는 무정하게 거부하고, 에코는 부끄러워 동굴 속으로 들어가게 되며 결국 목소리만 남게 된다. 그것이 '메아리(Echo)'이다. 그 외에도 그는 수많은 님프들의 애정을 여전히 무정하게 거부했다. 이에 한 님프는 복수의 여신 네메시스에게, 그에게 이루지 못하는 사랑의 아픔을 통렬히 겪게 해 주십사 빌었고 여신은 그의 운명의 신탁을 실행하게 된다. 여느 때처럼 사냥을 떠난 나르키소스는 깊은 숲 속에서 길을 잃었고 목이 말라 헤매던 중 맑고 고요한 연못을 발견하게 된다. 바람 한점 없는 맑은 연못에 물을 마시려 몸을 굽히는 순간, 그는 물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처음 보게 된다. 그를 자신이라 인지하지 못하고 그는 그 반영을 샘의 님프라 생각하게 되며 결국 자신의 모습에 걷잡을 수없이 빠져들게 된다. 잡으려 하면 사라지는 자신의 그림자, 떨어지는 눈물 한 방울에도 흐려지는 그림자를 보기 위해 연못을 떠날 수 없었던 그는 결국 연못가에서 숨을 거둔다. 장례를 치르기 위해 연못을 찾았던 님프들은 그의 시신을 찾을 수가 없었고, 연못가에는 아름다운 흰꽃이 연못 속 자신의 바라보며 피어있었다. 이 꽃이 수선화이다. 오늘날 지나치게 자기 자신에게 집착하는 심리적 상태를 나타내는 말인 나르시시즘(Narcissism)은 이 신화에서 유래했다(신화는 여러 버전이 있어서 그 내용이 조금씩 다를 수 있다).


이탈리아 바로크 시대의 시작을 알린 화가 미켈란젤로 메리시 다 카라바조, 통칭 카라바조라 불리는 그는 마니에리즘에 빠진 이탈리아 미술을 획기적으로 개혁한 새로운 '미켈란젤로'이다. 강렬한 명암 대조를 통해 극적인 표현을 위주로 하는 테네브리즘(Tenebrism)의 기초를 쌓은 화가로, 그의 작품은 어둠은 더할 수 없이 어둡고, 대비하여 밝은 곳은 더욱 환하게 빛난다. 그림 속에서 가장 빛나는 것은 나르키소스의 무릎과 왼팔이다. 빛이 가장 환하게 쏟아져 오히려 비현실적인 것처럼 보이지만, 연못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가장 애절하게 바라볼 수 있는 자세를 취한 나르키소스의 간절함을 그대로 보여주는 듯하다. 이렇게 절실한 그림을 그린 카라바조는 그러나 시대의 풍운아, 방탕아이다. 난폭한 성격으로 가는 곳마다 문제를 일으켰고 마침내 살인까지 저질러 도망 다니게 되었다. 그러나 그의 재능을 아꼈던 귀족과 추기경의 도움으로 그는 여러 번 용서받게 된다. 시칠리아와 나폴리에서 머물다가 교황의 사면을 기대하며 로마로 돌아가는 중 열병으로 1610년 경 사망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작품은 이탈리아 로마의 바르베리니 궁전 국립고전미술관에 소장되어 있다. 정보와 이미지는 네이버 검색을 참고하고 내려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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